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크레더블 헐크'의 첫 장면은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지나간다. ‘헐크’가 태어난 경위를 몇 분 만에 총정리하려는 듯 무서운 속도로 진행된다. 이미 다 아는 이야기, 길게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이는데, 이 자체는 나쁘지 않다. 텔레비전 시리즈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도 첫 장면은 으레 그랬으니까.
다만, 길게 설명 않겠다는 이런 식의 태도가 남발되는 것은 문제다. 이야기할 때 듣는 사람 김빠지게 만드는 대표적인 두 가지가 있다. ‘그런 게 있다’와 ‘하필 그때 그랬다.’ '인크레더블 헐크'는 무엇보다 시나리오에 문제가 많다. 특히 ‘그런 게 있다’와 ‘하필 그때 그랬다’가 지나치게 잦은 것은 치명적인 결점이다.
미스터 그린이 미스터 블루를 어떻게 알게 됐고 어떻게 연락하게 됐는지 궁금하지만 영화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냥 그러려니 해야 한다. 해독약으로 쓰는 꽃이 뭔지 알쏭달쏭하지만 이 또한 설명하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장군(윌리엄 허트)이 에밀 브론스키(팀 로스)에게 주사하는 약이 뭔지, 스턴스 박사가 발명한 해독약은 또 뭔지, 해독약을 주사했는데도 브루스 배너(에드워드 노튼)가 다시 헐크가 된 이유는 뭔지, 죽다 살아난 어보미네이션은 어떻게 됐는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영화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궁금하면 원작 만화를 보거나 속편을 기다리라는 식이다. 이 때문에 관객들은 어쩔 수 없이 ‘그런 게 있나 보다’ ‘하필 그때 그랬나 보다’ 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런 이야기가 긴장감을 자아낼 리 없다.
영화는 헐크와 어보미네이션이 싸우는 마지막 장면을 향해 좋게 말하면 힘차게, 나쁘게 말하면 무식하게 돌진한다. 문제는 마지막 액션의 파괴력인데, 이 점에서 '인크레더블 헐크'는 그리 나쁘지 않다. 이안의 '헐크'가 선사한 액션에 실망한 관객이라면 어느 정도 보상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이안의 영상에 실망했다는 것은 만화와 영화를 접목하려 한 영상 실험에 실망했다는 뜻일 것이다. '인크레더블 헐크'는 그 반대쪽에 위치한, 지극히 영화다운 영화다. 헐크와 특수부대원들이 싸우는 첫 번째 액션 장면부터 어보미네이션이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액션은 더 현실감 있으며, 더 박진감 넘친다. 적어도 헐크가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낸 가짜라는 느낌은 쉬 들지 않는다.
이안의 '헐크'가 ‘만화가 되려 한 영화’였다면 루이스 리테리어의 '인크레더블 헐크'는 ‘영화가 되려 한 만화’라고나 할까. '헐크'가 '도망자'의 정서를 닮았다면 '인크레더블 헐크'는 '킹콩'의 정서를 닮았다고 할까. 아무튼 '인크레더블 헐크'는 오리지널을 철저하게 ‘배격’하는, 보기 드문 속편이다. 덮어놓고 이안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재미있다는 말이 선뜻 내키지 않는다.
-첫 장면의 몽타주 시퀀스에서 알 수 있듯 '인크레더블 헐크'는 텔레비전 시리즈에 대한 향수를 진하게 드러낸다. 텔레비전 시리즈에서 헐크를 연기한 루 페리뇨는 피자 뇌물에 넘어가 브루스 배너를 실험실로 들여보내는 경비원 역으로 등장하고, 브루스 배너 역의 빌 빅스비는 이미 고인이 된 관계로 텔레비전에 “엄청난 펀치군”하는 대사의 옛날 영상이 잠깐 등장한다.
<김유준 에스콰이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