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원작으로 한 두 편의 할리우드 영화가 나란히 극장에 걸린다.
지난 5일 개봉한 '왓치맨'과 12일 개봉한 '드래곤볼 에볼루션'이 바로 그 주인공. '왓치맨'은 앨런 무어의 동명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며, '드래곤볼 에볼루션'은 국내에도 잘 알려진 토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볼'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그러나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두 영화는 원작에 대한 해석이 지구와 화성, 아니 지구와 나메크별처럼 차이가 크다.
86년 발표된 '왓치맨'은 가상의 역사를 배경으로 핵전쟁에 대한 공포를 미국 대중문화의 상징인 히어로에 투영한 작품이다. 배트맨은 옛날을 그리는 발기부전 환자며, 원더우먼은 불륜의 씨앗이고, 슈퍼맨이 베트남전쟁을 해결한다는 식으로 가면 쓴 히어로에 덧칠된 영웅 신화를 제거한다.
그리스신화를 원형으로 한 영웅 신화를 해체하고, 또한 인류 파멸과 구원을 묵시록적으로 담았기에 '왓치맨'은 지금까지 걸작으로 추앙받는다.
애초 작가의 전작인 '닥터 슬럼프'에서 큰 틀을 벗어나지 못했던 '드래곤볼'은 대결과 승리, 또 다른 강적의 출연이라는 공식을 완성시키면서 일본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모은 만화다. 국내에서도 해적판을 비롯해 200만부 이상이 판매된 것으로 추정될 만큼 사랑을 받았다. '서유기'에서 캐릭터를 가져왔지만 소년만화의 공식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우정과 노력, 승리를 담았기에 소년 팬들의 절대적인 인기를 모았다.
영화화된 두 만화는 원작에 대한 접근방식부터 현저히 다르다. '300'을 영화화했던 잭 스나이더는 원작에 대한 경의를 담아 영화를 만들었다. 원작의 장면마저 화면으로 그대로 재현하려 했으며 그 때문에 2시간 40분이라는 분량으로 만들어졌다. 영화적인 완성도보다 원작 재현에 충실했다는 평을 받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반면 '드래곤볼 에볼루션'은 원작의 캐릭터만을 가져왔을 뿐 미국 십대 틴에이저물로 재탄생했다. 원작에 대한 애정은 고사하고 CG 효과마저 조악하기 그지없다. 미국 십대가 맡은 손오공과 슈렉 같은 피콜로는 원작 팬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동양을 신비한 곳으로 치부하는 오리엔탈리즘도 담겨있다.
두 영화가 각기 다르게 만들어진 까닭은 원 소스에 대한 할리우드의 접근 방식 때문이다. '왓치맨'을 포함해 '스파이더맨' '다크나이트' 등 최근 진화되고 있는 히어로물은 미국 대중문화에 뿌리를 받은 작품들이며, 그 세례를 받고 자란 감독들에게서 영화화됐다.
반면 '드래곤볼'처럼 다른 문화권에서 탄생한 작품은 할리우드에서는 다양한 소재로만 받아들여지곤 한다.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된 한국영화들이 소재를 빌려줬을 뿐 완성도가 한창 떨어지는 것과 비슷한 이유다.
세계를 점령한 할리우드지만 그 뿌리는 미국 대중문화에 바탕을 뒀으며, 철저히 미국화시킨다는 사실을 두 영화를 통해 재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