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질 끌긴 해도 요즘 MBC '이산'의 최고 볼거리는 세손(이서진)과 정순왕후(김여진)의 팽팽한 대결이다. 더욱이 영조(이순재)가 사도세자의 진심을 알고 그의 무덤에 가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세손에게 왕위를 넘겨줄 계획을 세우면서, 정순왕후의 몸짓은 더욱 거칠어져 가고 있다.
"둘(영조와 세손) 중 하나의 숨통은 끊어야지"라는 정순왕후의 표독한 얼굴만큼이나 자리-목숨 보전을 위한 정순왕후와 그의 측근들 행보도 바빠지고 있다. 이에 맞서는 세손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드라마 분위로만 보면, 할머니인 중전이라는 자리 때문에 함부로 못할 뿐 그 속의 분노는 아주 뜨겁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의아해하고 있다. 정말 그랬을까. 정순왕후가 정말 이처럼 표독스럽고 세손을 못잡아먹어 안달일 정도였을까. 또한 훗날 정조 집권후 정순왕후와의 관계는 어떻게 됐으며, 자신의 적대적 세력이었던 화완옹주(성현아)와 정후겸(조연우)은 어떻게 됐을까. 이게 다 요즘 유행하는 '퓨전사극' '뻥사극' 때문에 역사적 사실과 작가적 상상력 사이에서 시청자들이 갈피를 못잡기 때문이다.
일단 조선왕조실록을 근거로 보면, 정조 집권후 왕대비가 되는 정순왕후에 대한 묘사는 영조 당시 몇 번 언급됐을 뿐 구체적인 게 없다. 영조 35년인 1759년, 김한구의 딸로 왕비(계비)로 간택됐다는 게 실록에 처음 등장하는 순간이다.
정조실록에도 왕대비인 정순왕후와 임금인 정조가 갈등을 빚었다는 내용은 발견되지 않는다. 하지만 두 세력간의 권력다툼은 분명히 존재했다. 정조 21년 2월18일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우의정 윤시동의 죽음에 대해 쓴 기사에 "김씨와 홍씨의 두 외척이 전(田)-두(竇)의 다툼을 벌일 때, (윤시동이) 항상 조정의 논리를 주장하였다"고 돼 있다.
역사가들은 이를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친정세력인 김한구 김귀주 등과 사도세자의 빈 혜경궁 홍씨의 친정세력인 홍봉한 홍국영 등이 세력다툼을 벌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전-두의 다툼'이란 중국 전한 때에 문제의 비 두태후 측인 두영과, 경제의 비 왕태후 측인 전분의 세력다툼을 가리킨다.
그럼에도 정작 정조 자신은 정순왕후를 극진해 대했다는 내용이 많다. 정조 11년에 왕대비의 존호를 더 올렸다는 게 대표적인 사례. 할아버지인 영조가 총애했던 할머니 정순왕후, 그것도 왕대비가 된 그녀를 개인 감정 닿는 대로 대하긴 힘들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비해 정후겸에 대한 실록의 묘사는 상당히 거칠다. 영조 52년 3월3일, 영조가 한참 병환이 악화될 때다. "이때 대신과 여러 신하가 청사에 서서 기다리는데, 정후겸이 집사로서 들어와 다리 병을 핑계하고 전정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감히 지팡이를 짚고서 표독한 빛이 낯에 나타나고 조금도 슬픈 모습이 없었으니 그 마음을 캐어보면 아 또한 모질다."
한편 세손의 극진한 할아버지 사랑은 대단했다. 같은 영조 52년 3월3일 기록이다. '왕세손이 말하기를 "(영조가) 저녁 뒤부터 가래와 어지러운 증후가 더욱 심하고 눈꺼풀이 열렸다 감겼다 하며 손발의 온도가 여느 때와 다르시다. 강귤다 두어 술을 드시게 하여 보았더니 온기가 있는 듯 하다가 곧 다시 차지셨으니 애가 타서 어쩔 줄 모르겠다" 하고 성체를 주무르시며 잠시도 옆을 떠나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애태우니 보는 신하들이 모두 느껴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