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봉진 기자 |
활짝, 마음껏 웃는 모습이 오히려 낯설다. 그런데 황수정(36)은 그것이 본래 자신의 모습이라고 했다.
지난해 초 SBS 금요드라마 '소금인형'으로 6년 만의 침묵을 깬 황수정은 홍상수 감독의 '밤과 낮'으로 본격적으로 언론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28일 영화 개봉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갓 데뷔한 신인처럼 발랄한 언행으로 보는 이들을 즐겁게 했다.
"첫 영화를 좋은 감독님, 배우와 함께 했고, 또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출품됐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죠. 영화에 첫 발자국을 내디뎠고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해요."(그는 1999년 'A+삶'이라는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지만, 굳이 이 작품을 '첫 영화'라고 표현했다.)
표정이 풍부한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울림이 좋은 목소리로 상냥하게 인사를 건넨 그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사진촬영에도 겉옷을 벗고는 적극적이고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응하는 것이 보기에 좋았다. 차기 활동 계획 등에 대해서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지만 대개의 질문에는 솔직하게 응했다.
황수정은 '밤과 낮'에서 대마초를 피운 후 파리로 도피한 화가 성남(김영호 분)의 아내 성인 역을 맡아, 여성미 넘치는 애잔한 얼굴과 애교 넘치는 말투로 사랑스러운 여인의 모습을 드러냈다. 성남이 파리에 머무는 동안에는 한국에서 그를 기다리는 아내로, 전화 목소리로만 출연했다.
- 90% 이상 파리에 있는 김영호씨와의 전화통화 목소리만으로 출연했는데, 홍상수 감독과 함께 한 작업은 상당히 독특했을 듯 싶어요.
▶파리에 가있는 촬영팀과 한국에서 실시간으로 전화통화를 했어요. 새벽 시간 녹음기사와 녹음실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전화를 받아서 목소리가 좀 가라앉아 있었죠. 보통 그런 경우 녹음을 해서 덧입히는 경우가 많을텐데, 실시간으로 하지 않으려면 아예 파리로 오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한국에 다른 스케줄이 있어서 파리에 가지 못해서 녹음실을 선택했죠.
녹음을 혼자 하는 것보다는 김영호씨와 호흡을 맞춰서 하니까 연기하기가 훨씬 좋았어요. 감독님은 먼저 작품 얘기를 하거나 시나리오를 주시지 않아서 촬영 직전 팩스로 보내주신 대본을 받아 바로 연기했죠.
- 이 영화가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는데 왜 동행하지 않았나요?
▶영화제에 대해 잘 몰라서 감독님만 가시는 건 줄 알았어요. 다른 스케줄이 있어서 가지 못했다가 늦게라도 합류하려 했더니 그게 돌아오는 날이라도 하더구요.(다른 스케줄이 무엇인지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 그냥 여러 오디션과 약속들이라고만 말했다.)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베를린에 진출한 영화에 출연했던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고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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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작 '오! 수정' 때도 홍상수 감독과 만난 적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왜 출연을 하지 않았나요?
▶'오! 수정' 때는 감독님이 캐스팅을 않으셨죠. 수년 만이지만 예전에 만났던 분을 다시 뵈니까 반갑고 좋더라구요.
- 노출 등을 우려하지는 않았나요?
▶많은 분들이 그 점을 물어보시더라구요. 감독님이 '12세 관람가'라고 먼저 말씀하셨어요. 감독님 작품 색깔이 전작인 '해변의 여인'부터 달라진 것 같아요. 너무 노출에 관심을 쏟는 것을 이제는 피하시려는 것 같아요.
- 그래도 대사는 좀 야하던데. 김영호씨가 자위를 해달라고 요구하자, '씻고 올게'라고 대답하는 장면이라든지.
▶그런 대사들이 처음에는 입에 안 붙어서 고생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설명을 조근조근 잘 해주세요. 어색하다고 하니까 영화 전체적으로 보면 괜찮을 거라면서 상황 설명을 잘 해주시니까 어색하지 않게, 담백하게 할 수 있었어요. 사랑하는 부부 사이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저는 결혼을 안했서 몰랐지만, 결혼하신 김영호씨도 그런 거는 안해봤다고 하시더라구요.
