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맨'의 감독으로 존 파브로가 결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꽤 의아했다. '엘프' '자투라 - 스페이스 어드벤처' 같은 가족 영화 중심의 필모그래피와, 총 제작비가 2억 달러에 육박하는 슈퍼 히어로 영화가 쉽게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쿠엔틴 타란티노와 조스 웨든('뱀파이어 해결사')이 떨어져나간 뒤 낙점된 주인공이니 뜻밖이 아닐 수 없었다.
주인공 토니 스타크 역으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캐스팅됐다는 뉴스는 더 놀라웠다. 봉태규가 ‘변강쇠’를 연기한다는 소식 정도의 위력이랄까?' 자기 말마따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슈퍼 히어로 타입’이 아니다. 흥청망청 비틀비틀 살아온 인생 역정은 그에게 손가락으로 살갗을 스윽 문지르면 약이나 알코올이 묻어나올 것 같은 이미지를 선사했다. 세상이 아무리 혼탁하기로 술과 약에 찌든 슈퍼 히어로는 없는 법.
하지만 존 파브로 감독은 스튜디오의 반대를 무릅쓰고 막무가내로 다우니 주니어를 고집했다. 톰 크루즈와 니콜라스 케이지가 스타크 역을 탐냈지만 감독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결론을 말하면 그의 선택은 옳았다. 시건방진 백만장자 천재 역에 그보다 더 어울리는 배우는, 지금에야 생각하는 것이지만, 없을 것 같다. 영화의 완성도 또한 무난하다. 토니 스타크가 철갑옷을 뒤집어쓰고 동굴을 탈출하는 장면에서 아이언맨의 옆구리 뒤쪽에서 카메라를 들이댄 연출 감각은 놀라운 데가 있다.
아이언맨이 처음으로 공중을 나는 장면 또한 역동적이다. 구부러진 길을 따라 두어 번 커브를 돈 뒤 공중으로 치솟는 설정이 꽤나 매력적이다. 서너 번의 전투 장면은 나름대로 긴장감 넘친다. 곳곳에 흩뿌려져 있는 유머 또한 세련됐다. 파브로 감독은 어떻게 해야 매력과 긴장감이 만들어지는지는 아는 것 같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한 기자회견에서 파브로 감독은 “정치성과 오락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장면에서 한 가지 묻고 싶다. '아이언맨'에 균형을 잡을 정치성 따위가 있는가? 냉정히 말해 철갑옷의 사나이가 던지는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는 중학교 학급회의 수준이다.
무기회사 사장이 자기네 무기가 잘못 쓰이는 현장을 체험하고 반성한 뒤 더 화끈한 무기(아이언맨 슈트)를 만들어 악을 제압한다는 이야기가 도대체 말이 되는가? 차라리 ‘부모님을 죽인 원수, 내 칼을 받아라’는 줄거리가 더 낫겠다. 더 순수하니까.
영화 줄거리가 얼마나 모순적이었으면 극중에서 오베다이아가 대사로 고백까지 하겠는가. 무기의 폭력성을 깨달았으면 더 화끈한 무기를 만드는 대신 간디처럼 몽매한 대중을 깨우치려 애쓰거나 원효 대사처럼 속세를 떠나 산으로 들어가야 마땅하다. 아니면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상상도 못할 심오한 철학을 설파하거나. 물론 이렇게 만들었다가는 영화 망하기 십상이겠지만, 감독이 굳이 정치성이 어떠네 균형이 어떠네 했다니까 하는 소리다.
대규모 자본이 들어간 상업 영화로서 '아이언맨'은 꽤나 매력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현실을 반영하고 싶었다”거나 “미국의 나아갈 바를 제시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발언은 적이 못마땅하다. 시간 죽이기용 상업 영화를 만들면서 웬 잘난 척이 이리도 심한지 모르겠다. 감독으로 기자들 질문에 성실히 답변한 것 갖고 지나치게 꼬투리를 잡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요즘 미국 사람을 보는 내 기분이 좀 그렇다.
<김유준 에스콰이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