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드라마엔 왜 밥상머리가 안빠질까

김관명 기자 / 입력 : 2008.02.11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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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주말드라마 '엄마가 뿔났다'를 보면서 드는 생각 하나. 왜 김수현 드라마에는 언제나 밥상머리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걸까.

지난 10일 '엄마가 뿔났다'. 첫회부터 그랬지만 이날도 역시 '엄마' 김혜자네 집 마루에선 밥상이 차려졌다. 의자가 아닌 양반다리를 하고 앉는 그런 밥상. 며느리인 김혜자가 언제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순재도, 순박한 듯 한데 무능도 해보이는 '아빠' 백일섭, 곁방살이하는 '시누이' 강부자까지 모두 모여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밥을 먹었다.


사실 이 밥상머리에선 별 사건사고가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다. 그저 등장인물의 캐릭터와 요즘 고민꺼리, 이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분위기 등만이 반복해서 보여질 뿐이다. 이 드라마 끝나자마자 방송된 SBS '행복합니다'의 휘황찬란한 홍콩 유람선과는 천양지차 분위기다. 지금까지 4회가 방송되는 동안 가장 큰 '사건사고'를 꼽는다면 강부자가 '조카' 김정현의 머리를 이 밥상머리에서 후려갈긴 정도일까.

그럼에도 이 밥상머리는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제 잘 난 맛에' 나가서 혼자 사는 '딸' 신은경은 같이 밥 먹기 위해 '굳이' 이 밥상머리를 향해 들어오려 하고, 갑자기 나타나 애까지 낳은 '며느리' 김나운은 그렇게 말리는데도 '굳이' 아래층에 차려진 밥상머리에 앉으려고 한다.

작가의 전작 SBS '내 남자의 여자'에서도 마찬가지. 그렇게나 믿었던 '남편' 김상중이 바람이 났고, 그것도 자신의 절친한 '친구' 김희애와 그런 짓꺼리를 한 사실에 반쯤 정신이 나간 배종옥. 그래도 그나마 정신 집중해 정성껏 이 요리 저 요리 만들어 내놓은 공간이 이 밥상머리이기도 했다. 게다가 집 나가 김희애와 딴 살림 차린 '대학교수' 김상중은 무슨 낯짝으로 배종옥이 차린 이 밥상머리를 그렇게나 떠나려 하지 않았을까.


'엄마가 뿔났다'도 그렇지만 '목욕탕집 남자들' '부모님 전상서' 등에서 도드라지는 김수현 작가의 작법 중 하나는 바로 대가족이다. 그것도 어른(이순재, 송재호)이 무게중심을 꽉 잡고 있고, 손자손녀들은 신세대답게 나름대로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그런. '엄마가 뿔났다'에서 그 어른은 다름아닌 '못먹어서 소식을 하게 된' 이순재였고, 어른들 입장에선 좀체 이해할 수 없는 요즘 세대는 바로 신은경이고 김정현이고 김나운이고 김지유였다.

이렇게 엇나가는 3대가 살아가는 대가족이 유일하게 서로 눈빛을 나누고 일상사를 공유하는 시공간이 바로 이 '밥상머리' 아닐까. 더욱이 '엄마가 뿔났다'에서 이 밥상머리는, 그렇게나 고단한 삶을 자각한 김혜자가 더욱 피곤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제 어미 속 까맣게 타들어가는 건' 모르고 왁자지껄 모여들어 밥 달라고 '명랑하게' 소리치는 식구들의 아우성.

기껏해야 먹을 것이라고는 '자장면'밖에 모르는 남편 백일섭은 말끝마다 "밥 안줘?"라고 칭얼대지, 뭐 하나 아직은 이쁜 구석 없는 '며느리' 김나운은 시어머니가 차린 미역국 밥상을 그렇게나 잘 먹어대지..이런 피곤과 섭섭, "밉다 미워"의 총체가 김혜자에게는 바로 밥상머리다. 오죽했으면 손자 봐달라는 아들 말에 "식구들 밥 해먹이는 것도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을까.

하지만 (대개의 대한민국 남자들이 그렇지만), '부자' 백일섭과 김정현에게 이 밥상머리는 자신들이 거의 유일하게 대접받는 공간이자 시간이다. 사사건건 귀찮은 개구장이마냥 무시당하는 백일섭, 여전히 철없고 제 아내밖에 몰라 그렇게나 눈총받는 김정현도 이상하게 이 밥상머리에서는 김혜자에게 대접받는다. 그리고 이 밥상머리에서 누구라도 구박받는 것은 김혜자도 용납을 못한다(2회 강부자 에피소드).

'내 남자의 여자'에서 '남자' 김상중에게 이 밥상머리는 이제야 그 따뜻함을 느끼게 된 '아내' 배종옥과 '가정'의 강렬한 상징이었다. 보글보글 된장국과 따뜻한 밥, 사랑에 빠진 김희애는 죽었다 깨나도 자신에게 해줄 수 없는 그런 시공간이 바로 그 '밥상머리'였던 것이다. 게다가 그 옛날의 밥상머리에는 '아들' 박지빈도 있었으니 김상중에게 밥상머리는 곧 새로운 선택에 따른 너무나 크고 속상한 기회비용이기도 했다.

해서 수저를 놓고, 안 온 식구 큰 소리로 부르고, 게걸스럽게 밥과 국을 먹고 떠먹고, 수다를 떨고, 품에 안기어 재롱을 피고 하는 이런 모든 일이 벌어지는 밥상머리야말로 김수현 드라마의 처음이자 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아무리 '뿔난' 엄마 김혜자라도 이 지긋지긋한 밥상머리는 결코 떠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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