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 스틸컷 |
날선 시각으로 보는 영화 이야기
예전에는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힘을 합쳐야 된다고 했다. 어느집 아이라도 동네가 함께 돌보고, 아이가 잘못하면 꾸짖고 혼내기도 했다. 요즘은? 옆집 아이가 잘못했다고 혼냈다가는 이웃간의 큰 싸움이 될 수 있다. 옛날에는 학창시절에는 규칙을 어기거나 잘못을 하면 학교에서 벌을 서고 매를 맞았다. '사랑의 매'라는 이름의 체벌에 감정이 들어가고 그것이 쌓이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세상이 변하면서 학교의 교육 방침도 바뀌었다. 일명 '라떼는' 학생이 잘못하면 선생님이 혼을 내고 때릴 수 있었지만 요즘은 그게 어려운 세상이 됐다. 중고등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일하는 필자의 지인들은 가끔 학생들이 무섭다고 한다. 담배를 피거나 머리를 염색하며 일탈을 하는 친구들보다, 선생님의 말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남성과 여성을 비하하는 학생들을 보고 놀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에게 매를 들거나 체벌하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아이들을 혼내면 그 부모가 전화해서 '왜 우리 아이 기죽이냐'라고 말하는 세상이라고 한다. 물론 모든 학생이 그런 것은 아니고, 모든 부모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 아이의 선생님에게 "당신의 자녀가 학교에서 친구를 때리고 괴롭혔어요"라는 말을 듣는다면, 당신은 뭐라고 말할 것인가? 무조건 "선생님, 우리 아이는 그런 아이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면, 당신도 학폭 2차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는 강렬한 제목만큼 강렬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 국제중학교의 학생이 호수에서 의식을 잃은채로 건져진다. 이 학생은 명문 사립 국제중학교에 사배자(사회배려대상자)로 입학한 김건우. 건우의 담임 선생님이 출산휴가를 가고, 임시 담임으로 일하던 기간제 교사 송정욱(천우희 분)은 건우가 자신에게 보낸 편지를 읽게 되는데 그 편지에는 건우를 괴롭힌 반 친구 4명의 이름이 적혀있다. 도윤재, 박규범, 정이든, 강한결. 교장은 긴급하게 이들의 부모님들을 학교로 불러들인다. 병원 이사장인 도윤재의 아빠 도지열(오달수), 전직 경찰청장 출신인 박규범의 할아버지 박무택(김홍파 분), 학교 주임선생님인 정이든의 아빠 정선생(고창석 분), 변호사이자 강한결의 아빠인 강호창(설경구 분). 사건을 위해 한 자리에 모인 이들은 자신의 아들이 학교폭력 가해자라는 사실을 부인한다. 이들이 하는 말은 "우리 아이는 아니다", "아이들끼리 그럴수도 있지"라는 학폭 가해자 부모들의 전형적인 대사다. 전직 경찰청장 출신이자 손자를 돌보고 있는 박무택은 처음에는 손자의 잘못을 인정하는 듯 보이지만 "아빠 없는 손자 앞길을 막을 것이냐"라는 도지열의 말에 다른 부모들과 같은 배를 탄다.
/사진='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 스틸컷 |
건우의 손에는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했던 흔적이 있었고(친구들이 만들어낸 가짜 흔적), 교장이 건우의 유서 같은 편지를 없애며 증거가 없어지며 사건이 종결된다. 학부모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여, 자신의 아이들이 저지른 잘못을 감싸주기로 한다. 건우의 휴대폰을 훔친 강호창과 도지열은 건우의 휴대폰에서 끔찍한 학교폭력의 증거를 발견한다.
자신의 자식들이, 같은 반 친구를 인격적으로 학대하고 친구의 영혼을 망가뜨리는 장면을 보면서도 부모들은 그저 자신의 아들의 잘못을 숨기는데만 급급하다. 단 한번도 '역지사지'의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를 바보 취급하는 괴물같은 행태에 분노가 터져 나온다.
병원 이사장이라는, 변호사라는, 사립학교 교사라는, 전직 경찰청장 출신이라는 일명 사회 엘리트 계급인 이 부모들의 행동은 추악함 그 자체다. 이들은 아이들이 저지른 잘못보다 더 큰 잘못으로 조금씩 자신의 아이를 망친다. 아이들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없이, 단지 다음으로 괴롭히고 망가뜨릴 아이를 찾는다.
아이들의 부모를 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세계가 그들이 저지르는 폭력이 부모들의 사회와 닮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마치 한 배를 탄 동료 같었던 부모들은 제 자식을 죄를 덜기 위해 다른 아이에게 죄를 덮어 씌우고, 어제는 함께 죄를 지었던 학부모를 적으로 돌린다.
/사진='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 스틸컷 |
아이들이 저지르는 학교 폭력 장면은 잔인하고 보기 힘들다. 하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장면은 현실의 극히 일부다. 김지훈 감독 역시 이 학교 폭력 장면을 촬영하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촬영장에 미성년자였던 배우들의 부모님을 함께 불러 배려하며 촬영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장면을 보는 것이 지옥이라고 말하는 김지훈 감독은 5년이 지났음에도 학생 역할을 한 배우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런 장면 뒤에 나오는 피해자 건우의 눈빛을 관객의 마음에 깊이 꽂힌다.
영화 속 학교 폭력 장면은 지난 2011년 발생한 대구 중학생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가, 결국 유서를 써놓고 홀로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건이다. 당시 이 중학생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다가 주저 앉아서 우는 모습이 담긴 CCTV가 공개 돼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 바 있다. 영화 속에도 이 장면이 담겨 가슴이 아프다.
5년 전 영화이지만, 현재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언제쯤이면 이 영화 속 이야기가 낡은 구시대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빨리 올 수 있기를 바라본다.
김미화 기자 letmein@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