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려원 "연기를 할 때 난 살아있다"

윤여수 기자 / 입력 : 2007.09.0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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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홍기원 기자
"책상다리로 앉아도 될까요?"

이내, 편안해 보이는 쇼파 위에 책상다리로 앉았다. 인터뷰를 위한 사진촬영을 하면서 아이마냥 발랄하게 재잘거리더니 정려원은 양해를 구한 뒤 그렇게 편한 모습으로 마주앉았다.


정려원은 자신의 생각을 비교적 논리적으로 풀어낼 줄 알았다.

"내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많이 배웠어요."

오는 13일 개봉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두 얼굴의 여친'(감독 이석훈ㆍ제작 화인웍스)을 촬영하면서 정려원은 그랬다고 했다.


과거가 남긴 격한 고통과 그로 인한 상채기로 다중인격을 갖게 된 극중 인물 '아니'와 '하니' 그리고 상채기에 휘둘림당하는 '유리'는 한 몸. 얼떨결에 맺어진 남자친구(봉태규)와 벌이는 좌충우돌 로맨스의 해프닝을 그려가는 극과 극의 캐릭터처럼 정려원은 그렇게 연기자로서 자신을 찾아가는 중인가보다.

"원래 제목이 '안녕 아니야'였어요. 그건 '아니, 안녕'이란 뜻과 함께 'It's Not! 아니'라는 뜻도 있어요. '아직 안녕이 아니야'라는 거죠."

그러면서 정려원은 다음과 같은 비유를 했다. 그리고 인터뷰 내내 비유를 들어가며 정려원은 말하고 또 말했다.

"여기, 유리병과 유리컵이 있어요. 그런데 두 가지 모두 담아낼 수 있는 물의 양은 이미 정해져 있지요. 문제는 그 물이 얼마나 좋은 물이냐는 건데, 분명 더욱 좋은 물을 담아낼 기회가 올 겁니다. 정말 중요한 건 그 때부터인데요, 아예 비운 채로 시작해야 한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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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홍기원 기자
-비우는 게 어디 말처럼 그리 쉬운가.

▶훈련이 되어 있으면 그렇지 않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거기에 만족할 때 가장 행복한 것 아닌가. 그리고 그건 또 감사한 일이다. 조금이라도 비우려고 하는 노력에 박수 좀 쳐주라.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

▶(고개를 슬쩍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과거엔 그렇지 않았나.

▶빨리 달리는 기차 안에서 창밖 풍경을 보지도 못했다. 멈추고 다시 돌아와 나를 돌아보게 된다. 마치 서랍장 안 물건을 정리하듯 말이다.

몇몇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지만 아직 대중의 머리 속에 각인되지 못했던 그는 MBC '내 이름은 김삼순'에 출연하면서 온전한 자신의 자리를 찾게 됐다. '내 이름은 김삼순'은 그에게 "나는 이미 바뀌었지만 대중으로 하여금 비로소 내가 바뀐 걸 알게 해준 작품"이었다.

▶가수로 활동하던 때에는 물 흘러가듯 사는 느낌이 많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됐다. 연기를 하면서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꼈다.

-가수로 활동하던 시절이 괴로웠나보다.

▶그것 봐라. 그렇게들 오해한다니까. 가수라는 통로를 통해 연기를 알게됐다. 물론 앞으로 가수 활동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건 내가 잘 하고 좋아하는 걸 하겠다는 뜻이다.

"잘 하고 좋아하는 것", 연기에 대해 그는 얼마나 만족하고 있을까. 비유는 이어졌다.

▶전체 퍼즐로는 만족하지만, 퍼즐 조각 하나하나엔 그렇지 않아요. 마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그 때를 돌아보며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것? 후회는 없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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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홍기원 기자
그런 아쉬움 속에서도 정려원은 최선을 다한 듯 보인다. '아니'와 '하니'의 돌변하는 캐릭터 사이에서 웃음을 주고 마침내 진한 눈물 속으로 관객을 몰아가는 힘은 분명 그에게 있었다. 촬영을 하면서 "스트레스도 많았다"는 정려원은, 그러나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두 얼굴의 여친'을 통해 관객이 얻어가길 원하는 건?

▶많은 관객이 이성친구에 대한 용기를 얻어갔으면 한다. 사람에게 진심으로 다가서면 통하지 않나. 극중 봉태규는 많고 평범한 남자들의 전형일 수 있다. 그런 분들이 용기를 얻기를.

-사람과 진심? 스캔들은 어떤가.

(배우 조승우와 교제 중이라는 보도에 그는 어떤 민감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과의 관계는 모닥불 같은 거다. 가까이 가면 데기 십상이고 멀리하면 또 춥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비관적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믿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존재한다. 아무 조건 없이.

'조승우와 교제 중인 건 사실인가보다'라는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순간, 눈치 빠른 정려원은 부연설명을 이어간다.

▶함께 교회를 다니면서 친해진 친구이다.

"친구이다"였지 "친구일 뿐이다"는, 판에 박힌 해명(?)을 그는 원치 않는 듯 보였다.

▶교회를 다니다보면 서로의 내면을 드러내며 가까워지게 마련이다. 물론 만나면서 무의미한 관계도 있다. 그런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친해진 것 뿐이다. 다른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또 내가 어떻게 얘기하든 그들 생각은 그럴 것이다. 신경쓰지 않는다.

그런 자신만의 당당함과 "나를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된" 정려원은 30살이 되기 전에 사진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짧은 기간이더라도 배우고 싶다. 그림도 좀 배우고 싶고."

그건 자신을 비추는 또 하나의 그리고 '자신만의 거울'을 갖고 싶다는 말처럼 들려왔다. 스스로를 바라보게 하는 수많은 거울 가운데서도 '있는 그대로'를 틀림없이 담아내려는 거울을 가지려는 작은 욕망을 드러내는 그에게서 '유리컵'과 '유리병'의 비유는 실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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