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우리일수도" 여제 라스트댄스에만 집중→정관장은 이제 '악역 넘어' 주연을 꿈꾼다

대전=안호근 기자 / 입력 : 2025.04.07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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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장 염혜선(왼쪽)과 정호영이 6일 챔프전 4차전 승리 후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안호근 기자
정관장 염혜선(왼쪽)과 정호영이 6일 챔프전 4차전 승리 후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안호근 기자
"악역이 악역으로 끝나지 않고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

대전 정관장 '캡틴' 염혜선(34)은 비장한 각오를 나타냈다. 맥없이 물러서지만 말자며 나선 챔피언결정전이었지만 이젠 당당히 주연 변신을 꿈꾼다.


정관장은 6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흥국생명과 도드람 2024~2025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5전 3선승제) 4차전에서 풀세트 접전 끝에 세트스코어 3-2(25-20, 24-26, 36-34, 22-25, 15-12)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적진에서 1,2차전을 내줬으나 홈으로 돌아와 기적 같은 2연승을 거뒀다. 이젠 역대 단 한번 뿐인 리버스 스윕에 도전한다.

1세트만 해도 쉽게 승리를 거두는 듯 했지만 흥국생명의 반격이 거셌다. 3세트 긴 듀스 끝에 승리를 거두고도 4세트를 내줬고 5세트엔 7-10으로 끌려가 패색이 짙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5연속 득점하며 흐름을 뒤집었는데 그 중심에 세터 염혜선이 있었다. 메가왓티 퍼티위(등록명)의 백어택 득점을 도운 염혜선은 상대 리베로 신연경을 공략하는 과감한 서브로 직접 득점에 가담했다.


4차전 승리한 정관장 선수들이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진=KOVO 제공
4차전 승리한 정관장 선수들이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진=KOVO 제공
이후에도 염혜선의 날카로운 서브로 시작한 공격에서 3점을 더 따냈다. 12-11에서도 차례로 반야 부키리치(등록명 부키리치)와 메가에게 연이어 정확한 토스를 통해 득점을 도우며 극적인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은 66점을 합작한 메가와 부키리치 쌍포 외에도 아웃사이드 히터 표승주(12점)와 두 미들 블로커 정호영(13점)과 박은진(8점)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영리한 운영이 돋보였다. 정호영은 공격 성공률 55.56%, 표승주는 40.74%, 박은진도 40.74%를 기록할 만큼 질 좋은 토스로 득점을 도왔다.

경기 후 고희진 감독은 "원래 한번은 기회가 온다. (염)혜선이 서브 때 원래도 세터 1번이 브레이크가 가장 많이 하는 위치인데 집중을 조금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그 어려운 상황에서 집중력이 올라왔다. 우리 선수들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다.

적극적으로 중앙 공격을 활용한 것에 대해서도 "라이트 공격률이 떨어졌고 차라리 파이프를 쓰자고 했는데 그렇게 속공을 활용할 줄은 저도 몰랐다"며 "볼 배분은 혜선이에게 항상 맡긴다. 상대를 연구하고 들어와서 한번씩 잘못된 선택을 하고 흔들릴 때 조언해주기는 하지만 혜선이 덕분에 우리가 5차전에 가는 것"이라고 절대적인 신뢰를 나타냈다.

사령탑도 놀라게 만들 수 있었던 건 철저한 분석에서 비롯됐다. 염혜선은 "나름 영상을 봤는데 (상대 블로커가) 미리 가는 경향이 있었고 메가와 부키리치가 너무 좋은 선수들이라 원블로커로 뜨진 않는다"며 "그럼에도 한번씩 (중앙을) 활용할 때 (박)은진이와 (정)호영이가 득점을 잘해줘서 리시브가 왔을 때 더 활용했는데 통했다"고 전했다.

경기 도중 벤치와 의견을 나누고 있는 염혜선. /사진=KOVO 제공
경기 도중 벤치와 의견을 나누고 있는 염혜선. /사진=KOVO 제공
고희진 감독은 '결국 서브 싸움'이라고 강조했는데 염혜선은 양 팀에서 가장 많은 서브 에이스 3개를 기록하며 팀 승리를 도왔다. 패스 페인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공격 득점도 4점이나 냈다.

더 놀라운 점은 플레이오프 1차전부터 투혼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1라운드에서 다쳤던 무릎 부상이 재발했고 온전히 점프를 뛰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눈물겨운 투혼으로 버텨내고 있다.

정호영은 "저도 완벽한 컨디션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언니들보다는 괜찮다. 혜선 언니가 경기 중 무릎을 부여잡을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다. 아파서 내가 토스를 하더라도 코트에 있는 것 자체가 힘이 된다"고 말했다.

무릎에 통증을 호소하면서도 이날 양 팀 최다 득점인 38점을 폭발한 메가도 "감독님께 나를 선택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선수들에게도 마찬가지"라며 "염(혜선)언니가 세터로서 중요한 포지션이고 머리도 많이 써야하는데 나를 믿어줬기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순간 포인트를 내야 할 때 믿고 공을 올려 주고 뒤에서 뒷받침 해줘서 더 빛날 수 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전날도 진통제를 맞고 올 정도로 정신력으로 버텨내고 있는 염혜선은 김연경의 우승 여부에 커다란 관심이 쏠려 있는 상황에서 "악역이 돼 보겠다"고 했는데 이날은 "어쩌면 주인공은 우리일수도 있을 것 같다. 역할을 바뀔 수 있는 기회다. 악역이 악역으로 끝나지 않고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염혜선(왼쪽에서 2번째)이 득점 후 고희진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사진=KOVO 제공
염혜선(왼쪽에서 2번째)이 득점 후 고희진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사진=KOVO 제공
V리그 역사상 챔프전에서 2연패 후 3연승으로 우승을 차지한 건 2년 전 김천 한국도로공사가 유일했다. 공교롭게도 역사의 희생양은 흥국생명이었다. 정관장은 희박한 확률 속에서도 절박한 마음으로 한 경기만 내다보며 온 힘을 발휘했고 결국 승부는 원점이 됐다.

염혜선은 "선수들과 암묵적으로 홈경기니까 '여기서는 축포를 터뜨리지 않게 하자'고 각자 생각한 것 같다"며 "마지막 경기일수 있기에 져도 후회 없이 하자고 했고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모여 좋은 결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젠 당당한 주연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원정팀들에겐 악명이 높은 인천 삼산 원정길에 오른다. 은퇴까지 마지막 한 경기만 남겨둔 김연경의 화려한 라스트댄스를 위한 일방적인 응원 속에 경기에 나서야하지만 악역이 주인공이 되는 드라마를 꿈꾼다.

염혜선은 "너무 오래 전에 우승을 해서 (그 기분이) 기억이 안 난다"며 "기억을 끄집어내고 싶다. 지금 멤버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잘하는 선수들이고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누구 하나 간절하지 않은 선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정호영 또한 "우승이 주인공을 정해놓고 하는 싸움은 아니다"라며 "언니들이 아픈데 참고 뛰는 이유는 13년 만에 챔프전이고 우승은 더 오랫동안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저희도 강력한 동기부여가 있기 때문에 몸을 갈아 넣어서라도 우승을 해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토스를 올리는 염혜선. /사진=KOVO 제공
토스를 올리는 염혜선. /사진=KOVO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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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근 | oranc317@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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