12년 만에 가수로 연예계에 컴백한 정소녀 ⓒ최용민 기자 leebean@ |
사실 기자는 ‘정소녀’란 왕년의 톱스타에 대한 애틋한 기억은 없었다. 그가 절정의 인기를 얻었던 70년대에 대중문화에 열광할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80,90년대 허참과 ‘가족오락관’ ‘쇼쇼쇼’를 진행하던 모습은 기억났다. 하지만 그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에 금세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과거에 얼마나 톱스타였던가를 실감하는 것보다, 중견연기자들의 젊은 시절 에피소드에 더 솔깃했다.
“그 당시 커피 한 잔 값이 30원이었지 아마? 그 때는 자가용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연예인도 버스타고 택시타고 방송국엘 다녔는데, 그 때 나는 피아트를 타고 다녔죠. 이덕화, 노주현씨가 집이 나랑 가까워 같이 차를 타고 다녔는데, 노주현씨가 자꾸 자기한테 내 차를 팔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값을 너무 싸게 불러 안 팔았지. 당시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돈을 더 많이 벌었어요. 여자는 CF나 영화, 의상촬영 등으로 수입이 많았지요.”
1973년 MBC 공채 탤런트 6기인 정소녀는 20대 초반에 출연한 영화 ‘이름모를 소녀’가 크게 히트하면서 일약 당대 최고의 여배우로 떠올랐다. 이후 수많은 작품과 함께 해태제과, 피어리스 화장품, 여성용품 소피아 등의 CF모델로 발탁되며 CF퀸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정소녀에 따르면 그 시절 받은 CF몸값이 1년 간 약 3000만 원이었으며, 지금 시세로 따지면 약 90억 원에 해당한다고 했다. 이는 한국 기네스 기록이었다고. 정소녀의 당시 활약은 2003년 ‘이효리 광풍’에 견줄 만 한 일이었다.
“당시 100만 원이면 집을 한 채 샀는데, 그 돈으로 10채는 산 것 같아요. 가족들과 여행 다니며 즐겁게 살았지요. 하지만 데뷔 이후 줄곧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 일 한 기억 외 다른 기억은 없어요.”
통행금지에 대한 에피소드도 들을 수 있었다. 스케줄에 쫓기다보면 가끔 통금을 어길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럴 때면 종로경찰서에서 통금이 해제되기를 기다려야 했고, 정소녀를 맞은 경찰들은 밤새 이야기를 나누는 ‘특권’을 누리기도 했다.
정소녀는 1996년 드라마 ‘파리공원의 아침’ 이후 방송활동을 중단했다. 그 사이 경기도 송추에서 이탈리아 식당을 7년간 운영했으며, 아이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를 하면서 평범한 주부로 생활해왔다. 그러다 현 기획사 대표의 적극적인 권유에 따라 12년 만의 컴백에 용기를 냈다.
가수로 컴백을 결정한 것은 일종의 깜짝 이벤트. “조용히 나오는 것 보다 재미있게 등장하고 싶었다”는 정소녀는 깜짝 이벤트를 통해 자신을 추억 속에 뒀던 대중에게 깜짝 선물을 준비한 것이다.
정소녀 ⓒ최용민 기자 leebean@ |
정소녀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지만 가요계와도 인연이 깊다.
정소녀는 최병걸의 히트곡 ‘진정 난 몰랐었네’가 수록된 음반에 ‘그 사람’이란 곡에 듀엣가수로 참여했다. 당시 최고의 가수와 최고의 여배우가 만났던 것이다. 또한 쇼 MC로 활약하며 혜은이, 이은하, 윤수일, 정훈희 등 가수들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예전엔 미니스커트가 단속 대상이었는데, 요즘 젊은 친구들은 노출이 자연스러워요. 쇼는 원래 화려해야 하는 것인데, 쇼를 많이 규제한다는 것은 대중을 무시하는 것 아닌가 생각도 해요. 대중이 쇼에 빠져들어야 하는데 옛날엔 규제가 너무 심했죠.”
정소녀는 지난 2월부터 하루 5시간 씩 노래연습을 해왔고, 최근 싱글을 발표했다. 타이틀곡 ‘깜빡’은 주부 건망증을 담은 노래로 삼바 리듬의 신나는 곡. 성인가요로는 획기적으로 빠른 곡이다. 비 오는 날 들으면 좋다는 ‘계절이여’는 보사노바 풍의 감성적인 곡이며, 정소녀가 직접 노랫말을 썼다. 70년대 최병걸과 불렀던 ‘그 사람’은 전영록과 다시 불렀다. 앳된 목소리를 가진 정소녀는 특유의 소녀 같은 목소리로 나이를 짐작할 수 없게 한다.
“가수 활동을 시작으로 연기자, MC, DJ 등 왕년에 하던 일을 모두 다 해보고 싶어요. 그러나 예전처럼 인기를 좇으려 하지 않아요. 이왕 컴백했으니불러만 주면 어디든 안 가리고 해야죠.”
정소녀는 예감은 좋지만 예전만 하겠느냐며 미소를 보인다. 정소녀는 음반이 대박 나기보다는 자신의 노래가 많이 알려지고, 주위 사람들도 많이 따라 불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대학생 딸 하나를 둔 정소녀는 요즘 ‘커피 프린스 1호점’에 빠져있다고 했다. 특히 딸과 함께 공유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다고 한다. 좋아하는 가수로는 sg워너비와 아이비를 꼽았다. 정소녀는 소녀처럼 살고 있었다.
“옛날의 정소녀로 돌아온 게 아니고, 편안한 친구 같은 사람으로 돌아왔어요. 내 위치에 맞는 역할 주어지면 잘 하고 싶어요. 일단 가수로 몸풀기를 많이 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