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애가 벌써부터 SBS 연기대상 후보로 거명되고 있다. ‘내 남자의 여자’에서 파격적으로 변신한 덕이다.
'내 남자의 여자' 중 김희애는 고두심에 비견된다. 참한 여성의 이미지를 주로 연기하던 고두심은 1989년 KBS 주말극 ‘사랑의 굴레’에서 히스테리컬한 귀부인 역을 맡아 처음으로 연기대상을 따냈다.
90년 ‘춤추는 가얏고’로 MBC 연기대상, 2000년 ‘덕이’로 SBS 연기대상, 2004년 또다시 KBS와 MBC 연기대상을 한꺼번에 챙기며 역대 최다 연기대상 수상기록을 보유한 고두심에게 첫 ‘연기대상’이라는 영예를 안긴 작품이다.
당시 고두심은 야한 이미지와는 무관한 배우였다. 80년부터 방송된 MBC ‘전원일기’의 후덕하고 정숙한 맏며느리가 고정 이미지였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기존의 인상을 벗어던진 ‘정반대’ 캐릭터로 등장,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요즘의 김희애와 비슷하다. 부풀린 파마머리와 화려하고 요란한 의상, 액세서리로 치장한 그는 신경질적인 태도와 말투로 일관했다. 걸핏하면 외치던 “잘났어 증말~!”은 당대 최고 유행어였다.
김희애도 가슴을 드러낸 섹시한 의상과 히스테리컬한 웃음, 퇴폐적인 말투로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이 탈바꿈이 익숙지 않아서 오히려 신선한 시청자들이 많다.
KBS ‘아내’, ‘부모님전상서’, SBS ‘완전한 사랑’, ‘눈꽃’ 등을 통해 차분한 현모양처와 지적인 모습을 주로 보여온 그다. 이런 그가 눈빛까지 이글이글 불태우며 가장 친한 고교동창생의 남편을 빼앗는 악녀 연기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김희애는 이미 91년과 93년 MBC 연기대상을 거머쥔 바 있다. 이후 연기대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2003년 출연한 ‘완전한 사랑’에서의 호연에도 불구, 10대스타상과 SBSi상에 그쳤다. 당시 드라마를 집필한 김수현 작가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김희애씨가 큰 상을 받았으면, 당연히 받겠지하며 꾹꾹 참으며 기다렸는데, 유구무언이라는 단어는 이런 때 쓰는가 싶다”며 “방송 끝나고 김희애씨에게 전화해서 ‘괜찮아, 내가 대상 줬어. 속상하겠지만 그 따위 썩은 상 안받아도 돼’라고 얘기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작가의 단도직입적 내용, 직설적 대사를 척척 소화해내고 있는 '내 남자의 여자' 김희애는 올해의 연기대상 타이틀 홀더로 충분한 연기력을 과시하고 있다는 평가다. 현시점에서 예상되는 걸림돌 하나는, 드라마의 전부인 '불륜'이다. 드라마가 불륜을 미화했다는 시비에 휩싸이지 않는 한 수상 가능성은 높다는 것이 중론이다. 볼은 김 작가에게로 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