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화속으로'의 탑 ⓒ이명근 기자 qwe123@ |
영화 '포화속으로'(감독 이재한)에서는 익숙하고도 낯선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탑, 그리고 최승현. (그는 크레디트에서 두 이름을 다 쓴다)
빅뱅의 래퍼인 탑은 한국전쟁의 흐름을 바꿔놨던 학도병들의 목숨을 건 사투를 담은 이번 영화에서 주인공 오장범 역을 맡아 처음으로 스크린에 진출했다. 무대에서 시선을 사로잡았던 진한 아이라인과 화려한 의상은 사라졌다. 먼지 묻은 검정 교복과 검게 그을린 얼굴이 그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앞서 공개된 스틸컷에서 탑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빛을 발산하고 있다.
개봉을 앞둔 탑을 만났다. 한 번의 외도로 시작한 연기가 지금에 이를 줄은 몰랐다고 탑은 털어놨지만 불안보다 기대가 많은 눈빛이었다. 빅뱅 멤버들이 돌아가며 냈던 솔로 앨범까지 포기하고 반 년을 지방에 틀어박혀있다시피 하며 찍은 한 편의 영화. 탑은 "후회는 없다. 영광스러운 기회였다"고 눈을 반짝였다.
-처음 주인공으로 찍은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흥행 부담 안되나?
▶거기까지는 생각도 안 해봤다. 영화계에서 너무 신인이고 해서. 제가 맡은 본분만 했다. 개봉하는 날까지 기다리는 것 자체가 설레고 걱정도 많이 되고 그런다. 그런 생각할 겨를이 없다. 어떨까. '여러분들이 보시고 어떤 생각을 하실까' 그런 기대감 혹은 부담감이 좀 있는 것 같다.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을 하고. 계속 촬영해왔다.
-처음 드라마 '아이엠 샘'에 출연했을 때만 해도 외도라고 생각했었다.
▶저도 그랬다. 사장님이 이런 역할 섭외가 들어왔는데 어떠냐 하셨는데, 그때까지는 연기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겁도 났지만 경험이 될 거라는 사장님 얘기에 했던 작품이었다. 무대에 서는 건 자신있지만 너무 다른 곳이었고, 그땐 촬영장 가기가 겁이 났다. 그런데 '아이리스'를 하면서 조금씩 욕심이 생겼다.
제가 나오는 모습을 모니터링하면 미흡한 모습만 보인다. 아주 부정적인 편은 아니지만 또 긍정적인 편은 아니다. 제 자신에게 관대하지가 못하다. 기왕 할 거라면 부족한 점을 채워나가자는 욕심이 생겼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포화속으로'의 탑 ⓒ이명근 기자 qwe123@ |
-어떻게 '포화속으로'에 출연하게 됐는지.
▶'포화속으로'를 하기 전까지는 고민이 많았다. 연기 경험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 '아이엠 샘'을 한 지가 벌써 3년이 됐다. 부담감보다 책임감이 더 큰 짐이었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많이 고민했다. 영화를 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사실 영화를 찍지 않았다면 준비해왔던 솔로 앨범을 내놨을 거다. 하지만 앨범을 내지 않고 영화를 하게 된 건 시나리오 때문이었다. 굉장히 의미가 있었다. 처음이었다. 이유모를, 이건 내가 꼭 해야겠다는 이상한 기분. 안하면 후회하겠다는 기분.
제가 아이돌 가수이자 래퍼로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듯이 다른 방법으로 젊은 친구들, 꿈이 없는 친구들에게 많은 걸 줄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솔로 앨범이야 내년이든 내후년이든 팬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 때 낼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 때가 아니면 할 수가 없었다. 이런 의미있는 영화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다.
-촬영은 어땠나?
▶반년간 합천에서 촬영을 했는데, 외롭고도 쓸쓸한 시간이었다. 오정범이란 캐릭터 자체도 그런 느낌과 성향을 가진 캐릭터라서, 그런 17살 소년으로 지내려고 노력을 했다. 탑, 그리고 최승현 제 자신을 버리려고 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반년을 그렇게 지내왔다.
