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영화, 고사직전 가요계 전철 밟나?

전형화 기자 / 입력 : 2007.06.20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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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괴물'(왼쪽)과 '왕의 남자'의 포스터.


"요즘은 좋은 소리 듣는 게 없어요. 매니지먼트사들도 일거리가 없다고 죽는 소리를 하고 있어요."

충무로에서 20년 이상 현장을 지키며 영화를 만들어온 한 제작자의 말이다.


그는 "지난해 영화를 한 편도 제작하지 않았는데도 후배들로부터 선배들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 소리를 듣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위기의 충무로', '한국영화 위기', 돈줄이 말랐다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이고, 제작되던 영화마저 엎어지기 일쑤다. 실제로 대기업이 투자를 맡았다가 손을 떼는 바람에 중단된 영화들도 허다하다.

이런 상황에 대해 영화 관계자들은 "돈이 없는 게 아니다. 지난해 너무 쓴 맛을 본 터라 투자자들이 돈을 쥐고 안 푸는 게 문제다"며 개탄하고 있다. 중소 영화사들이 운영되는 데 생명줄인 개발비나 기획비도 씨가 말랐다. 메이저 배급사들도 50억원이 투입되는 영화에 5억원만 제시하고 배급권을 달라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영화계의 이 같은 위기에 대해 각양각색의 진단이 쏟아진다. 또 누구 탓이냐 보다 어떻게 뚫고 나가야하는 지에 대해 설왕설래한다.

이 시점에서 한국 영화의 위기를 고사 직전의 한국 가요계에 비교한다. 서로 다른 듯 하지만 영화계는 가요계의 전철을 밟고 있다. 성쇠 과정과 이동통신사 자금의 유입, 해외 진출 모색까지...

90년대 초반 서태지가 등장하기까지 한국 대중 음악계는 외국 음악 및 가요가 지배했다. 다양한 장르가 꽃피웠던 60~70년대 황금기를 지나 암울했던 80년대 침체기를 겪는 동안 음반 시장은 미국 가수들의 음반이 장악했다.

이후 서태지가 등장하고 댄스음악의 전성기가 열린 90년대는 한국 가요계의 르네상스였다. 이문세 신승훈 이승철 등 다양한 발라드 가수들은 조성모를 위시로 한 새로운 발라드 가수군에 대권을 넘겨 가요계는 댄스와 발라드로 양분됐다. 기획 가수들이 판을 쳤고, 아이돌 그룹이 양산됐다.

이는 영화계와도 흡사하다.

60~70년대 황금기를 누렸던 한국 영화계는 군사 정권의 억압 속에 호스티스 영화를 양산하다 '방화'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외화들에 자리를 넘겨줬다. 당시 "나는 한국영화는 극장에서 안본다"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 만큼 영화계 사정은 처참했다.

하지만 '쉬리' 이후 90년대 한국 영화계는 르네상스를 맞았다. 다양한 영화들이 쏟아졌고, 1000만 관객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웰메이드 영화, 곧 돈이 되는 할리우드 영화를 표방하는 기획 영화들이 대거 제작되면서 한순간 관객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해 100여편의 영화가 제작되면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도 벌어졌다. 올해 유달리 할리우드 영화들이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데는 대작이 쏟아지기도 하지만 할리우드식 기획 영화를 볼 바엔 할리우드 영화를 본다는 관객들의 심리 변화도 있다.

절정을 누리던 가요계가 한순간에 붕괴한 데는 인터넷 문화의 발달이 한 몫 한다. 불법 다운로드가 만연돼 음반 판매량이 급감했으며, 고만고만한 가수 및 그룹들의 등장에 대중이 외면하기 시작했다. 일본 대중 문화가 개방되면서 다양한 음악을 듣는 팬들이 형성되는 것도 이 즈음이다.

영화계의 위기도 인터넷의 영향이 크다.

불법 다운로드의 만연으로 DVD, 케이블 등 2차 판권시장이 무너졌다. 이 때문에 극장 수입에 사활을 걸면서 와이드 릴리즈에 개봉 첫 주 흥행으로 판가름이 나는 시스템이 형성됐다.

위기의 가요계에 이동통신사가 콘텐츠 확보 차원으로 개입한 것 역시 영화계와 흡사하다.

이통사는 모바일 수입의 절반을 가져가면서 가요계를 잠식하기 시작하면서 음원 확보를 위해 자금력을 동원하고 있다. 영화계 역시 제작사 지분 확보 및 배급 투자까지 이통사가 영역을 넓히고 있다.

대안을 준비하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가요계가 오버 그라운드에서 죽을 쑤고 있는 동안 클럽을 중심으로 한 인디밴드와 힙합신 등 역량있는 밴드와 가수들이 나름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영화계 역시 독립영화에서 미래의 희망을 엿보고 있다.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가요계가 한류를 바탕으로 일본 시장을 위시로 해 아시아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처럼, 영화계 역시 단순한 판권 판매를 넘어서 해외 합작을 모색하며 시장을 넓히려 하고 있다.

물론 영화계가 가요계의 전철을 완벽하게 따른다고 볼 수는 없다.

1000만명이 보는 영화가 한 해에 두 편이나 나올 정도로 다양하면서도 생명력 넘치는 작품들과 제작진이 열의를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MK픽쳐스의 심재명 대표는 "한국 영화계는 할리우드에도 뒤지지 않을 콘텐츠를 생산할 역량이 있기 때문에 가요계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혹자는 영화계 위기가 앞으로도 상당 부분 이어질 것이라고 하고, 혹자는 이 위기를 통해 한국 영화계가 구조조정을 거쳐 한 단계 도약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한국영화가 '위기'를 떼고 관객의 사랑을 받을 날이 언제 도래할지, 가요계를 타산지석 삼아 험난한 파고를 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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