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원 xanadu@> |
주진모는 언제나 누군가의 이상형으로 등장했다. 여인을 보필하고 받쳐주고 끌어주는... 그러다보니 정작 자신은 뒷전으로 빠질 때가 많았다. 또 완벽한 남자로 출연하다보니 대중에게는 멋있지만 왠지 다가가기에는 벽이 있는 배우로 여겨지기도 했다.
주진모 스스로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가 곽경택 감독의 '사랑' 촬영현장에서 "이제는 내가 뜨고 싶다"고 이야기한 것도, "대중이 느끼는 벽을 깨고 싶다"고 한 것도 모두 솔직한 자신의 생각이다.
주진모는 현재 '사랑'에 미쳐있다. 아니 빠져있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부산에서 촬영하는 내내, 그리고 개봉을 앞둔 지금까지 그는 '사랑'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주진모가 생각하는 '사랑'을 물었다.
-장동건의 집에서 시나리오를 처음 보았다고 했는데.
▶ 그 때가 5고 정도되는 시나리오였다. 보는 순간 너무 하고 싶었다. 원래 누군가가 하기로 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 사람보다는 내가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동건이형에게 나도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안됐다는 소식을 듣고 머리 식히려 낚시터에 갔다가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배우가 한다는 소리도 들었는데 어찌보면 자존심이 상했을 수도 있었을텐데.
▶자존심은 부릴 때 부려야 하는 것이다. 작품들은 내 인생의 프로필이 되는 것 아닌가. 동건이형네서 시나리오를 봤다는 것을 숨기려면 숨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 자존심이 아니다. 내 작품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양보하지 않는 게 자존심이다.
-'미녀는 괴로워' 이후 훈남 이미지가 생겼는데 사뭇 '올드'한 이야기에 도전했다.
▶그 전 작품까지는 누구나 바라는 이상형을 이미지화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현실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중들이 내게 벽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런데 '미녀는 괴로워'에서 나쁜 남자로 등장하다보니 사람들이 주위에 저런 사람 한 명씩은 꼭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심리랄까. 하지만 '미녀는 괴로워'와 비슷한 역은 하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미녀는 괴로워' 뒷이야기도 상당하던데.
▶김용화 감독은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형동생 사이다. 하지만 처음 역을 제의했을 때 아니 또 여자 받쳐주는 역을 왜 하냐고 거절했었다. 그러다 나를 너무 잘 알기에 사람들이 모르는 또 다는 내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해서 오케이 했다. 그 때만 해도 여자배우가 김아중이 아니었다.
그런데 막상 도장을 찍으니 김아중이 된 게 아닌가. 처음에는 얼마나 잘하는지 두고보자라는 생각도 있었다.(웃음) 그런데 너무 완벽하게 준비를 해오니 두말할 필요가 없더라. 결국 좋은 선택을 한 셈이었다.
-'사랑' 시나리오를 받고 김용화 감독과도 상의했다던데.
▶그랬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에서의 캐릭터를 설명하면서 조언을 구했다. 그랬더니 네가 생각한 대로만 표현하면 주진모를 한정된 배우가 아니라 다른 부분까지 보여줄 수 있는 배우로 인식시킬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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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원톱 영화이다. 주진모의 사랑이야기인 셈 아닌가.
▶'올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품을 하게 되면 내 몫을 알게 된다. 그런데 '사랑'은 내가 중심이 되어야 하니깐 욕심이 안날래야 안날 수가 없었다. 또 워낙 쟁쟁한 감독이 아닌가. 내가 보여주지 못했던 부분까지 끌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여자를 위한 지고지순한 사랑이라는 내용은 어찌보면 낡은 이야기 같기도 한데.
▶곽경택 감독님과 이야기한 게 사람들의 그런 선입견을 뒤통수치자는 것이었다. 얼핏 올드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우리 주위에 저런 사람 꼭 있지라는 이야기이다. 배우부터가 선입견을 깨지 않나. 나를 비롯해 다소 센 듯한 느낌의 박시연이 첫사랑으로 등장하고. 두고봐라. 영화를 보면 알 것이다.
-고등학생 분량에서 살을 찌우고 성인 분량에서 뺐어야 할 것 같은데 정반대로 했다.
▶그것 역시 사람들의 선입견과 반대로 갔다. 실제로 내가 맡은 해결사를 하는 분들은 대부분 세상을 살면서 적당히 배도 나온 사람들이다. 이제야 말이지만 사실 다이어트 때문에 힘들어 죽을 뻔 했다. 10kg을 빼는데 한 달 시간을 준다더니 촬영 일정 때문에 2주만에 뺐어야 했으니깐. 나중에는 불면증까지 생겼다.
-부산 사투리 연기도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감독님이 시나리오 전체를 녹음해서 전해줬다. 하지만 처음 들었을 때는 외국어 같았다. 부산 사투리는 '나 좋나'라고 할 때도 억양에 따라 뜻이 다르지 않나. 그래서 부산에서 촬영할 때 모자 눌러쓰고 시장을 돌아다녔다. 실제로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지 듣고 또 생각하기 위해서.
-첫 원톱 영화인 주진모나 '태풍' 이후 절치부심한 곽경택 감독이나 실연을 겪은 박시연이나 연기 변신을 시도하는 김민준이나 모두 이를 악물고 '사랑'에 뛰어든 느낌이다.
▶그런 느낌이 없지 않다. 곽경택 감독님도 남자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이야기에 도전한 것도 그랬고,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박시연의 경우 영화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 촬영 분량이 없어도 현장에 나와서 살다시피 했다. 김민준은 악역에 몰입을 엄청나게 했다. 그런 노력들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배우로서 목표가 있다면.
▶난 아직까지 한 번도 이슈가 되는 배우였던 적이 없다.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다. 오래가는 배우, 사람들이 찾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런 배우가 진짜 좋은 배우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