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혜정 기자 photonine@ |
하정우(36)가 '대세'다. 하는 영화마다 잘된다는 뜻만이 아니다. 너도나도 그가 좋단다. 600만 관객을 훌쩍 넘겨 700만을 향해 가는 영화 '베를린'(감독 류승완)도 큰 몫을 했으나, 이유는 각기 달라도 결론은 "하정우 너무 좋아"로 마무리되는 뭇 여인들, 여러 남성들의 절대적 지지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물론 이 신드롬적 인기는 그가 지닌 배우로서의 탄탄한 기본기, 그간의 작품에서 보여준 신뢰, 뜨거운 에너지와 감출 수 없는 재능이 바탕. 하지만 싸이코패스 살인마(추격자)와 상남자 조폭(범죄와의 전쟁), 문어체 찌질이(러브픽션)와 처연한 도망자(황해), 과묵한 특수요원(베를린)을 오가는 사이에 생긴 형언할 수 없는 친근함은 분명 특별한 데가 있다.
별 수 있나. 잘 먹고, 잘 뛰며, 잘 마시고, 진지함과 속없음을 제 맘대로 오가는 그 남자를 직접 만나러 갔다. 신나게. 음하하.
"친근함? 방송 인터뷰도 영향이 있나? '무릎팍도사'나 '힐링캠프'에 나가서 그런가. 그런데 제가 출연한 작품이, '추격자'에서 사이코패스도 하고 '황해'도 찍고 그랬지 않나. 저도 신기하지만 감사한 부분이다. 제가 사람 자체가 그렇다 . 따뜻한, 그런 부분이 있고…."
제 자랑에 피식, 웃음이 터져 멈칫하던 그는 다 이게 지금껏 나온 인터뷰들이 만들어준 이미지들 덕이라고 공을 돌렸다. 하지만 대중의 눈은 무척 예리할 때가 있다. 신기하게도 카메라 너머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알아본다.
"맞다. 김윤석 형이 그랬다. 최민식 형도 그랬고. 다 들킨다고, 아무리 연기를 해도 그 사람 인성을 알아본다고. 카메라 앞에서 아무리 다른 캐릭터를 연기해도 그 사람이 보인다고, 그래서 잘 살아야 한다고. 인간적으로 완성이 되고 또 노력해야 스크린에서 무슨 짓을 하든 미워 보이지 않는다고 말이다. '케이프피어'에서 로버트 드니로가 막 사람을 목 조르고 죽이고 해도 그 사람이 느껴지지 않나."
인기가 오르니 억측도 난무한다. 몇 달 전 찌라시엔 '하정우 게이설'이 돌았다. "게이설 나면 그만큼 유명세라더라"며 가볍게 넘기는 하정우. '김태희 열애설'은 "말도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다. '베를린'에서는 '발이 안 올라가 손으로만 격투한 게 아니냐' 했더니 "그것이 콘셉트. 감독이 시키지도 않았다"며 결단코 아니란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아마추어 농구 대표를 했다. 포지션은 가드. 덕분에 뛰기도 잘 뛴다. '베를린'에선 오죽했으면 너무 빨리 뛴 탓에 촬영이 어려워 '좀 천천히 뛰라'는 주문도 받았다. 물론 무척 열심히 뛰는 것처럼 보이도록. '러브픽션'의 문어체 말투는 본인과 닮았지만 문제적 패션 센스는 결코 안 닮았다고 했다. 얼마 전 공개적으로 "저도 좋아한다"다고 했던 '하대갈' 별명은 "계속 보니 언짢"단다. "부정하지 않지만 자제해 달라"고.
그런가하면 요즘엔 '하정우 먹방'이 유행이다. 어떤 음식이든 군침 돌게 먹는 그의 식사 장면을 모아놓은 영상을 너도나도 돌려보며 즐거워했다. '베를린'은 300만 돌파 당시 본편에도 없는 '하정우 먹방'을 공개했다. 먹는 CF 제안도 물밀듯 밀려오는 중. 심지어 5개 식품을 패키지로 묶은 모델 제안도 있었다. 광고료도 5배. 그러나 끝내 재계약한 CF 외에는 대부분 고사했다. "먹방에 대한 관심이 수그러들었을 때 자연스럽게 찍을 수도 있지 않겠나"라고 슬쩍 치고 빠졌다.
하정우는 "솔직히 나중에 먹는 장면 연기할 때 의식될 것 같다"며 "조용히 즐겨 주셨으면 좋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니 '자제를 요청했다, 당부했다'"라고 단어까지 직접 골라주며. 그러마고 하고 웃음이 '빵'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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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는 열정적인 행보로도 이미 정평이 났다. 2005년 '용서받지 못한 자'의 말년병장으로 주목받은 이후 매년 네댓 편의 영화에 참여하며 출연한 작품을 나열하기조차 벅찰 정도다. 여기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에까지 나선 다채로운 활동을 더해야 한다. 사실 이것저것 재고 따지면 덜컥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내가 아직 철이 안 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너무 하고 싶었나보다. 지금은 꿈이 펼쳐진 순간이지 않나. 신인 때, 무명 때, 얼마나 하고 싶었겠나. 꾹꾹 참다가 그게 쏟아져 나온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재미있다. '577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제작, 개봉하기까지 재미가 없었으면 그 스케줄 안에서 못했을 거다. 연출한 이번 '롤러코스터'도 그렇다. 얼마나 찍고 싶었으면 그랬겠나."
하정우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단순한 마음 뿐"이라며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 이게 아니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좋은 시선으로 봐주시는 것 같다. 열심히 사는구나, 거기에 표를 주시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팬카페에 들어가면 대부분 팬들이 '저 보고 열심히 해야겠다'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뿌듯하다. 인생 선배로서도 기분 좋고. 다작을 해서 열심히 꾸준히 하는 게 제일 자연스러운 게 아닌가. 제일 값진 부분이기도 하다. 내가 뭐가 소비될 게 있나. 내가 뭐라고."
자신이 해오는 모든 일이 담금질이며 학습이라고 강조하는 확신에 찬 남자의 '대세'는 왠지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 차기작 '더 테러 라이브'가 막바지 촬영 중이고, 강동원과 함께하는 '군도'가 기다리고 있다. 본인은 "내가 무슨 대세냐. 대세라는 그 말 좀 안 쓰면 안되냐"고 했지만 글쎄, 본인 말고 누가 '하대세'를 부정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