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기자 |
16일 개봉하는 '퀴즈왕'은 여러모로 장진표 영화다. '퀴즈왕'은 4중 충돌사고를 겪은 사람들이 한번도 우승자가 없어 100억원이 넘는 상금이 누적된 퀴즈쇼 마지막 문제를 알게 된 뒤 퀴즈쇼에 도전한다는 이야기다.
수많은 배우들이 왁자지껄하는 군상코미디, 카메라에 30분째 한 장소에서 이동하지 않은 연극식 구성, 쉬지 않고 주고받는 말장난식 대사...'퀴즈왕'은 장진 감독 영화의 전형을 한 지점까지 끌어올리려 시도한 영화다.
이런 구성은 욕심을 비웠기에 가능했다. 장진 감독은 '퀴즈왕'을 한국영화 평균제작비의 10분의 1쯤 되는 3억5000만원으로 2주 동안 촬영했다. 김수로 한재석 정재형 등 이른바 장진사단 배우들이 출연료를 투자로 돌려 가능했다.
스태프도 마찬가지. 장진 감독은 "내가 찬스 한번 쓴다니깐 많은 사람들이 도와줬다"고 했다. 원래 번듯하게 개봉할 생각도 없었다. 장진이기에 가능했던 사연을 들었다.
-영화 초반에도 그렇고 중반에도 MB에 관련한 유머가 있는데. '굿모닝 프레지던트'에 이어 그런 부분이 있으니 의미심장한데.
▶그 부분에서 다들 '빵' 터진다.(웃음) 대중영화니깐 그다지 혐오스럽지 않게 애교스런 재미를 느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를 끝내고 저예산 영화를 만들었는데.
▶진짜 개봉 생각없이 시작했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주주지분제를 계약서에 명시했다. 배우, 스태프들이 원래 받는 돈 대신 지분으로 영화제작에 참여했다. 우리 제작사인 소란도 아예 제작대행으로 넣었다. 제작사 지분을 없앤 거다. 수익률도 200% 인정한다고 했고. 만일 '퀴즈왕'이 흥행에 성공해 220만명이 들면 원래 1000만원 받는 스태프는 3000만원을 넘게 받게 된다. 충무로 제작방식에 하나의 좋은 사례가 됐으면 했다.
-에필로그가 없다보니 뒷이야기들에 궁금증이 일던데. 돈이 없어서 못 찍었나.
▶이한위가 폐차장에서 살아나고 류승룡이 로또에 당첨되고 그런 에필로그가 있기는 했다. 마지막까지 고민했는데 물리적으로도 힘들었고 관객들이 그 뒤를 상상하게 만들고 싶었다. 돈 없어서 못 찍었단 것 '쪽' 팔리니깐 쓰지 말아달라.(웃음)
-군상 코미디고 연극식 구성인데.
▶'아들' '굿모닝 프레지던트'를 찍으면서 내가 생각해도 짜증날 만큼 순해진 것 같았다. 그래서 아예 나답다고는 하는 끝을 보여주자고 생각했다. 연극식이라고 지적한다면 끝가지 연극식으로, 말장난이라고 뭐라고 했으니 말장난의 끝까지 가보자, 이런 생각을 가졌다. 애초 소규모로 개봉하고 TV에 판권 팔 생각이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갖고 찬스 한 번 쓴다고 하자 모두들 도와줬고.
-여러 사람들이 등장해 왁자지껄하는 방식이 어느 순간 트레이드 마크처럼 됐는데.
▶평면적인 구조보다 그런 병목적인 구성이 좋다. 사람들의 갈등이 체증이 생기고 그러면서 우월감이 생기는 방식. '아는 여자'처럼 주인공 몇 명이 이끄는 영화도 했지만 개인적인 취향이 이런 게 더 좋은 것 같더라.
또 군상들에 관심이 있다. 여러 사람들이 각자 삶이 있고 과정이 있고, 그 과정을 통해 정답이 아닌 무엇인가를 찾는 게 좋았다. 모든 질문에 답이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정답이 아니더라도 해결할 수 있고.
-일반 코미디에 익숙한 관객들에겐 이런 구성이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라 낯설 수도 있다. 그래서 장진 감독이 제작하면 터지는데 연출하면 관객이 덜 든다는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닐까.
▶내가 다른 감독과 다른 변별적인 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그런 걸로 꾸중도 듣고 핀잔도 많이 들었다. 어릴 적엔 고민도 많이 했고. 하지만 이제는 즐겁다. 나 같은 놈도 있어야지 싶고.
-'퀴즈왕'을 한 건 '굿모닝 프레지던트'에 대한 반성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던데.
▶없지 않다. 방식이랄까 그런 것도 그렇고, 순해졌단 느낌도 들었고. 다음 영화인 '로맨틱 헤븐'에 빨리 들어간 것도 비슷한 이유다. 애초 '퀴즈왕'으로 승부보자고 만든 게 아닌데 자꾸 그런 생각이 들까봐 빨리 영화를 찍으면서 잊자고 생각했다.
-수많은 문제를 직접 만들었나.
▶제작부와 같이 100개쯤 만든 것 같다. 내가 작가 출신 아니냐. 원래 퀴즈를 좋아한다. '골든벨'이 제일 재밌다. 가장 짜증나는 게 시청자에 먼저 답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형사 역에 직접 출연했는데. 원래 연기지도를 잘 하는 것으로 유명했지만 이번에는 본격적인데.
▶다음에는 안할 생각이다.(웃음) 처음부터 내가 할 역은 없었다. 정재영이 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영화 속 그 역할을 하겠다고 하더라. 영리한 거지. 그 다음 신하균이 한다고 했는데 '페스티벌'이 늦어지면서 일정이 안됐고. 차승원도 '포화 속으로'가 늘어지면서 안됐다. 그러다보니 내가 할 수밖에 없었다.
이동훈 기자 |
▶10년전에 직접 목격한 것이다. 교통과에 뺑소니 목격자로 갔는데 4중 추돌한 사람들이 와서 한창 시끄럽더라. 그런데 정말 영화에서처럼 다 세워놓고 경찰이 정리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교통과와 응급실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런 광경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교통과를 '퀴즈왕'에 응급실을 '로맨틱 헤븐'에 담은 것인가.
▶그건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니 너무 허무하더라. 그래서 그 뒤에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시나리오를 결혼하고 한 달 뒤에 썼는데 아내한테 내 유서라고 줬다. 내가 죽어도 이렇게 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로맨틱헤븐'도 '퀴즈왕' 같은 방식으로 제작하는데. 홍상수 감독 같은 방식으로 만드는 것 같기도 하고.
▶그건 아니다. 홍상수 감독 같은 제작은 그 분만 할 수 있는 것이다. 난 투자비를 정상적인 방식으로 줬다고 계산하면 '퀴즈왕'도 14억원이 든다.
-미투데이로 열심히 사람들과 소통한다. 장진 코미디는 일방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는 여느 코미디와 달리 연극처럼 관객과 소통하려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게 특징인데. 그런 방식이 더 많은 관객들과 소통하는 것을 막아선다고 생각은 안하나.
▶그런 생각이 세상살이를 어렵게 하는 것 같다. 난 적지 않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고, 만만치 않게 사람들의 충고를 받고 있다. 그런 사람들 덕에 봉준호 김지운 박찬욱 감독보다 행복하다.
-세상에 던지고 싶은 퀴즈가 꼭 하나 있다면.
▶아~. 최근 몇 년간 받은 질문 중 최고로 난이도가 높다. 역시 퀴즈 내는 건 어려워.(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