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집을 발표한 드렁큰타이거. 손에 든 것은 그가 평소 짚고 다니는 지팡이다. |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원인 모를 희귀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어떤 기분이 들까? 치료방법을 알 수 없어 기적만 바라며 고통만 잠시 잊게 해주는 약을 평생 먹어야 한다면, 또 약물치료의 부작용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다면 인생이 어떻게 느껴질까?
드렁큰타이거는 상상만 해도 끔직한 이 같은 일을 겪는 중이다. 그는 한 때 죽고 싶을 정도로 삶이 힘들다 생각했고, 실제로 죽는 상상도 했다고 한다.
◆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괴물같이 살찐 내모습, 어머니도 몰라봐"
척수염은, 큰 병이 늘 그렇듯, 갑자기 찾아왔다. 2005년 6집을 발표할 무렵부터 허리가 아프고 하반신 일부에 마비가 왔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평소 너무나도 튼튼했던 몸과, 특히 공연무대에서 신들린 듯한 퍼포먼스는 그의 병을 조기에 발견하는데 방해만 됐다.
걸음이 이상해졌다는 것을 느끼고서야 비로소 병원을 찾았다. 드렁큰타이거만 척수염에 무지했던 것이 아니었다. 찾아가는 다섯 곳의 병원마다 그저 ‘디스크’라고만 진단했다. 실제로 디스크가 있긴 했지만 척수염의 고통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몸에 이상이 생겼기에 애꿎은 디스크 치료는 받아야 했다. 그러나 감각이 서서히 없어지기 시작했고, 어느 날 아침 하반신에 느낌이 없었다.
“딱 직감이 들더군요. 신경과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어요. 공연을 가는 길에 병원에 들러 MRI 찍었죠. 한참 공연을 하는데 병원에서 다급히 전화가 왔어요.”
2006년 2월 병원에서 척수염이라는 최종진단을 받기 전까지 드렁큰타이거는 자신의 병을 루게릭으로 여겼다. 이즈음 인터넷을 통해 루게릭으로 투병중인 농구코치 박승일 씨를 알게 됐다.
척수염이라는 희귀하고도 치유될 수 없는 병에 대한 긴급처방은 스테로이드였다. 척수다발에 생긴 염증이 더 커지는 것을 막는 것이 급선무였고, 스테로이드는 그 역할을 한다고 했다. 그러나 스테로이드는 몸집이 급격히 불어나게 하는 후유증이 있었다. 한 달도 안돼 몸무게가 33㎏나 불어났고, 어머니까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가 됐다.
“어느날 집안일이 있어 부모님 집엘 갔더니 어머니가 저를 보시곤 ‘누구세요?’라고 묻더군요. 놀란 어머니를 위해 거짓말을 해야 했죠.”
드렁큰타이거는 어머니에게 “영화에 캐스팅됐는데, 몸집을 불려야 하는 역할이어서 살을 일부러 찌웠다”고 둘러댔다. 그러나 지난해 2월 무브먼트 공연에 참가했다가 사진이 공개되면서 부모를 더 이상 속일 수 없었다.
드렁큰타이거는 7집 재킷에서 '영혼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가 됐다. |
◆ "죽을까도 생각..박승일씨가 '나을 수 있을 거에요' e메일"
스테로이드 투약은 끊었지만 신경안정제와 항우울증제, 배변촉진제 등 하루 7종의 약물을 한꺼번에 복용해야 했다. 스스로 강하다는 생각으로 살아온 드렁큰타이거는 자신이 아픈 사실이 용납되지 않았다. 하지만 소변이 마려워도 마음대로 보지 못하고, 걷다가도 갑자기 쓰러졌다.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맞서야 했다.
