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심모녀'의 이다희. ⓒ홍봉진 기자 honggga@ |
누굴까? 다음달 12일 개봉을 앞둔 영화 '흑심모녀'(감독 조남호·제작 이룸영화사)에서 김수미, 심혜진 만만찮은 두 대선배 사이에서 당돌하게 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는 이. 늘씬한 몸매, 꼿꼿한 자세가 예사롭지 않다. 바로 이다희다. 올해로 데뷔 6년차. 대작 드라마에 번번이 출연했으나 스크린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다희의 존재를 가장 분명하게 알린 건 지난해 최고 화제작 가운데 하나인 드라마 '태왕사신기'다. 이다희는 담덕 배용준을 보위하는 여전사 각단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174cm의 늘씬한 몸에 갑옷을 걸친 것만으로도 강렬했는데, 흔들림 없는 눈빛이며, 절도있는 몸짓까지 더해지니 "대체 저 배우가 누구냐"는 질문이 빗발쳤다. 갑작스런 죽음을 두고선 "너무 빨리 죽였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감사할 뿐이죠. 그런 반응을 기대한 건 아니었는데 저도 무척 기뻤어요. '태왕사신기'는 제게도 특별한 드라마에요. 너무 지친 적도 있었어요. 제작이 연기되고 하면서 3년을 기다렸으니까요. 액션스쿨만 1년반을 다니고 승마를 1년간 배웠죠. 여배우라고 봐주신 건 하나도 없었어요. 고생을 많이 하니까 보람도 남다르더라구요."
대한민국에 나만큼 액션스쿨을 열심히 다닌 배우가 몇이나 되겠냐고 웃음을 짓는 이다희. '흑심모녀'에선 액션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다며 대신 발차기 장면을 NG없이 한 번에 끝냈다고 'V'자를 그려보였다.
"제가 맡은 나래는 허영기 가득한 철부지 딸이에요. 엄마는 아끼느라 발을 동동 구르는데 택시 타고 다니며 '거스름돈은 됐어요' 하는 식이죠. 능력은 안되면서 아나운서를 하겠다고 우겨요. 그것도 아나운서를 발판삼아 연예인을 해보겠다는 건데, 말그대로 큰 거 한 방을 노리는 아가씨죠."
'태왕사신기' 출연 당시의 이다희. ⓒMBC |
이다희이 변신은 카리스마 여전사를 거쳐 온 것이기에 더욱 눈길을 끈다. 김수미, 심혜진이란 쟁쟁한 선배에게도 눌리는 법이 없었다. 사실 이다희는 한류스타와 함께하는 대작 드라마와 인연이 깊다. 배용준과 호흡을 맞춘 '태왕사신기'는 물론 권상우 김희선의 '슬픈연가', 최지우 이정재의 '에어시티'에도 출연했다.
"처음엔 부담되죠. 인터뷰를 해도 늘 배용준씨가 어떠냐, 최지우씨가 어떠냐는 질문을 받곤 했어요. 하지만 같이 촬영하는 신이 많지 않으니까요. 섭섭하다는 생각은 안해요. 당연히 초점이 그리 가는 거지요. 주눅들거나 하는 것 원래 없었어요. 저는 제 몫을 해야 하는 거잖아요."
스무살 철부지 나래 역시 마찬가지였다. 버릇없는 안하무인 아까씨가 눈치를 봐서야 되겠냐는 게 이다희의 설명이다. 그래도 대선배 김수미의 머리를 때려야 할 땐 참 곤혹스러웠단다.
"'틀렸습니다, 공부하세요' 하면서 막걸리통으로 선생님 머리를 때리는데, 다음 대사가 '앙 몰라' 이런 거거든요. 너무 죄송한데 너무 웃겨서 웃음보가 터진 거예요. 선생님은 '괜찮아 괜찮아' 하시는데…. 나중엔 혼자 웃었어요. 많이 힘들었어요."
이다희는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02년 슈퍼모델로 연예계에 첫 발을 디뎠다. 이다희는 "어렸을 때 일을 시작하기도 했지만 연기 말고 다른 걸 바라본 적이 없다"고 강조한다. '태왕사신기'를 3년간 기다리기만 하던 시절엔 '왜 내가 이 일만 일편단심 했을까' 후회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다희는 "후회없다"고 잘라 말한다. TV에 나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봐 TV도 보지 않던 시절을 지내며, 은퇴한 연기자들이 뒤늦게 컴백하는 마음을 미리 느꼈다는 그녀, 역시 다부지다.
"연기가 없으면 저는 뭘 해야할 지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만큼 한가지에 집중해왔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오래 좋아해본 일은 연기뿐이에요. 그런 일을 제가 하고 있다는 게 행복해요."
'흑심모녀'의 이다희. ⓒ홍봉진 기자 honggg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