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PIFF빌리지 파빌리온을 찾은 관객들 ⓒ부산=홍봉진 기자 honggga@ |
7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출발한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PIFF)가 9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15일 폐막한다. 올해 영화제는 지난 15년간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켰던 김동호 집행위원장의 퇴임을 맞아 '부산국제영화제의 새로운 도약'을 슬로건으로 내 걸었다. 그리고 이러한 기치에 걸맞게, 올해 영화제는 새로운 도약을 위해 내실을 기한 모습이었다.
우선 상영작들의 면면이 그렇다. 올해 영화제는 월드 프리미어와 인터네셔널 프리미어 작품이 각각 103편과 52편으로 67개국 308편인 총 상영작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실속 있는 구성을 보여줬다.
새로운 아시아 감독의 작품들도 대거 소개됐다. '파수꾼'의 윤상현 감독, '무산일기'의 박성범 감독 등 한국의 신인감독을 비롯해 홍콩 프데디 웡 감독의 '주당일기', 싱가포르 부준펑 감독의 '모래성' 등 17명의 아시아 신인 감독들의 작품이 초청됐다. 지난해 70개국 355편에 비해 상영 편수는 줄어들었었으나 '아시아 의 새로운 감독과 작품을 발굴, 소개한다'는 영화제의 목적에는 좀 더 부합하는 결과인 셈이다.
물론 성장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개막작 '산사나무 아래'의 상영이 15분 이상 지연됐고, 이틀째인 8일에는 비가 내려 APAN 레드카펫 행사에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이병헌과 기무라 타쿠야, 조쉬 하트넷 등이 출연한 '나는 비와 함께 간다'와 같은 킬러 콘텐츠가 없었던 탓에 예년보다 해운대에서 진행된 야외행사를 찾는 인파들이 적어 상대적으로 썰렁해졌다는 인상도 줬다. 해운대 백사장 앞에 즐비하던 횟집들이 대거 철거된 것도 영화인들로 시끌벅적했던 부산의 밤을 조용하게 만든 원인 중 하나로 꼽혔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통은 동시에 관객들의 향상된 수준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관객들은 개막작이 15분 여 동안 상영이 지연됐을 때도 자리를 지켰으며 "기술적인 문제로 지연돼 죄송하다"는 영화제 측의 사과에 박수갈채로 화답할 만큼 성숙한 태도를 보였다.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린 고 곽지균 감독 추모식에 참석한 관객들 ⓒ부산=홍봉진 기자 honggga@ |
관객들은 13일 진행된 고 곽지균 감독의 추모식에서는 경견히 태도로 묵념을 올렸고, 열광적인 반응으로 해외게스트들에게 감동을 줬다. 나카무라 토오루는 피켓을 든 채 본인을 기다린 한국관객을 보며 "아이돌 시절이 생각난다"고 했고 줄리엣 비노쉬는 한국 관객의 환호에 양 손에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손을 감아쥔 채 인사를 올리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전단지와 물품 등으로 쓰레기가 넘실대던 해운대 백사장도 올해는 쓰레기를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해졌다.
언뜻 예년에 비해 썰렁해진 듯한 인상을 줬지만 영화제를 찾은 관객들 또한 줄지 않았다. 김정윤 부산국제영화제 홍보팀장은 "해운대 메가박스와 남포동 대영시네마, 센텀시티에 자리 잡은 상영관들로 인해 관객들이 분산돼 작년보다 비교적 조용해 보이는 것 같다"며 "아직 정확한 집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예매와 좌석 점유율을 보면 지난해와 큰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오는 2011년 영화제 전용상영관인 '두레라움'이 개관과 함께 영화제의 중심은 더욱 더 센텀시티 인근지역으로 옮겨갈 것이다. 올해의 관객 분산은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과도기적 현상인 셈이다.
비록 영사사고를 겪었지만 영화제의 프로그램도 예년보다 한층 국제영화제 본령에 초점을 맞췄다. 국제공동제작에 대한 포럼인 아시안영상정책포럼(FPP)를 비롯해 아시아영화펀드(ACF)도 확대됐다. ACF에서는 올해부터 기획 및 개발 단계 프로젝트나 시나리오 완성을 지원하는 ACF 장편독립영화 인튜베이팅펀드가 신설됐다.
아시안필름마켓 오프라인 스크리닝 참석자가 업체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부산국제영화제> |
아시안필름마켓도 지난해 45개였던 세일즈오피스가 51개로, 참가업체는 75개에서 108개로 증가하는 등 내실 있는 성장을 보여줬다. 미국의 준메이저급 배급사인 라이언스게이트가 처음으로 세일즈오피스를 내고 참가했으며, 오리엔탈 아이즈, GMM Thai Hub 등 태국에서만 8개 영화사가 등록했다. 아시안필름마켓 직후 열리는 도쿄마켓(TIFFCOM) 때문에 참여가 저조했던 일본 회사들도 도호, 도에이, TBS, 픽처스디파트먼트, SPHC 등이 세일즈오피스를 등록, 지난해보다 참여가 늘었다.
마켓 스크리닝은 10개국 39편의 영화가 47회 상영됐으며 올해 처음 실시한 온라인 스크리닝에는 총 186편의 영화가 등록, 4일 동안 총 240명이 1652회 관람한 것으로 집계됐다. 마켓 참가자들은 영화제가 끝난 뒤인 오는 31일까지도 온라인 스크리닝을 통해 영화를 볼 수 있다.
마켓 배지 등록자 수는 지난해 780명에서 789명으로 큰 변화가 없으나 전체적인 미팅 건수는 훨씬 증가했다는 것이 참가자들의 증언이다. 27편의 공식 프로젝트를 선정한 PPP에서도 총 400회의 미팅이 성사됐다. 올해 3회를 맞은 KPIF(Korean Producers In Focus) 2010과 올해 신설된 KOCCA 신화창조 프로젝트 피칭 역시 투자, 제작 관계자 100여명이 모여 한국의 젊은 작가, 프로듀서들을 기쁘게 했다.
폐막과 함께 공개된 세일즈 성과 또한 고무적이었다. 제63회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에 빛나는 이창동 감독의 '시'가 홍콩, 시리아, 일본, 포르투갈, 스웨덴의 5개국에 판매됐고,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 역시 홍콩과 멕시코에 판매됐다.
이밖에도 올해 3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한 '하모니' '이끼' '방자전' '포화 속으로'등이 아시아 각국에 판매되는 성과를 거뒀으며, '시크릿' '파주' '토끼와 리저드'를 비롯해 '해결사'와 '시라노; 연애 조작단', 강동원 고수 주연의 초능력자와 2AM과 씨엔블루, 신세경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어쿠스틱' 또한 혁혁한 판매성과를 거뒀다.
이처럼 김동호 위원장 체제 하에서 마지막으로 치러진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소리 없이 속을 단단히 채운 모습이다. 비록 예년에 비해 화려함 면에서는 부족함이 느껴질지 몰라도, 김동호라는 거인의 퇴임과 함께 맞이할 새로운 시대를 위한 준비는 차분히 진행된 느낌이다.
아직 도약을 위한 준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지만, 숨을 고르는 영화제의 모습은 다음 행보를 기대케 한다. 보다 단단하고 튼튼해진 부산국제영화제의 힘찬 도약을 기대해본다.
바닷바람에 나부끼는 부산국제영화제의 깃발 ⓒ부산=홍봉진 기자 honggg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