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리 김상경. 왜 이들은 TV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걸까. 연기 잘하지, 팬들 많지, 무엇보다 스크린에서 대박을 터뜨린 명품-흥행배우들인데 왜 유독 안방극장에선 홀대를 받는 걸까.
자타가 공인하는 연기파 배우 문소리. 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에서 그녀가 보여준, 사랑에 빠진 정신지체 장애아 연기는 두고두고 화제가 될 만했다. 이어진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에서 봉태규와 아슬아슬, 때로는 대놓고 벌인 사랑은 아주 치명적이었으되 문소리의 숨겨진 섹시미를 과시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또한 '효자동 이발사'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등에서 느꼈던 그녀의 존재감을 떠올려보시라.
하지만 지난해 12월 자체 최고시청률 35.7%(이하 TNS미디어코리아 집계기준)로 막을 내린 MBC 판타지사극 '태왕사신기'에서 '기하' 문소리의 존재는 희미했다. 이전 스크리에서 보여준 억척 내지 눈물, 섹시와는 전혀 다른 '청순 가련' 캐릭터 때문이었을까. "미스 캐스팅"이라는 안티 팬들의 성토는 끊이지 않았으며, 그녀의 출연분량 역시 '담덕' 배용준이나 '수지니' 이지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그녀가 다시 스크린을 통해 관객과 만나자 반응은 180도 바뀌었다. 바로 지난 10일 개봉, 일주일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한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다. 아픈 과거를 가진 여성 핸드볼 국가대표팀 선수로 등장, 김정은과 함께 영화 흥행의 일등공신이 됐다. "역시 문소리"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은 당연지사.
김상경 역시 유독 TV에서 약한 것은 마찬가지. 대표적으로 빛을 못본 드라마가 바로 2001년 타이틀롤을 맡았던 MBC 사극 '홍국영'. 시청률에서도, 시청자 반응에서도, 화제 양산면에서도 이래저래 상처와 불명예를 안았다. 이후 그가 활동영역을 스크린으로 돌린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2005년 김성수와 함께 한 MBC '변호사들'은 열혈 마니아 시청자를 낳았지만 시청률(마지막회 10.5%)면에서는 결코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이후 다시 타이틀롤을 맡아 사극에 재도전한 KBS '대왕세종'은 이제 막 6회에 등장한 상태. 아무리 이전 아역 배우들의 연기가 올망졸망 눈길을 끌었고, 성인 시대가 되어서는 다혈질 카리스마의 양녕대군(박상민)의 기세에 밀리고 있는 형국이라지만, 특히 20일 제6회에서 그가 맡은 충녕대군의 존재는 한없이 미미했다. 도대체 드라마에서 한 게 뭐가 있나?
하지만 김상경이 누구인가. '생활의 발견' '극장전' 등을 통해 홍상수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릴 정도로 연기 잘하고 심지어 '웃기는 연기까지' 가능한 배우이자,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에선 연기와 흥행까지 쌍끌이한 배우가 아닌가. 또한 지난해 그가 주연한 '화려한 휴가'는 무려 728만 관객을 동원했으니, 최소한 스크린에서 그를 따를 배우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이들이 이처럼 TV에서 부진을 겪는 이유는 뭘까. 대다수 영화 관계자들은 두 매체와 소비계층의 성격-취향 차이에서 이유를 찾고 있다. 메이저 영화홍보 대행사의 한 관계자는 21일 "TV는 배우들의 연기력보다는 스타성에 더 의존하는 경향이 짙다. 특히 볼거리 위주다. 문소리나 김상경이 꽃미남 꽃미녀가 아닌 것도 이 '볼거리'를 원하는 TV 시청자들의 성향과 큰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에 비해 영화는 2시간 동안 한 영화를 선택한 소비계층의 매체다. 따라서 스타성보다는 배우들의 연기력에 더 크게 의존한다. 요즘 잘나가는 CF스타가 영화에 나와 욕을 크게 먹는 것도 이 때문이다. 꽃미남 꽃미녀가 스크린에 나오면 그들의 연기력이 도마에 오르고, 연기파 배우가 TV에 나오면 시청률로 욕을 먹는 게 두 매체의 생리인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