“죽을까도 생각했었어요. 그러나 결국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죠. 박승일 씨가 안구마우스를 이용해 메일을 보내왔는데, ‘걱정 마세요, 나을 겁니다’라고 써있더군요.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박승일 씨가 날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를 악물고 투병생활을 한 드렁큰타이거는 평상시의 건강한 모습을 되찾았다. 애초 척수염이 발견된 곳의 염증은 사라졌지만 다른 부위에 생겼다는 말에 한숨을 지어야 했다. 하지만 드렁큰타이거는 일어섰다.
‘비틀거려도 그건 오직 취권/하얀 수건을 던지는 기권은 없어/물러서지 않아 무너지지 않아/지더라도 내 마음은 부러지지 않아’
5일 발매된 드렁큰타이거 7집 수록곡 ‘부활 큰 타이거’의 가사 일부다. 그의 각오처럼 그는 물러서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않으며, 혹시 지더라도 자신의 마음은 부러지지 않을 거라 다짐하고 있다.
◆ "7집은 자서전..生과 死ㆍ희망 함께 담아"
2년 만에 출시된 7집 ‘Sky is the limit’는 드렁큰타이거의 자서전이다. 몸이 좋지 못한 시기에, 특히 자신의 인생에 있어 아주 특별한 존재였던 할머니의 죽음을 맞으며 작업했던 앨범이어서, 트랙 대다수는 다소 어둡고 무겁다.
“책을 쓰고 싶었어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죠.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막상 끝내고 나니 발가벗겨진 느낌이네요.”
앨범이 자서전의 의미니만큼 국내에선 생소한 ‘스토리 텔링’ 형식이다. 기존 힙합의 포맷인 랩-멜로디-훅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긴 이야기를 랩으로만 풀어냈다. 트랙마다 처음부터 끝까지 랩이며, 간간이 훅이 포함됐을 뿐이다.
“전형적인 힙합의 공식을 파괴해버리고 나름의 포맷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스토리 텔링’ 힙합은 내가 처음 시도한 것은 아니지만, 만약에 대중이 이 힙합을 이해해 준다면 나는 보람 있겠고, 기쁘겠어요. 이해를 못해주면 더욱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7집을 발표한 드렁큰타이거 |
드렁큰타이거는 이번 7집을 일반 오디오CD의 수록가능 시간인 74분에 거의 근접하는 68분(20트랙)에 이르게 곡을 채웠다. 그만큼 할 말이 많았던 것이다.
그의 자서전은 기존의 유명 영화나 책, 시 등의 오마쥬가 많다. 그중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펄프 픽션’이 이번 7집의 새로운 형식의 모태가 됐다.
드렁큰타이거는 국내에 힙합이 정착되는 과정을 ‘매일밤01’과 ‘매일밤02’에서 들려주고 있다. 미국에서 힙합을 체험한 힙합의 놀라움과 한국에 돌아와서 목격한 서태지와 H.O.T, 그리고 힙합을 바라보는 한국 방송가와 홍대 힙합클럽의 풍경을 전하고 있다.
별다른 이유없이 후배 힙하퍼와 네티즌으로부터 자주 공격을 받았던 드렁큰타이거는 이들에게 ‘Hollyhood’라는 곡으로 대답을 하고 있다. ‘내가 싫다’ ‘돌연변이’ ‘부활 큰 타이거’ ‘태어나 다시 태어나도’는 이런 역경을 딛고 힙합에 매진하는 그의 자화상이다.
자신의 몸이 아프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Death of a salesman’ ‘Die legend’ ‘산수(山水)’를 통해 생(生)과 사(死)의 이야기를 하게 됐다.
드렁큰타이거는 처음 척수염 사실이 대중에 알려졌을 당시 ‘괴물됐네’ ‘죽겠네?’ ‘턱수염이라고?’라는 악성 댓글을 보며 ‘이런 세상이구나’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고 한다. 드렁큰타이거는 자신이 투병생활이 알려지는 것을 경계했다. 자신의 병을 모르면 좋을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아파도 호랑이다. 술취한 호랑이(드렁큰타이거)는 더 큰 포효를 할 준비를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