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나무'의 장혁(왼쪽)과 '영웅'의 이연걸 |
사실 '뿌리깊은 나무' 1회 첫 장면때부터 '영웅'을 떠올려야 했다. SBS 수목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출장술'이라는 공중 유영 액션신은 2002년작 '영웅'에서 확인한 장이모우 감독의 전매특허 아닌가.
'뿌리깊은 나무'에서 지금까지 선보인 출장술은 크게 4번. 1회 강채윤(장혁)의 '상상속 세종(한석규) 살해 기도신'에서 강채윤이 경복궁 바닥을 박차고 올라 세종을 향해 날아갔던 게 첫번째고, 4회 강채윤의 북방전투 회상신에서 '출장술의 원조'이자 무휼(조진웅)이 인정한 '조선제일검' 이방지(우현)가 적들의 어깨를 사뿐히 즈려밟고 펄펄 날았던 게 두번째였다.
이후 7회 막판과 8회 초입 신에서 밀본의 암살자 '액션가면' 윤평(이수혁)과 강채윤의 출장술 배틀이 세번째, 네번째였다. 윤평이 집현전 학사 윤필을 들쳐메고 담을 넘어 나무 위로 사라진 소소한 장면도 맛보기 출장술이긴 했다.
이중 가장 눈길을 끈 출장술 배틀은 역시 "너 같은 놈을 상대할 시간이 없다"며 강채윤 알기를 일개 포졸로 알았던 윤평이 강채윤의 초절정 출장술에 깜짝 놀랐던 7회 막판. 둘이 야심한 밤 삼각산 깊은 숲속에서 처음 맞붙은 이 출장술 배틀로 윤평의 '액션가면'이 강채윤의 칼놀림 한 방에 반쪽이 났으니까.
일단 이같은 공중 유영 액션은 '영웅'에서 중국 전국시대 큰 호수를 배경으로 펼쳐졌던 '무명' 이연걸과 '파검' 양조위의 멋진 한 판 승부와 닮았다. 강채윤이나 윤평의 출장술이 땅이나 나무 등 단단한 물체를 "있는 힘껏" 박차고 뛰어올라 15보 정도 허공을 날아가는 비기라면, 무명과 파검의 공중유영은 검을 물에 담갔다가 그 탄력으로 허공에 머무는 묘기.
캐릭터에서도 '뿌리깊은 나무'와 '영웅'은 교묘하게 만난다. 강채윤이 아버지를 죽게 한 데 대한 복수로 임금 세종을 살해하고자 한다면, 조나라 무사 무명은 훗날 진시황이 되는 '영정'(진도명)을 대의명분에 입각해 암살코자 하는 인물. 윤평이나 파검 역시 서로 이유는 달랐지만 주인공 강채윤과 무명의 계획을 결사적으로 막았던 캐릭터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많다.
강채윤과 무명 모두 임금 살해를 위해 지근거리를 원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강채윤이 연쇄살인 사건 해결의 대가로 '임금의 하사주'를 원했던 속내는 암살이 가능한 거리에서 세종을 알현하기 위한 것이었고, 무명이 자객 은모장천(견자단)을 죽인 공로를 세운 것 역시 영정 앞 20보 안에까지 들어가기 위한 것이었다.
만약 강채윤이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을 향한 복수심을 철회한다면 이는 더욱 '영웅'의 무명과 가까워진다. 무명이 한때 영정을 죽이고자 했던 파검의 속뜻을 알아챈 후 영화 막판 영정 암살을 포기했으니까. '뿌리깊은 나무' 8회 막판에서 그렇게나 모질게 복수심에 불타올랐던 강채윤이 "네 뜻대로 하라"는 세종의 예상외 발언에 꽉 잡고 있던 칼집을 슬쩍 놓은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