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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봉 신임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 /사진=대한배드민턴협회 |
하지만 한국 배드민턴의 또다른 역사는 안세영(23)의 기자회견에서 만들어졌다.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승리한 직후 안세영은 부상 치료도 제대로 못 받은 상태에서 개인 트레이너 동행도 불가능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여기에다 대표팀 선수 개인이 용품사와 계약을 맺을 수 없는 제도에도 불만감을 드러냈다.
이후 대한배드민턴협회는 심하게 흔들렸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조사를 통해 협회가 낡은 관행과 부적절한 운영 등으로 인한 국고보조금 지급 문제와 함께 국가대표 선수단의 권익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쳤다고 발표했다. 이후 문체부는 김택규(60) 회장의 해임을 요구했고 보조금법 위반과 후원 물품 배임 및 횡령 혐의로 수사를 의뢰했다.
결국 올해 1월 열린 대한배드민턴협회 회장 선거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의 김동문(50) 원광대 교수가 신임 회장으로 당선됐다. 그는 64표를 획득해 43표를 얻은 김택규 회장의 재선을 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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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문 대한배드민턴협회장. /사진=대한배드민턴협회 |
김동문 회장은 지난 4일 한국 배드민턴의 레전드 박주봉(61)을 배드민턴 국가대표팀 새 감독으로 발탁했다. 배드민턴협회는 박주봉의 감독 선임이 파리 올림픽 이후 어수선한 분위기였던 배드민턴 대표 선수단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한 셈이다.
박주봉은 한 마디로 배드민턴을 위해 태어난 선수였다. 그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복식 금메달을 비롯해 각종 국제대회에서 정상에 올라 한국 배드민턴의 위력을 전세계에 과시했다.
아울러 한류 스타이기도 했다. 배드민턴 인기가 높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높은 대중적 인기를 얻었고 그의 이름을 딴 '주봉 주스'와 '주봉 버거'는 히트 상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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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대표팀 코치 시절의 박주봉 감독. /사진=뉴시스 |
하지만 곧 대표팀 감독이 될 것 같았던 박주봉은 일본으로 떠났다. 대한배드민턴협회로부터 구체적인 오퍼가 없던 상황에서 이미 일본 측이 박주봉에게 감독 제의를 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박주봉은 세계 배드민턴의 변방에 불과했던 일본 배드민턴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 올렸다. 그의 공헌 덕분에 일본은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은메달(여자복식)을 따냈고,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여자복식)과 동메달(여자단식)을 획득할 수 있었다.
박주봉은 일본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에서는 일상적이었던 배드민턴 대표팀 위주의 집중 훈련 방식이 일본에서는 없었기 때문이다.
클럽 중심으로 운영돼 왔던 일본 배드민턴 대표팀은 전임 감독제도 없었다. 지도자나 선수들이 클럽 팀 위주로 선수를 꾸려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게 일본의 문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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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봉(뒷줄 맨 왼쪽) 감독이 일본 대표팀 사령탑 시절 선수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이 같은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은 일본 배드민턴계로부터 반발을 샀다. 일본 배드민턴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클럽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주봉은 일본에서 대표팀 집중 훈련 체제는 관철하면서도 소속 클럽 선수끼리 복식 파트너를 정하는 등의 절충안을 마련했다. 이는 일본 배드민턴계와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일정 부분 반영한 결과였다.
일본에서 박주봉을 배드민턴의 신(神·일본어로 가미사마)으로 부르는 이유는 올림픽 메달 획득의 일등공신이었다는 점 외에도 그의 이 같은 타협의 정신이 마침내 성공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한국 배드민턴계가 그에게 기대하는 건 코치로서의 뛰어난 능력뿐 아니라 젊은 선수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유연한 리더십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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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