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속 깊이 간직한 기원, 진실한 기원, 신이여 허락하소서."
천하의 조승우도 뮤지컬 끝인사에서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일본 팬 1400명의 일체같은 기립 박수소리 앞에서는 어깨가 살며시 들썩였다. 하지만 그는 역시 담대했다.
머리끝까지 치솟아 오른 감격이 여실히 감지됐지만 2층 구석 저끝 관객 한명 한 명을 응시하는 것을 그 정신없는 순간에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두 상대역 이혜경(엠마 역)과 김선영(루시 역)의 어깨를 감싼 손끝에 힘을 실었다가 조용히 뒷걸음질쳤다.
하지만 그는 천상 배우. 결코 밋밋하게 물러나지 않았다. 다시 한번 산발 머리를 풀어헤치고 고개를 뒤흔들며 하이드 세리모니를 펼쳤다.
그리고 히딩크식 손놀림을 하며 관객의 불길 같은 반응에 마지막으로 화답한 뒤 무대 뒤로 총총히 몸을 숨겼다. 이후 감정 표현이 대단히 인색한 일본팬 1400명이 일심동체가 돼 5분여간 집채가 떠나갈 정도로 기립 커튼콜을 보냈음에도 끝내 나와 보지 않았다. 그는 역시 본인의 판단대로 움직이는 배우 조승우였다.
조승우의 혼을 실은 노랫가락에 열도가 부르르 떨었다. 조승우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가 13일 오후 6시30분 일본 공연의 서막을 올렸다. 조승우는 이날 일본 도쿄 고탄다에 위치한 유포트극장 무대에 올린 '지킬 앤 하이드'(~19일, 22~24일 오사카 NHK홀)를 통해 열도를 뒤덮은 한류의 지평을 뮤지컬 무대로까지 한층 더 확장하는 공을 세웠다.
조승우는 이날 2시간 반 동안 객석 1400석을 거의 메운 일본팬 앞에서 열정이 들끓는 의학자 헨리 지킬이 인간의 선악을 움직일 수 있는 명약 개발에 대한 의욕이 지나쳐 파멸해 가는 과정을 온몸과 정신을 던져 그려냈다.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자신의 야욕에 선병질적인 집착을 보이다가 스스로를 유폐시켜 이중인격자로 환생하는, 입체적인 캐릭터로 열도 팬들의 감정선을 사정없이 흔든 것.
초반 조승우의 노래는 약간 겉돌아 불안한 감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인물의 다중적인 면모가 하나둘씩 펼쳐지면서 자리를 곧 잡아갔다. 이어 자신을 도무지 제어할 수 없는 지킬의 고뇌가 관객의 가슴을 터치하면서 조승우의 선율도 부피감이 느껴질 정도로 상승과정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특히 매맞는 창녀 루시를 따스하게 위로하던 지킬이 자신의 악마적 본성에 지배를 받아 하이드가 돼 자신뿐만 아니라 루시를 파괴해가는 모습에는 인간의 이중성이 농축돼 있었다.
아울러 극 말미에 빛의 움직임과 조승우의 고갯짓에 따라 달라지는 단정한 지킬과 광포한 하이드의 연속 변신은 화룡점정을 이루며 성대한 마무리를 충분히 유도해냈다. 이날 무대는 비교적 미니멀했고 대사는 무대 양옆 자막을 통해 전해졌지만 조승우 캐릭터의 존재감은 무대는 물론 객석까지 차고도 넘침이 있었다.
영화 '클래식' '말아톤'의 배우로 익숙한 조승우의 새로운 마력을 발견한 일본팬들은 뮤지컬이 끝난 후 좀체 들뜬 감동을 삭히지 못했다.
히로미 오키(30 여)씨는 "한국배우들은 열정이 넘쳐서 더 멋있다. 특히 오늘 '지킬 앤 하이드'는 감정이 충만하면서도 내용도 충실해 아주 큰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다.
또 재일동포 김유열씨(40 여)는 "조승우씨는 평범하게 보이는데 연기 노래 둘다 뛰어난 게 매력"이라며 "이렇게 젊은데 정말 능력이 대단한 것 같다"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사진제공=오디뮤지컬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