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우리 한국영화엔 스릴러가 있었어

김관명 기자 / 입력 : 2008.02.1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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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나의 것' '살인의 추억' '쓰리 몬스터' '달콤한 인생' '친절한 금자씨' '그놈 목소리' '검은집' '세븐 데이즈'..그리고 '추격자'. 그래 우리에겐 스릴러가 있었던 거야.

간만에 꽉 찬 2시간, 엉덩이 아픈 것 모르고 볼 만한 영화가 나왔다. 일부 관객은 자리를 뜨면서 "제대로 찍었네"라고, 또 일부 관객은 영화 중간 "안돼!"라고까지 했다. 이 얼마만에 쏟아진 '죽이는' 리얼타임 감상평인가. 바로 지난 14일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다.


김윤석 하정우 서영희 등 배우들의 신들린 연기도 그렇지만, 초반 흥행도 대단한 기세다. 2시간3분 영화에 18세관람가라는 두가지 흥행 악조건에서도 개봉 첫주 52만명을 동원, 할리우드 판타지 '점퍼'에 이어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다. 첫주 흥행이 문제가 아니다. 영화포털이나 홈페이지 등에 올라온 영화평을 보면 장난이 아니다.

사실 한 편의 상업영화에 대해 언론이 이처럼 일방적으로 '극찬'하면 그건 볼썽사나운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맹목적인 한국영화 사랑이거나, 장르나 배우에 대한 개인적인 짝사랑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초반흥행 수치에 대한 절대적 맹신이거나. '추격자'도 물론 이 연장선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다.

하지만, 아마 김윤석과 하정우, 두 배우 평생 필모그래피의 귀중한 자리를 차지할 이 '추격자'는 그저 2월에 개봉한 한국영화 한 편 정도가 아니다. 그건 잃어버린 한국영화의 향수, 그것도 스릴러에서 찬란히 꽃을 피워오다 갑자기 망각해버린 한국영화의 장점을 고스란히 되살려낸 둔탁한 좌표다.


또한 하도 "한국영화가 힘들다"는 한탄속에서 제 갈길 찾으려 '되는 영화 코드'에만 갑자기 올인해버린 동료들에 대한 절절한 '컴백' 하소연이다. 그것도, 총 없는 한국영화 스릴러가 살 길이란, 역시나 망치 들고 각목든 몸 연기에 바탕을 둔 근접전이 필수라는 이 강렬한 아우성.

돌이켜보자. 그해 '살인의 추억'이 개봉된 해, 우리는 얼마나 행복했나. '웰메이드 상업영화'라는 신조어에 절대 수긍하면서, 봉준호를, 송강호를 우린 얼마나 칭송했던가. 또한 비 쏴 내리는 터널속으로 사라진 박해일의 모습에 우린 얼마나 괴로워했나. 분명했다. 그때 우린, 관객은 그리고 언론은 절대로 어떠한 세속적이고 검은 꿍꿍이로 이 '살인의 추억'을 좋아하고 밀지 않았다. 그건 너무나 명백한 '잘 만든' 영화이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원신연 감독의 '세븐 데이즈'. 박희순의 재발견, 이 한마디면 족할 이 영화는 긴박하면서도 웃긴, 대단한 유괴 스릴러였다. 남의 애 유괴됐는데, 고통은 나의 것인, 그야말로 스릴러 본연에 가까운 이 묵직함. 난무하는 코믹 형사 사극 애정 치정극에서 '세븐 데이즈'는 그렇게 빛났고, '그놈 목소리' '검은집'은 그렇게 강렬한 자기존재를 과시했다.

'박찬욱 스릴러'는 또 어땠나? '복수는 나의 것'과 '친절한 금자씨'는 구토할 것 같은 잔혹함이 있었지만 그만큼이나 에너지가 차고 넘친 스릴러였다. 과연 송강호와 이영애의 이 핏빛 살해 복수 스릴러를 지배한 그 힘과 에너지는 다시 다른 감독에게 스며들 수 있을까. 중간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허탈하게 빨아버린 그 에너지와 자존심이 여전히 박 감독에게 남아있기를.

다시 '추격자'로. 마음 먹고, 스릴러다운 스릴러 만들어보자고 만든 영화. 처음부터 여성 연쇄살인범이 누구인지 그 패는 깠으니 더이상 '극락도 살인사건'이나 '혈의 누' 같은 미스터리이기를 포기한 이 영화. 전직 형사 김윤석의 거침없는 연기에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를, 하릴없는 하정우의 텅빈 싸이코 연기에 '샤이닝'의 잭 니컬슨을 떠올린 이 영화. 해서 '추격자'는, 한국형 스릴러는 여전히 펄펄 살아있음을 대내외에 알린, 그렇게나 갈팡질팡 비틀대던 '2008년 2월 한국 영화판'의 중대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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