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왼쪽 위부터 아래로 '친구사이?'의 이제훈, '왕의 남자'의 이준기, '쌍화점'의 조인성, '하이힐'의 차승원, '하이힐' 포스터, '후회하지 않아'의 김남길, '브로크백 마운틴'의 히스 레저와 제이크 길렌할, '메종 드 히미코'의 오다기리 조 / 사진=스틸컷, 포스터 |
차승원의 도전은 통할까. 오는 6월 4일 개봉을 앞둔 영화 '하이힐'(감독 장진)에서 그는 데뷔 후 처음으로 퀴어 캐릭터에 도전했다. 그것도 여자가 되고 싶어하는 남자 역이다. 데뷔 이후 남성미 그 자체나 다름없는 역할들을 거푸 맡았고, 스스로도 늘씬한 근육질 몸매에 거침없는 유쾌함을 지닌 상남자이기에 그의 도전이 더욱 돋보인다.
퀴어 캐릭터들은 편견의 벽에 부딪치기 쉽고, 연기 자체에도 부담이 큰 역할들이지만 반면 그만큼 배우 자체에 주목하는 계기가 되곤 한다. 톱스타들이 출연을 꺼리거나 비교적 작은 규모로 작품이 만들어지기에 상대적으로 신인배우들에게 자주 기회가 주어졌고, 그 덕에 주목받은 배우들도 많다.
2006년 개봉, 당시 독립영화 흥행 최고 기록을 세운 이송희일 감독의 퀴어 멜로 '후회하지 않아'의 김남길이 대표적. 주연을 맡았던 김남길은 이후 브라운관에서도 승승장구 하며 톱스타로 거듭났다. 최근 전역한 김동욱 역시 이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건축학개론', '고지전', '파바로티'의 이제훈 역시 퀴어 영화로 먼저 주목받았다. 김조광수 감독의 '친구 사이?'에서 군대 간 남자친구를 면회갔다 그 어머니를 맞딱뜨린 청년으로 첫 주연을 맡아 매력을 뽐냈다. 상대 역을 맡은 연우진 역시 이 작품으로 첫 주연을 맡아 이후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배우 황정민 또한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이어 출연한 퀴어 영화 '로드무비'에 출연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02년 개봉한 '로드무비'는 한국 극장에서 상영한 첫 본격 장편 퀴어물로 기록되기도 했다.
가장 드라마틱하게 스타덤에 오른 이는 이준익 감독의 영화 '왕의 남자'에 출연한 이준기였다. 이준기는 여자보다 더 여자 같은 남사당패 미모 담당 공길 역을 맡아 열연했다. 동성애 코드를 영리하게 접목시킨 사극은 1200만 관객을 넘으며 흥행 돌풍을 일으켰고, 무명이나 다름없던 이준기는 함께 신드롬을 일으키며 단번에 스타덤에 올랐다.
파격적인 스토리와 묘사를 담은 퀴어 사극이었던 유하 감독의 '쌍화점'의 조인성 주진모도 새롭게 주목받았다. 두 배우의 센 러브신으로 화제가 됐던 '쌍화점'은 370만 관객을 훌쩍 넘기며 18금 사극으로는 이례적인 흥행을 했다. 이는 미남 배우 그 자체였던 조인성의 배우로서의 욕심과 오기를 확인하는 한편 배우 주진모의 존재감을 실감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퀴어 캐릭터는 드라마에서도 본격 등장하기 시작해, 2010년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송창의와 이상우가 게이 커플을 그리며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대세로 거듭난 배우 류승룡은 드라마 '개인의 취향'에서 매력 만점의 게이 캐릭터로 또한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받았다.
이런 일이 한국에서만 있으랴. 해외에서는 예가 더 많다. 베니스 황금사자상과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의 제이크 길렌할과 히스 레저는 이 작품을 통해 꽃미남 스타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관객과 만났다. 이들은 두 남자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리며 관객의 신뢰를 받는 배우로 거듭났다.
일본 배우 오다기리 조의 경우 이누도 잇신 감독의 '메종 드 히미코'를 통해 한국 관객들에게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당시 신비로운 매력을 지닌 게이 역할을 맡았던 그는 여성 관객들에게 어필하며 대표적인 일본 인기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감성 느와르를 내세운 '하이힐'은 겉보기엔 느와르만 곱씹을 수록 멜로의 맛이 짙은 작품이다. 그 중심을 잡는 데는 전형적인 외형의 캐릭터에 복잡다단한 내면을 채워넣은 차승원의 공이 크다. 재미있는 코미디 배우로, 전천후 대중 스타로 사랑받은 차승원은 드디어 '하이힐'을 통해 믿음직한 배우 그 자체로 재평가될 것인가. 영화는 오는 4일 관객을 만난다.
김현록 기자 roky@mtstar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