- 목소리가 참 청아하고 애교 넘친다는 느낌이 들던데요.
▶제가 시낭송 음반도 녹음했더랍니다.(웃음) 전화기 필터가 있어서 더 그렇게 들렸을 수도 있죠. 그런 역할을 지금까지 못해봤지만 저도 사랑스러운 면이 있답니다. 본래 애교도 그것보다 더 많아요. 사랑이라는 감정을 표현하다는 것이 참 좋더라구요.
- 목소리로만 출연하다가 성남이 한국에 돌아온 부분에서 함께 출연하는데 어땠나요?
▶감독님이 본래 사전에 무슨 촬영을 한다고 말씀을 안해주시니, 한국에서의 첫 촬영 때 코디와 함께 의상만 수십벌 준비했는데 다 필요없다고 하시고, '아줌마 옷' 한 벌을 주시더니 그걸 입으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화장도 별로 않고 그 옷만 입고 이틀간 촬영했어요. 저도 오래 분장을 안해서 그런지 짙은 화장이 답답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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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상수 감독이 당부한 것은 뭔가요?
▶본래 배우들에게도 많은 말씀을 안해주세요. 그냥 '직감'이라는 표현을 많이 하시는데, 제가 평소에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에서 성인의 모습을 보신 것 같아요.
- 몰랐는데, 참 웃음이 많으신 듯 싶어요.
▶본래 웃음이 많아요. 늘 하던 역할이 무겁고 울어야하는 역할이니까 거기에 많이 젖어들었던 것 같아요. 좋은 분들, 지인 분들이 힘이 되어주시고 마음도 편안해지니까 본래 모습이 드러나게 되는 듯해요.
- 오랜만에 복귀하니 어떠세요? 한 때 복귀를 안하신다는 말씀도 하셨는데.
▶좋아요. 그 전보다 더 연기를 위해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생각도 들고요. 옛날에 한 연기를 보면 쑥스럽고 창피한 부분이 많아요.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기대감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다른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할 줄 아는 게 연기 밖에 없잖아요. 배워나가야할 부분도 많고, 도전해볼 수 있는 것도 많다는 것 때문에 앞으로 시간이 더 기대돼요.
-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요?
▶기본적으로 안해 본 역할이 많아서 다 도전해보고 싶어요. 밝고 당당한 캐릭터, 야누스적인 역할 같은 것을 해보고 싶어요. 조용하고 지순한 점도 내 안에 있는 것이겠지만, 털털하고 다른 면도 많거든요.
- 평소에는 어떻게 지내시나요?
▶요즘은 일반인들도 몸매를 잘 가꾸시잖아요. 잘 못했는데, 요즘 요가도 하려고 하고 그래요. 최근 본 작품은 뮤지컬 '나인'과 비틀즈 음악을 영화로 만든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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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작품은 누구랑 보러다니나요?
▶혼자서 가요. 요즘에는 혼자 오시는 분들 많잖아요. 일 끝나고 문득 보고 싶어지면, 그 시간에 맞는 영화를 보기도 하고.
- 혼자 다니면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지 않나요? 어떻게 변장이라도 하고 다니시는 것 아녜요?
▶아니요. 혼자 다녀도 별로 신경들을 안쓰시던데요.
- '밤과 낮'을 보는 관객과 팬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영화에서 너무 심오한 뜻을 찾으려 마시고 그냥 흘러가듯이 봐주세요. 선입견을 갖지 마시고 편안하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또 '허준' 속의 제 이미지 때문인지 밝은 제 모습에 의아해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단순한 것에서 행복을 찾고 잘 웃는 것이 본래 제 모습이에요. 예진 아씨와 같은 모습이 제 이미지로 굳어진 것 같아요. 성인에게 보여지는 모습도 제 일부분이라는 것을 편안하게 받아들여주셨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