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정 "'싸이보그'로 지친 마음, '행복'으로 추스르고파"

전형화 기자 / 입력 : 2007.09.2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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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임수정 ⓒ임성균기자 tjdrbs23@


임수정은 소녀였다. 올해로 스물아홉, 결코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이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그 나이로 보지 않았다. 여리면서도 강인한, 당차면서도 가녀린, 상반된 이미지로 한정지었다.

'장화,홍련'으로 시작된 작품 여정 속에서 임수정은 시간을 잃어버린 엘리스였다. 토끼를 찾아 헤매도 결코 잡지 못했던...


그런 임수정이 자신의 1막 여행을 끝냈다. 임수정은 허진호 감독의 '행복'을 통해 비로서 자신의 연기 인생 1막이 끝난 것 같다고 말했다. '행복'에서 처음으로 제 나이 또래 여인을 연기한 임수정은 "소녀에서 시작해 여인으로 1막을 마쳤다. 앞으로 2막은 어떻게 열어야 할 지 잘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행복'에서 '몸빼 바지'가 무척 잘 어울렸다. '몸빼 바지'가 잘 어울리는 그 또래 배우는 보기 드문데.

▶(황)정민 오빠가 내가 신은 보라색 양말을 보고 항상 벗으라고 장난을 쳤다. 화려한 역으로 등장하는 공효진과 연기를 하고 온 뒤에는 더욱 심했다.(웃음) 허진호 감독님이 원래 여자배우를 예쁘게 찍어준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촬영을 끝내자마자 '행복'을 촬영했는데.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부산에서 촬영하고 있을 때 허진호 감독이 현장을 찾아왔다. 사실 휴식이 필요했기에 고민을 했었다. 그런데 묘한 인연을 느꼈다. 사실 '행복' 시나리오가 몇 년 전부터 돌았는데 그 때 그 시나리오를 읽었던 지인들이 '네가 생각나더라'고 했었다.

20대 후반인 여성의 이야기였다.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내 나이의 나를 제대로 보여주자고 생각했다.

-'행복'에서 '어리게 보지 말아라. 생각보다 나이 많다'라는 대사가 의미심장하더라. 동안이라서 불편한 점은 없었나.

▶지금까지는 장점이었다. 어려보이는 얼굴이 아니었으면 지금까지 내가 했던 역들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대중이 나를 어리게 보는 것도 당연하다. 지금까지 그런 모습만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보여줄 게 내 몫인 것 같다.

자연인 임수정은 나이가 먹어가는데 배우 임수정은 소녀로 남아있었다. 그런 까닭에 ‘행복’을 선택한 것이다.

-황정민과의 조합이 꽤 매력적이었다.

▶주위에서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과연 어울릴까. 하지만 극 중 정민 오빠와의 나이 차이가 실제 나와 정민 오빠와의 나이 차이이다. 그래서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정민 오빠와 예전부터 친분이 있었는데 꼭 연기를 같이 해보자고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연기를 하다 찌릿찌릿하게 오는 순간들이 여러 번 있었다. 나와 정민 오빠가 함께 병실에 누워있는 장면이었는데 허진호 감독님이 한 번에 오케이를 하더라.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수 십 번찍 찍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인데. 그래서 불안해서 한 번만 더 찍자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 처음 장면으로 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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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임수정 ⓒ임성균기자 tjdrbs23@


-허진호 감독은 심은하 이영애 등과 함께 해 그들을 당대 톱스타로 만드는데 일조했는데.

▶두 선배님은 내가 너무 존경하고 좋아하는 배우들이다. 만일 내게서 그런 모습을 보고 허진호 감독님이 선택해줬다면 너무 영광이다. 30대가 되어서 그 분들에 버금가는 배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극 중 황정민은 어찌보면 나쁜 남자인데 첫 눈에 반한다.

▶실제 나라면 그럴 수는 없다. 극 중 캐릭터는 나보다 훨씬 마음이 깊은 여인이다. 나는 사랑에 나이 차이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첫 눈에 반하는 것은 무리이다. 오래 지켜보면서 이야기를 나눠봐야지 호감이 생긴다. 나쁜 남자보다는 착한 남자가 좋고.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끝내고 일주일만에 ‘행복’에 들어갔는데.

▶지난해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박찬욱 감독님과 허진호 감독님은 극과 극에 있을 정도로 스타일이 다르다. 박찬욱 감독님은 머릿속에 원하는 그림이 다 들어있는 반면 허진호 감독님은 큰 틀만 정해주고 다 열려있다. 솔직히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로 지친 몸과 마음을 ‘행복’으로 추스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웃음)

허진호 감독님과 함께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말과 연기하고 자판기랑 연기하면서 앞으로 어떤 역도 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장화 홍련’이 연기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장화 홍련’은 지금도 무서운 장면만 빨리 돌리고 자주 보는 작품이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잘 보지 못한다. 내가 미숙했던 모습이 너무 자주 보여서. 말하자면 ‘장화 홍련’은 내 연기 인생 1막의 시작이었다. 이제 ‘행복’으로 1막이 끝났으니 어떤 모습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나 자신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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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임수정 ⓒ임성균기자 tjdrbs23@


-배우 임수정으로서의 목표가 있다면.

▶지금까지 내게 사람들이 잘한다, 잘한다 호평을 해줘 부담스러웠다. 언젠가 못했다고 욕이 쏟아지는 때도 올 것이라고 솔직히 생각해본다. 그냥 전작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줬다는 소리를 계속 듣고 싶다. 그래서 언젠가 단 한 작품이라도 모든 사람들이 엄지 손가락을 들어주는 것을 하고 싶다.

-자연인 임수정은 어떤가.

▶좀 더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하기 전까지 우울하고 폐쇄적이지만 이제 상당부분 사라졌다. 남들에게 오해를 사더라도 거짓 없이 자유롭게 살고 싶다. 난 나의 자유를 포기하면서까지 살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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