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 선수들이 지난 3일 WC 2차전 패배 후 아쉬움을 안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
두산은 74승 68패 2무, 승률 0.521을 기록했다. 공교롭게도 지난해와 똑같은 성적이다. 다만 성적은 5위에서 4위로 한 계단 끌어올렸다.
가을야구에선 아쉬움이 남았다. 사상 최초 5위 결정전까지 치르고 올라온 KT 위즈에 비해 여유가 있었음에도 2연패를 하며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역대 최초 5위 팀 준플레이오프 진출의 희생양이 되며 많은 팬들의 원성을 샀다.
그러나 한 시즌을 돌아보면 아쉬운 점만 있었던 건 아니다. 올 시즌을 앞두고 많은 팀들이 두산을 강팀으로 분류하지 않았다.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나섰던 '왕조'를 열었던 두산이지만 이젠 누구도 그때의 강력했던 팀이라고 생각지 않는 상황에서 새 시즌을 맞았다.
최강 외국인 투수 듀오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던 라울 알칸타라와 브랜든 와델이 시즌 초반부터 부상으로 자리를 비우기 시작했다. 대체 선수까지 총 4명의 외국인 투수가 230⅔이닝, 15승 14패, 평균자책점(ERA) 4.29에 그쳤다. 단언코 10개 구단 중 가장 외국인 투수의 도움을 받지 못한 구단이었고 두산의 올 시즌이 꼬이기 시작한 가장 큰 원인이었다.
불펜 투수들의 의존도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크나 큰 수확이 있었다. 전체 2순위 신인 김택연(19)이 정철원과 홍건희가 잇따라 불안감을 노출한 마무리 자리에 안착한 6월 이후 리그를 대표하는 클로저로 거듭난 것이다.
지난 3일 WC 2차전에서 역투하는 김택연. /사진=김진경 대기자 |
김택연에게 기회를 이어준 이병헌(21)과 최지강(23)의 수확도 매우 값졌다. 이병헌은 팀 투수 중 가장 많은 77경기(65⅓이닝)에 나서 6승 1패 1세이브 22홀드 ERA 2.89로 마당쇠 역할을 해내며 팀의 미래를 책임질 좌완 불펜으로 성장했다.
최지강 또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55경기 50이닝, 3승 1패 1세이브 15홀드 ERA 3.24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쳤다. 홍건희와 이영하, 김강률 등이 든든히 뒤를 받치며 두산은 당당히 불펜 ERA 1위(4.54) 팀으로 거듭났다.
'두산 육상부'가 살아났다는 점도 고무적이었다. 지난해 도루왕 정수빈(52도루)은 건재했고 조수행이 데뷔 후 가장 많은 기회를 받으며 베어스 도루 기록을 갈아치우며 64도루로 커리어 최초 타이틀 홀더가 됐다.
다만 외국인 투수들이 일으킨 커다란 후폭풍을 차치하더라도 여전히 많은 고민거리를 남긴 시즌이었다.
우선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유격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박준영으로 시작해 전민재, 이유찬까지 거쳤으나 여전히 가장 안정감을 보인 건 불혹을 앞둔 김재호(39)였다. 이승엽 감독은 시즌 중 이례적으로 "20대 유격수들이 실망스럽다, 죽기 살기로 해야 한다"고 공개 저격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을야구에서 유격수 자리를 지킨 것도 역시 김재호였다.
두산 내야수 김재호(왼쪽). /사진=김진경 대기자 |
그래서 올 시즌 야수 1순위로 뽑은 박준순(19)에 거는 기대가 더 크다. 김태룡 두산 단장은 신인 드래프트 당시 "오랜만에 1라운드로 내야수를 선택했다"며 "두산 내야수로서 20년 가량 내야 한 축을 맡아줄 선수로 판단했다. 5툴에 걸맞은 올해 최고의 내야수"라고 지명 이유를 밝혔다.
지난달 24일 두산 홈 최종전을 맞아 시구자로 나서며 팬들과 공식적으로 첫 인사를 한 박준순은 취재진과 만나 "허경민 선배처럼 훌륭한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팀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팀에선 2루수 자원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 3루수, 유격수에도 충분히 도전해 볼 수 있다. 스스로도 유격수에 대한 욕심을 나타내고 있는 상황이다.
박준순의 성장은 두산의 유격수 고민과 높은 베테랑 의존도를 동시에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이 될 수 있다. '화수분이 말랐다'는 평가를 듣고 있는 두산이기에 야수 1순위로 데려온 박준순에 대한 기대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지난달 24일 홈 최종전 시구자로 나선 뒤 취재진과 만난 박준순. /사진=안호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