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왼쪽)과 '왕과나'. |
사극의 달인 김재형 PD와 이병훈 PD가 또다시 맞붙어 화제가 된 두 사극이 박빙 승부를 보이고 있다. 30일 방송분에 대한 두 시청률회사 조사에서 각각 0.1%포인트(TNS미디어), 0.2%포인트(AGB닐슨)의 아슬아슬한 차로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다.
김 PD의 SBS '왕과 나'와 이 PD의 MBC '이산'은 그동안 두 대가가 각기 추구해온 특성이 도드라지며 시청자들의 취향을 '정확히' 양분했다.
조선 전기 실존한 환관 처선의 일대기를 그린 '왕과 나'는 불과 같은 '격정 사극'이다.
1962년 '국토만리'로 TV사극의 첫 장을 연 김 PD가 45년간 가꿔온 스타일의 집대성이다. 2001년 SBS '여인천하'를 통해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궁궐을 중심으로 한 권력암투가 주제다.
'여인천하'의 유동윤 작가가 다시금 집필을 맡아 권력욕, 질투, 배반, 야심 등 강렬한 인간 본능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보여준다. 각기 나름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각 인물간의 얽히고 설킨 관계, 계략과 음모 등이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여기에 어울리는 파워풀한 연출력이 압권이다. 인물들을 끊임없이 격정적인 감정으로 몰아가며, 카메라를 줌업해 배우들의 표정을 클로즈업한다. 번뜩이는 눈빛, 극적인 표정연기, 오열과 호통같은 직접적인 방법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갑작스럽게 앞으로 당겨지며 눈 앞으로 쏠리는 얼굴에 시청자들도 빨려들어가는 듯 하다. 감정이 실린 배우들의 높은 목소리도 흡인력을 발휘한다.
화면도 인물이 큼직 큼직하게 잡아 꽉 차는 느낌이 든다. 의상도 진한 원색 위주로 촘촘히 새긴 화려한 금박이 눈부시다. 진홍, 청록, 빨강, 남색, 보라 등 보색 대비가 극명한 호화로운 한복들이 화면을 채운다. 두텁게 올린 가체와 떨잠, 비녀, 매개댕기 등 다채로운 머리 장신구들도 볼거리다.
내시를 만들고 교육하는 내시 양성소가 주요 배경중 하나로 자궁(거세)을 하며 붉은 피가 튀기는 장면도 여러 번 나왔다. 주인공 처선(오만석 분)이 스스로 자궁하는 장면이나, 연이은 성종(고주원 분)의 합궁 신도 자극적이다. 연산군이 탄생하는 날의 천둥과 벼락, 거센 바람은 소용돌이 치는 격한 감정들을 대변하는 도구들이다.
'왕과나'(왼쪽)와 '이산'. |
반면 조선 22대 임금 정조(이산, 이서진 분)를 인간적인 측면에서 접근한 '이산'을 물과 같은 '담백 사극'이라 할 수 있다.
MBC '허준', '상도' 등을 연이어 성공시킨 후 '대장금'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한 이 PD의 연출 특징이 그대로 살아난다.
갖가지 사건들이 벌어지지만 차근차근 역경을 극복해나가는 구조가 상대적으로 격조있고 아기자기하다.
할아버지 영조(이순재 분)에 의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 동궁에 들지만 정조의 위치는 항상 불안하다. 어머니 혜경궁 홍씨(견미리 분)가 강조하듯 '권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왕이 되어야하는 그는 매회 시련을 맞지만 지략으로 이를 넘기는 성장기를 그려보인다.
정순왕후(김여진 분)가 보여주는 악역 연기도 격하기 않고 서늘하다. 칼을 휘둘러 살해하기보다는 말 한마디로 자결케하는 정적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애정신에도 첫사랑같은 설렘이 있다. 강렬한 질투나 욕망보다는 애타는 그리움이 애잔하다.
'대장금'에서 궁중 음식을 만드는 수랏간을 주요 배경으로 했다면, 이번에는 그림을 관할하는 도화서를 배경으로 해 예술적 풍취도 흐른다.
화면도 '대장금'에서처럼 푸른색 한복과 안온한 푸른 색조가 눈을 시원하게 한다. 멀찍이서 잡혀지는 풍경은 여백의 미가 돋보인다. 의상의 색채도 한 톤 다운됐고 자수 장식도 섬세하고 은은한 맛이 있다. 금박과 은박도 요란하지 않다.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담백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