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전. 서울 강북지역의 젊은 건달들에게 강동철이라는 이름은 알아주는 주먹꾼이었다. 스무살, 또래 건달들에게 그 이름 석자는 위압적인 존재였다. 지금쯤 그가 현역에서 여전히 활약상을 펼치고 있었더라면 이른바 '전국구'로 위용을 떨쳤을지도 모를 만큼. 그러던 어느날 그는 뜻밖의 일격을 당한다. 칼잡이로부터의 습격이 아니라 어처구니없게도 '센 음악' 하나에 주먹 세계에서 전격 은퇴하게 된다.
자신이 관리하던 업소에 들른 강동철은 DJ가 틀어놓은 음악을 듣고 그 자리에서 꼿꼿하게 굳어버린다. '사이프레스 힐'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사우스게이트에서 결성된 힙합 그룹 사이프레스힐(Cypress Hill)은 베이스 리듬이 특히 강조된 사이키델릭한 음악이다. 그 음악의 가사 자체가 강동철의 삶, 그 자체였다. 그날 저녁부터 강동철은 '구역 관리'에서 전면 휴업에 돌입한다. 그리고 매일 밤 자신을 무릎꿇게 한 그 음악을 머리맡에 틀어놓은 채 며칠 밤을 고민한다. 그는 다음날 낙원상가로 뛰어간다. 신디사이저를 구입한 건달. 음악은 그렇게 주먹을 내려놓게 만들고 말았다.
며칠 전, 강남에 위치한 그의 회사 '브레이브엔터테인먼트에서 '건달 강동철'이 아닌 '유명 작곡가 용감한 형제'를 만났다. 양팔에는 문신이 굵직하게 새겨져 있었다. 지난해 손담비 '미쳤어', 브라운아이드걸즈 '어쩌다', 빅뱅 '거짓말'(편곡) 등 히트곡을 양산하며 최고 인기를 누린 작곡가를 면전에 두고 자꾸 선이 굵은 문신 쪽으로 눈길이 갔다.
"하하, 이거요. 뭐 그런 거죠..."
시커먼 팔뚝으로 모아진 시선을 의식하고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그의 수줍은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지난 이력이 마치 거짓말처럼 들렸다. 1979년생. 그가 정상에 오르기까지 지난 10년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당시 스무살의 그는 친형 강흑철과 '용감한 형제'를 결성하고 데몬스트레이션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가 존경해 마지않았던 YG의 양현석에게 보냈다.
"당시 데모 음반에 있었던 곡이 '디어 베이비 (Dear Baby)'란 곡이었요. 배우 고소영에게 보내는 내용이었죠. '스크린속에 있는 너를 보고 너무 좋아 뻑 갔다' 뭐 그런 내용이었는데, 그런 생각들은 누구나 하는 거잖아요. 그게 바로 대중성이라 생각해요. 심각하면 불편하잖아요. 뭐 그런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리고 전격 발탁됐다. 2004년 그는 YG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렉시'를 시작으로 '세븐', '빅뱅' 등의 음반에 작곡, 편곡자로 이름을 올리면서 그는 '요주의 인물'로 가요계의 검증 절차를 마쳤다. 그의 사운드는 그렇게 진화의 단초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2008년 연초에 그는 자신의 닉네임을 딴 회사를 설립하자마자 '대형 사고'를 쳤다. 손담비였다. 사실 오늘의 손담비가 인기를 확장하는데 그의 곡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쳤어'의 열풍은 확산일로. 그를 지난해 최고의 작곡가로 만들어 놓았다.
"그게 아마 3분만에 만들어진 곡이었어요. 당시 연인과의 이별 앞에 스스로 주체하지 못할 만큼 미친 상태였어요. 혼자 '미쳤어'를 반복하다가 나온 곡이었어요."
그는 손담비에 이어 브라운아이드걸스(어쩌다), 애프터스쿨(AH), 배슬기(지겨워), 한유나(마네킹) 등의 라인업을 내세우며 짧은 시간에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히트작곡가로 성장했다. 손담비의 오늘을 일궈낸 그는 연타석 홈런을 기록해 나갔다. 일각에서는 '운이 좋은 작곡가'라는 말이 나돌았지만 그는 그것이 한낱 기우였음을 스스로 입증해버리고 말았다.
"곡을 쓰면서 안무를 떠올린 곡이죠. '토요일밤에'에서 손담비가 손을 치켜올리고 손가락을 비트는 안무는 제가 낸 아이디어였지요."
그는 인기 작곡가라는 타이틀보다 '용감한 형제'의 멤버로 남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실천적 행보를 위해 지난 8년간 칼을 갈고 있었다. 오는 8월 18일 '용감한 형제'의 첫 싱글 음반 'Attitude'(에티튜드) 발매를 앞둔 그의 각오는 남달랐다.
"개인적인 음악적 고집이 함축된 음반입니다. ‘이것이 진짜 나의 음악이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한 흔적의 결과물이죠. 자신있습니다."
그는 이번 첫 싱글 앨범에 대해 힙합비트의 사이버적인 색깔을 가미해 신나면서도 거친 비트감을 만나게 될 것이라 확신했다. 아울러 멜로디라인보다는 사운드를 강조했다고 귀뜸을 했다. 빅뱅의 '마지막 인사'를 비롯해 함께 곡작업하며 음악적 유대를 나눈 지드래곤과 같은 날 음반을 발매하게 된 것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지드래곤과의 선의의 경쟁에 대해 그는 말을 아꼈다.
"그야말로 전 신인이고, 빅뱅의 지드래곤을 아끼고 지지하는 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경쟁이라니요. 저는 제 갈 길을 갈 뿐이죠. 하하."
주먹을 내려놓은 청년이 그 손에 악기를 부여잡은 지 10여년. '용감한 형제'의 오늘이 빛날 수 있었던 것은 음악으로 성공하겠다는 '뚝심'이 전부였을 것이다.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그의 별명이 '올드보이'라는 말이 귓전에서 떠나지 않았다.
<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문화전문계간지 '쿨투라' 편집위원. www.writerk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