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부터 '오로라공주' '추격자' '올드보이'. |
개봉 첫주만에 52만명을 동원, 올해 주목할 만한 영화로 급부상한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 "언제 내가 다칠지 모르는" 스릴러답게 다양한 흉기들이 등장한다. 주로 '직업여성'을 살해하는 연쇄살인범의 무기는 정과 망치. 더 자세히 극중 대사로 표현한다면 "정을 머리에 대고 망치로 내려쳐서" 살해했다. 막판엔 손에 잡히는 대로, 장도리에 골프채, 이쑤시개까지 등장했다.
사실 한국영화 스릴러는 외국보다 잔인한 장면이 훨씬 많다. 대한민국 자체가 총기소지를 불허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래서 모든 걸 주먹이나 원시적인 생활무기로 해결해야 하기때문에,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유혈이 오래도록 낭자하다. 오래된 '대부'나 최근의 '디파티드'처럼 할리우드 영화라면 총 몇 방이면 '산뜻하게' 끝날 수도 있었을 장면이, 한국영화에선 오히려 더 모질고 끔찍하고 잔혹하게 간다.
대표적인 게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다. 한국관객이야 최민식의 날선 장도리부림을 자연스럽게 봤지만, 외국 언론과 평론가들은 이 처음 보는 과격폭력신에 깜짝 놀랐다. 오시이 마모루의 '아바론'이었다면, 그 수많은 깡패들을 마치 게임처럼 '드르륵' 자동소총으로 갈기면 끝났을 거니까. 이런 미련 때문일까. 박 감독은 '친절한 금자씨'에서 아름다운 수제 권총을 선보이긴 했지만, 이마저도 실전에선 근접사격을 했다.
지난해 황정민 유선 주연의 '검은집'도 한국형 생활무기로 관객에게 영화 보는 고통을 준 스릴러. 한많은 여주인공 유선의 핏빛 칼부림 액션에 다름아닌 이 영화에서 돋보인 건 황정민이 그어댄 자동차 키였다. 스릴러에서 이 금속물체가 얼마나 흉악한 연장으로 변모했는지, 영화 본 관객은 다 안다. 영화 막판 유선이 휘두른 튼튼한 부엌칼도 대단했다.
박용우가 제대로 연기를 보여준 '혈의 누'는 사극답게 좀더 독특한 연장들이 수를 놓았다. 19세기 조선의 외딴 섬을 무대로 한 이 영화는 한마디로 처절한 낫부림 액션. 여기에 가마솥에 끓여죽이는 '육장', 얼굴에 젖은 한지를 붙여 질식사시키는 '도모지', 돌담에 머리를 부딪혀 죽이는 '석형' 등 아주 센 스릴러 B무비일지라도 감히 흉내내지 못할 온갖 수단방법들이 총동원됐다.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는 빨간 벽돌이 압권. 딸의 원조교제에 정신이 나간 아버지(이얼), 화장실에 들어간 그 '남자'를 후려쳤다. 그냥 손에 잡히는대로, 단단하게 생긴 빨간 벽돌이라는 놈으로다. 스릴러는 아니었지만 김기덕 감독의 '빈집' 역시 3번 아이언의 위력을 제대로 보여줬다. 3번 아이언은 잘 알려진대로 아이언 골프채 중에서 가장 긴 채다.
이밖에 박찬욱 등 동양 3국 감독의 옴니버스 '쓰리, 몬스터'에서 피아니스트 강혜정의 손가락을 잘라버린 도끼와 이를 갈아버린 믹서기, 방은진 감독의 '오로라공주'에서 손바닥과 두개골 정도는 일도 아니라는 듯이 관통한 쇠꼬챙이 등도 '구역질이 날 정도로' 참혹했던 한국형 스릴러 무기들이다. 아, 또 있다. 지난해 박진희가 나온 스릴러 '궁녀'에서 작심하고 보여준 손톱과 살 사이를 파고든 바늘, 관객 비명만큼이나 아주 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