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화점'의 조인성,'앤티크'의 주지훈,'소년,소년을 만나다'의 김혜성> |
한동안 충무로에 금기로 여겨졌던 동성애가 단숨에 주류로 떠올랐다.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하반기 극장가에 줄줄이 선보인다. 주지훈이 주연을 맡은 '서양골동양과점 앤티크'와 김혜성이 출연한 '소년,소년을 만나다', 그리고 12월 말 개봉 예정인 '쌍화점'이 바로 그 영화들.
이 영화들은 공통적으로 꽃미남 동성애 코드가 담겨 있다. 또한 과거 동성애를 어둡게 그렸던 것과는 달리 밝고 경쾌하게, 그리고 소재의 한 요소로 과감히 차용했다.
지난 2000년 '번지점프를 하다'가 등장했을 때 동성애적인 요소가 담겨있다고 손가락질을 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불과 8년만에 주류 소재로 동성애가 떠오른 까닭을 짚어봤다.
#'왕남' '커프' 등으로 거부감 줄어
그동안 한국 상업영화에서 동성애를 전면에 다룬 작품은 많지 않았다. '번지점프를 하다'를 비롯해 다양한 영화들에서 동성애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관객에 다가갔다. 황정민 정찬 주연의 '로드무비'처럼 동성애를 파격적으로 끌어안은 작품도 있지만 관객에게는 외면 받았다.
동성애 소재가 또 한 번 전면에 부각된 것은 2005년 '왕의 남자'의 등장부터. '왕의 남자'는 예쁜 남자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동성애에 대한 관객의 거부감을 줄였다. 동성애를 소재로 한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도 이 해 3월 개봉, 여성 관객들을 중심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사실 외화는 '패왕별희'나 '크라잉게임' 등을 통해 동성애라는 소재로 꾸준히 한국관객들에 접근해 왔다. 하지만 동성애라는 소재에 진지하게 접근한 영화를 국내 관객들이 온전히 받아들인 기점은 2005년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회하지 않아'가 등장한 것은 이듬해였다.
안방극장에서도 동성애는 또 다른 소재 차원에서 접근되기 시작했다. 2007년 MBC에서 방영된 '커피프린스 1호점'은 꽃미남들이 동성애로 고민하는 것을 보는 즐거움을 2535 여성세대들에 눈뜨게 했다.
또한 '섹스 앤 시티' 'L워드' 등 미국 드라마 역시 동성애를 익숙하게 하는 요소가 됐다.
최근 SBS에서 방영 중인 '바람의 화원'에서도 동성애적인 코드가 등장해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보수적인 안방극장에서는 동성애 코드가 우회적인 방법으로 다뤄지고 있지만 대중문화의 최전선인 영화에서는 주류로 당당히 등장하게 된 것이다.
#언니들, 꽃미남 동성애를 탐하다
동성애가 금기에서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상업영화에 흥행코드가 되기 위해서는 수요층이 분명해야 한다.
현재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들은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는 2535(25~35세) 여성들을 타켓으로 한다. 이들 여성군은 최첨단 문화를 적극적으로 소비할 뿐 아니라 트렌드를 창출하기에 상당수 영화들은 처음부터 이들을 겨냥하고 기획되기도 한다.
꽃미남 동성애 영화도 바로 이들을 겨냥한다. 2535세대 여성들은 어린 시절 '할리퀸' 로맨스를 보고 자랐으며, '미드'와 '일드'의 세례를 받았고, 일본문화 개봉으로 '야오이'(여성들이 창작하는 남성 동성애물)에 익숙하다.
때문에 이들은 동성애를 다양한 소재 중 하나로 인식할 뿐 거부감이 적다. 더욱이 꽃미남 동성애에는 일종의 판타지도 작용한다.
꽃미남 동성애가 소재로 떠오는 것은 이성연애자인 남성관객이 남성 동성애 소재에 거부감을 갖는 것처럼 이성연애자인 여성관객이 레즈비언에 부담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앤티크' 공동제작사 영화사집 이유진 대표는 "최근의 트렌드와 꽃미남이라는 코드가 젊은 여성들에 호기심을 자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앤티크'와 '소년,소년을 만나다'가 동성애를 밝고 경쾌하고 그리는 것도 여성 관객들의 취향을 상업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이다. '앤티크'에서는 뮤지컬 장면이 등장하는 등 영화 전체를 발랄하게 그리고 있으며, '소년,소년을 만나다'는 한편의 단편 소설 같은 접근 방법을 택했다.
파격적인 접근 방법으로 화제가 됐던 '후회하지 않아'와는 전혀 다른 접근 방법이다. 이유진 대표는 "동성애가 주제가 된 것이 아니라 등장 캐릭터의 소재라는 점에서 밝고 경쾌하게 그려진 게 '앤티크'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동성애, 흥행 코드로 자리잡을까
동성애라는 소재를 상업 영화에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은 다양한 소재를 찾기 위한 노력에서 비롯됐다.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외부적인 요건에 새로움을 찾기 위한 시도가 결합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동성애라는 소재가 흥행 코드로 자리잡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동안 동성애를 전면에 다룬 영화는 퀴어영화로 소개됐을 뿐 상업적인 접근이 없었던 것도 동성애를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동성애 코드가 담겨있는 '쌍화점'이 주인공 조인성의 동성애가 아닌 조인성이 벗었다는 것으로 더 잘 알려진 것도 미지수에 대한 부담 때문이기도 하다.
'쌍화점'의 투자배급사 쇼박스의 박진위 홍보팀장은 "'쌍화점'에 담겨 있는 여러 요소 중 일부가 동성애일 뿐"이라고 말했다. 박 팀장은 "퀴어영화와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는 다르다. '괴물'이 단순히 괴물과 싸우는 영화가 아닌 것처럼 '쌍화점'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동성애로 포장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꽃미남 동성애 코드는 2535 여성 공략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대박'을 노리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만큼 보수적인 한국사회에 벽이 두텁기 때문이다.
과연 '앤티크'를 선두로 한 꽃미남 동성애 코드 영화들이 새로운 소재로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될지, 그 결과 또 다른 흥행 코드 혹은 또 다른 소재로 진화할 수 있을지, 관객의 선택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