촬영공개 때 취재진이 왔는데 서울 사람들이 합천에 있다는 게 신기하더라. 거긴 식당 메뉴도 몇 개 없다. 곰탕 또는 감자탕, 아니면 중국집. 부모님 해주시는 밥이 제일 맛있는 거더라.
-빅뱅 동료들은 뭐라고 하나.
▶영화 찍으면서 일본 콘서트 10회를 했다. 정신없이 지낸 것 같다. 반년이 기억이 나지 않더라. 얼마 전 태양이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무척 예민했었다고. 다가가기가 힘들었고, 그게 가슴이 아팠다고. 고마웠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아 맞다, 내가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됐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영화라 부상 위험도 많았을 텐데.
▶거짓말이 아니라 하루하루가 부상의 연속이었다. 폭파신이 너무 많고 감정 신이 너무 많고, 항상 긴장이 돼 있어서 다쳐도 잘 몰랐다. 숙소에 들어가서 씻으려고 옷을 벗으면 그제야 멍투성이에 살 뜯긴 걸 발견하곤 했다. 한번은 눈에 쇳가루가 들어가서, 응급실 신세도 졌다. 의사선생님 말로는 잘못했으면 실명했을 거라고 하셨다. 아프기도 아프고, 눈에 가루들도 보이고, 그땐 긴장했을 때인데도 겁이 났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젊은 나이에 뭔가를 위해서, 제 일을 위해서 즐기면서 다쳤다는 게 감사한 일이었다고 느껴진다.
-영화에서 크레디트에 탑과 최승현이라는 이름을 동시에 쓰던데. 다른 이유가 있나?
▶사실 본명을 쓰고 싶지 않았다. 탑이라는 제 이름이 좋았다. 최승현이란 이름은 제 주위 분들과 팬들만 불러주는 이름으로 간직하고 싶었다. 대중들은 저를 탑이라고 알고 있는데 제가 연기한다고 최승현이라고 나와서 인식을 바꾸는 것 자체가 무모해보였고,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그런데 차승원 권상우 선배님들 이름 나오고 탑 이라고 나오니까 너무 튀더라. 동떨어진 기분도 들고. 감독님도 제가 본명을 썼으면 좋겠다고 하시고. 다음 작품에서는 어떻게 할 지 잘 모르겠다. 저한테는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닌 것도 같다. 그 전에는 탑이라고 불리고 싶다.
'포화속으로'의 탑 ⓒ이명근 기자 qwe123@ |
-다른 가수 출신 배우들이 영화에서는 실패한 사례가 많다. 걱정은 안 됐나?
▶그런 걱정을 해 본 적은 없다. 만약 인기를 얻고 싶어서 연기했다면 생각했을 텐데, 그런 것 없이 저한테 의미있는 일로, 새로운 즐거움으로 하게 됐던 게 연기였다. 인기를 얻고 싶었다면 트렌디 드라마나 그런 쪽을 하지 않았을까. 그걸 나쁘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성향 상 저랑은 안 맞는 것 같다.
-이번 작품에서 기대하는 게 있다면.
▶두 가지다. 제가 연기를 엄청 잘할 수 있는 건 말이 안되지 않나. 그런데도 보고 모든 사람들이 '포화속으로'를 보면 놀라게 하고 시다는 생각으로 했다. '저게 진짜 탑이야?' '탑에게도 저런 모습이 있었어?' 그런 말을 듣고 싶다. 그만큼 캐릭터에 젖어들었다는 것을 증명받고 싶다는 혼자만의 기대가 크다. 24살 최승현이라는 사람의 능력치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두번째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 꿈이 없는 젊은 사람들이라든지, 어린 친구들이라든지, 혹은 지금 많이 힘든 사람. 누구나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사람이 보면 많은 걸 깨달을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