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에게 외면 받는 영화가 있다. 개봉된 지 얼마 되지 않았건만 박스오피스 어느 자리에도 제목을 올리지 못했다. '위 오운 더 나잇'. ‘우리는 밤을 지배한다’는 경찰 배지 속의 한 영어 문구를 발음 그대로 옮겨 놓은 제목의 영화다.
감독 제임스 그레이는, 우리나라 관객들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꽤나 명망 있는 연출가다. 그의 관심은 온통 형제, 부모, 가족, 친구에 쏠려 있다. 그들이 살아가는 지역적 배경은 뉴욕. 비열하고 잔인한 대도시의 폭력 조직이 꼼짝 못하게 옭죄는 사이에서 그들은 갈등하고 신음한다. 베니스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데뷔작 '리틀 오데사'부터 그랬다. 두 번째 작품 '더 야즈' 또한 그랬다. 세 번째 연출작 '위 오운 더 나잇'도 그렇다.
폭력조직을 배경으로 부모 형제의 이야기를 그린다는 점에서 언뜻 '대부'를 떠올리게 하지만, 작품의 백미는 뜻밖에도 액션이다. 빗속을 뚫고 자동차로 쫓기고 쫓는 장면의 긴박감은 대단하다.
비오는 날에는 자동차 추격 장면을 촬영하지 않는 게 그 세계의 불문율이다. 너무나 위험하기 때문이다. '위 오운 더 나잇'은 그 위험을 컴퓨터그래픽으로 극복했다. 맑은 날 찍어 비를 그래픽으로 그려버렸다. 그 결과는 ‘진짜’가 아니라고 도저히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사실적이다. 여기에 장면의 대부분을 바비(호아킨 피닉스)의 시점으로 그려내는 효과적인 연출까지 더해져 비오는 날의 추격 신은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경찰과 갱들이 대치하는 갈대밭 총격 장면도 영화의 마무리로 손색없다. 두 장면만으로도 영화는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반면, 이야기는 새로울 것도 없고 대수로울 것도 없다. 아버지는 무뚝뚝하지만 정의롭고 형은 모범적이다. 동생은 좋게 말하면 자유롭고 나쁘게 말하면 빗나간다. 그러다가 동생이 관련된 어떤 사건을 계기로 형은 다치고 아버지는 죽는다. 동생은 복수의 칼날을 뽑아든다. 소설과 무협지와 드라마와 만화와 영화에서 수천 번은 들었을 법한, 흔한 이야기다.
다만 로버트 듀발, 마크 왈버그, 호아킨 피닉스의 좋은 연기가 새롭지 않은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점만은 언급해야겠다. 구조도 탄탄하고 사건을 풀어가는 열쇠도 나름대로 설득력 있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형제가 나누는 “사랑한다”는 대사가 끝내 진한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은, 기둥줄거리가 워낙 구닥다리기 때문이다(바비가 지배인으로 일하는 디스코 클럽의 성격이 좀 더 영화에 드러났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어쨌거나 '위 오운 더 나잇'은 5월에 개봉한 영화 가운데 가장 진지하고 신중하다. '더 야즈'가 개봉될 당시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뉴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지하철 차량을 개조하는 회사를 운영하셨는데, 그런 사업에는 으레 행정당국의 부정과 힘센 자들의 폭력이 개입됐다. 내 영화는 그런 기억에서 출발한다.”
제임스 그레이의 영화들이 사실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 번째 연출작에 이르러서는, 억지로라도 색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평생 그 기억만 우려먹고 살 수는 없을 테니까.
<김유준 에스콰이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