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자매 이야기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언니는 노심초사, 이 한마디면 족하고 동생은 복수혈전, 이 한마디면 족하다. 간만에 느끼는 젊은 미니시리즈의 초강력 파워다. 김지수와 이하나가 두 주인공으로 나선 KBS 수목극 '태양의 여자' 얘기다. 시청률 6.8%로 출발한 드라마가 어느새 17.4%(14회)까지 치고 올라왔다.
언니 신도영(김지수)은 지금 만신창이 상태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입양된 집의 다섯 살짜리 동생 지영(윤사월. 이하나)을 길거리에 버린 선택이 그녀의 '업보'이자 '원죄'였다. 시시각각 자신을 옥죄어오는, 모든 걸 다 알아버린 지영의 두 손. '엄마' 정애리의 기억상실로 잠시 숨을 돌리나 싶었는데, 이게 또 무슨 날벼락?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가 버젓이 연극무대에 올라간 것 아닌가. 그것도 지영이 직접 출연하는 연극, 약혼자 한재석이 바로 옆에서 보는 그 연극.
동생 지영은 '언니' 도영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데 대한 첫 분노. 하지만 이는 '초등학교 5학년짜리의 너무나 철없는 잘못'으로 용서하기로 했다. 하지만 '윤사월=지영'이란 사실이 밝혀진 지금, 왜 도영은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걸까. 더구나 그렇게나 품이 그리웠던 엄마마저, 겨우 자신을 눈물로 알아봤던 그 엄마마저 아무 것도 기억 못하는 지금에. 그래서 윤사월에게 남은 건 '독기'와 '결기' 뿐이다.
드라마는 이처럼 사연 많은 두 자매 이야기다. 그것도 여러 옛 동화 주인공 캐릭터가 이리저리 교차해, 익숙할 대로 익숙한. 신도영이라는 여자는 죽어도 다시는 저잣거리로 돌아가기 싫은 거지이자, 죽어도 다시는 유리구두 벗고 싶지 않은 신데렐라 아닌가. 윤사월은? 못된 왕비로부터 후환이 두려워 궁궐에서 내쫓긴 불쌍한 백설공주이자 원래 귀족 태생인데 지금껏 생고생한 소공녀, 못된 의붓자매에게 구박당한 콩쥐, 그래서 결국 '현실'이라는 무인도에 표류한 로빈슨 크루소가 아닌가.
하지만 '태양의 여자'의 관전 포인트는 이 정도 수준이 아니다. 과연 신도영은 그 수많은 동화의 공식 그대로, 어서 천벌 받아야 마땅한 못된 악녀일 뿐인가. 그리고 윤사월은 어서 정의의 이름으로 제 위치를 찾게 될 착한 공주일 뿐인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청자들은 헷갈리기 시작한다.
우선 신도영. 20년 전 12살 소녀의 선택이, 이처럼 오만 곳에서 손가락질을 받고 하루하루 휘청거릴 정도로 치러내야 할 대단한 '업보'이자 '원죄'일까. '동생' 윤사월은 물론이고, 상스러운 고아원 동기, 언제 제 정신 차릴지 모르는 엄마, 이미 많은 걸 알아챈 약혼자, 그리고 앞으로 모든 걸 알아챌 거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돌을 맞아야 할 정도인가. '파양이 결국 죽음'이었던 그 가엾은 12살 소녀의 선택이란 게 그렇게나 몹쓸 짓이었나. 차라리 몹쓸 것으로 따지면 제 자신도 부모 품이 그렇게나 그리웠던 신도영의 출생 자체가 '업보'이자 '원죄' 아니었나.
윤사월 역시 동화 끝날 때까지 언제나 선했던 그런 주인공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제 출생의 비밀을 안 이후부터는 파워 업그레이드된 신종 팜므파탈이자, '독기'와 '결기'를 넘어 '귀기'(鬼氣)까지 어린 존재로 변했다. 언니 신도영의 빨간 드레스를 "내 것일 수도 있었는데.."라며 천연덕스럽게 입는 윤사월의 미소는 무섭다. 여기에 '작가 포섭→정보 유출→자금 확보→무대 장악→관계자 초청'이라는 너무나 일사불란하게 진행된 윤사월의 '연극 만들기'. 그것은 신지영이 윤사월로 살아오면서 쌓아왔던 '귀기', 바로 그 귀기가 꺼내든 섬뜩한 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