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워' 800만 관객은 여전히 배고프다

[김관명칼럼]

김관명 기자 / 입력 : 2007.08.29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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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영화계는 유난히 '말'이 많았다. 김훈의 '남한산성'에서 굶주려 천천히 죽어간 그런 말(馬)들이 아니었다. 위기에 몰렸네, 할리우드 공습이네, '화려한 휴가'는 너무 올드하네, '디워' 에필로그는 어불성설이네, 이런 복잡다단한 말(言)들이었다. 말들의 혹독한 상찬 속에서 그래도 이를 견디어낸 건 '디워'를 본 800만, '화려한 휴가'를 본 700만 관객이었다.

'디워'의 800만 관객 또한 서로간에 말들을 토해냈다. CG가 빛나는 최고의 괴수영화라느니, 스토리와 연기가 심각히 떨어진다느니 하면서 기존 충무로 영화문법과 심형래 영화작법을 서로 야유했다. '화려한 휴가' 역시 광주민주화운동의 거역할 수 없는 무게감 때문에 드러나지 못해서였지, 영화 자체에 대한 호-불호는 '디워' 못지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제 아무리 가혹한 말들이 한 영화를 가로막아도 기어코 관객은 그 영화를 찾아내 보고만다는 것. 역으로 제 아무리 사탕발림의 말들이 한 영화로 호객행위를 해도 관객은 기어코 그 진위를 귀신같이 가려낸다는 것. 설사 호객에 성공했다 해도 그 유통기한은 1주일이라는 것. 흥행스코어 일등공신이라 할 와이드 릴리즈의 진실은 대개 개봉후 1주일이면 만천하에 드러나게 마련이니까.

또하나. 아무리 논리와 1인시위로 '한국영화 사랑'을 외쳐도 관객을 한국영화 상영관으로 끌어모으는 건 결국 영화 자체라는 것. 올 봄부터 시작된 '스파이더맨3' '캐리비안의 해적3' '트랜스포머'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기개와 모함과 질투가 아닌 '성적'으로 뒤집은 건 영화인들의 화려하거나 절박한 말들이 아니라 '남다르고 재미나고 흥미롭고 화제만발한 영화'라는 것. 왜? 관객은 말이 아니라 작품에 굶주린 거니까.

그랬다. 영화관객은 언제나 배고팠다.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로 대한민국에 1000만 관객시대가 열리기 전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관객은 여전히 굶주렸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현대사의 눅눅한 비극에 공감했던 1000만 관객은 어느새 그 틈바구니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판타지에 환호했고('웰컴투 동막골'), 광대패 동성애 사극에 눈물겨워했으며('왕의 남자'), 한강에 출몰한 못생긴 양서류에 가슴을 쓸어내렸다('괴물').


'디워'의 800만 관객도, '화려한 휴가'의 700만 관객도 결국엔 배고픈 관객이었다. 어리버리 코믹 조폭영화에 배탈난 관객, 얼렁뚱땅 교복 멜로에 두드러기 난 관객, 고만고만한 여름철 공포영화에 소화불량난 관객. 무엇보다 '디워'의 경우엔 충무로 톱스타와 유명 감독이라는 일품요리, 그래서 '이 정도인데도 안 볼래?'식의 안하무인과 오만에 물릴대로 물린 관객의 엑소도스였다.

'디워'와 '화려한 휴가'의 관객은 해서 여전히 배고프다. 이러한 관객의 허기를 지난해 '라디오스타'가 그랬듯이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이 채워줄지, 아니면 지난해 '타짜'가 그랬듯이 '식객'이 채워줄지 느낌은 있을지언정 확신은 없다. 그러나 확실한 건 이러한 관객의 허기를 달래는 건 영화를 만들어내는 자의 생존이유이자 책무라는 것. 그것도 말이 아닌 영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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