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달수/사진=머니투데이 스타뉴스 |
영화계가 뒤숭숭합니다. 중견 남성배우 캐스팅이 사실상 중단 됐습니다. 언제 무슨 일이 불거질지 모르니, 상황을 지켜보자는 분위기입니다. 오달수 효과입니다.
배우 문제만은 아닙니다. 남성감독들도 무슨 문제가 불거질지 모른다며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조근현 감독 효과입니다. 벌써부터 몇몇 감독들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미투 운동(성폭력 피해 고백) 여파입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피해자들의 고백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고은 시인에서 출발해 연극연출가 이윤택으로 폭발한 문화계 미투 운동이 조민기 조재현을 지나 최용민 김태훈 오달수까지,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이 줄줄이 사과의 뜻을 밝혔습니다.
거세지는 미투 운동에 남성 영화 제작자와 여성 영화 제작자 간에 온도 차이가 다르긴 합니다. "어디까지를 문제 삼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여자들이 그렇게 힘들게 살아온 거지"라는 반응이 있습니다. 온도 차이가 있긴 하지만 현재 상황이 변화의 시작이란 데는 의견이 같습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가 아닙니다.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렸다가 앞으로 기준이 될 것입니다.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말이죠.
오달수 여파로 '신과 함께2'는 대체 배우를 구하고 재촬영을 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오달수 분량이 적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신과 함께' 1편이 1441만명이 관람했을 만큼 엄청난 흥행을 거뒀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재촬영 뿐 아니라 CG, 편집까지 상당한 추가 비용이 발생하지만 감내할 만한 흥행성과를 거뒀고, 2편으로도 거둘 것이라고 기대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오달수에게 손해 배상을 청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오달수가 사회적인 물의를 빚었지만 법적인 처벌을 받은 게 아니니깐요. 사과를 했지만 행위를 인정한 것도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할리우드에서도 케빈 스페이시 성추문이 불거지자 '올 더 머니'에서 그의 출연 분량을 다른 배우로 대체해 촬영을 했습니다. 그래도 케빈 스페이시에게 제작사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했다는 보도는 찾을 수 없습니다. 케빈 스페이시가 법적인 처벌을 받은 게 아닌 만큼, 제작사로선 우선 리스크 헤징(위험 분산) 차원에서 긴급하게 재촬영을 한 것입니다.
한국 상황도 비슷합니다. 오달수의 출연작 중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이십세기 폭스가, '이웃사촌'은 워너 브라더스가 투자했습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죠. 한국 투자사들보다 조건이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영화들은 재촬영이 쉽지 않습니다. 오달수가 주연이라 재촬영을 할 경우엔 사실상 영화 전체를 다시 찍어야 합니다. 비슷한 사례들을 살피고 있다지만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영화계는 리스크 헤징에 대해 이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감독과 배우에 대해 기획단계부터 검증 작업이 필요한 게 아니냐는 논의가 일고 있습니다. 검증 작업이 어렵다면, 나중에 문제가 발생할 시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누구는 안전장치라고 받아들이고, 누구는 재갈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의견이 분분합니다. 분명한 건 이제 논의가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미투 운동이 창작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며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저것 다 재다 보면 쓸만한 사람들이 남지 않는다고 호소하기도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연극배우 엄지영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달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며 '뉴스룸'에 출연한 바로 다음 날 아침,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엄지영은 "사람들이 연극계에 환멸을 느낄까 정말 걱정했다"고 했습니다. 힘들게 연극을 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연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환멸을 느끼지 않을까 그게 가장 염려스러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연기를 배우는 학생들 부모님에게서 "우리 아이가 앞으로 꿈을 펼칠 장소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 용기를 내줘서 고맙다"는 연락을 받아서 너무 감사했다고 하더군요. 영화계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어디 영화계만 그렇겠습니까.
좋은 영화, 좋은 연기는 시대에 따라 계속 재해석됐습니다.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후대에 인정받거나, 당대에는 걸작이라고 추앙받다가 후대에는 불편하다고 몰매를 맞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계속 재해석됩니다. 그게 좋은 영화의 운명일 것입니다.
좋은 영화를 만들려는 데 이견은 없을 겁니다. 시대가 달라지면 받아들여야지요.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변하려고 하는 것. 그게 미투 운동이 지향하는 바일 것입니다. 한국영화가 지향해야 할 바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