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민 leebean@> |
이정헌. '춘향뎐'으로 데뷔한 그는 수많은 화제작에 출연해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정작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는 언제나 작품 속에서 악역 아닌 악역을 맡았다.
누구에게 피해를 준다기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애정이 지나칠 정도로 강해 얄미운 인물, 그간 이정헌이 주로 맡았던 캐릭터이다. 배우가 작품 속 캐릭터로 기억되는 것은 한계이지만 또한 장점이기도 하다.
이정헌은 "첫 인상이 날카롭고 세보인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런지 그런 역을 많이 제의받는다"고 말했다.
3일 개봉하는 'GP506'(감독 공수창)에서도 이정헌은 개인주의 성향이 짙은 군의관을 연기했다. GP에서 소대원이 몰살된 사건이 벌어졌어도 할 일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이어폰을 끼고 책을 읽고 마는 인물.
그의 개인주의적인 성향과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우직한 수사관의 대립은 'GP506'의 주요한 갈등구조 중 하나이다.
"공수창 감독님과 '코마'에서 함께 작업을 했었죠. 영화 끝날 때쯤 다음 작품을 같이 하자면서 '미안하지만 또 의사'라고 하더라구요. 감독님을 워낙 믿고 있었기에 '알겠습니다'라고 했죠."
앞서 '최강로맨스'를 통해 부드러운 형사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기에 또 다시 얄미운 군의관을 연기하기에 부담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정헌은 'GP506'을 택했다. 쉽지는 않은 선택이었고, 촬영 중에도 어려움은 많았다.
"여러 사정으로 촬영이 중단됐을 때 물론 걱정은 됐죠. 하지만 감독님을 믿었고, 무엇보다 스태프들의 의지가 대단했어요. 다시 촬영이 시작됐을 때 스태프들이 교체 없이 전부 나오는데 감동적이었어요. 그동안 머리를 길렀던 보조출연자들도 머리를 다시 자르고 왔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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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두 편 찍은 기분"이라며 웃는 이정헌이지만 'GP506'은 '춘향뎐'이나 '실미도', '최강로맨스' 못지 않게 중요한 작품이라고 자신했다.
"버려진 땅이라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극중 자신의 대사가 극단 '학전'에서 연극을 하다 막 영화를 시작했을 때 생각을 떠오르게 했다.
한 때는 학전 동기인 황정민이나 선배인 설경구에 대한 질투나 시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마음을 품기에는 영화와 연기가 너무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연기에 대한 고민이 더욱 커지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정헌은 "대중예술도 순수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영화판으로 들어왔는데 어느샌가 다른 것에 휘둘렸던 것 같다"며 빙그레 웃었다.
이정헌은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잘알고 있다.
"캐릭터로 기억되는 배우는 행복한 배우"라는 그는 '실미도'의 박중사와 '최강로맨스'의 형사가 동일인물이 연기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이냐고 되물었다.
이제 이정헌은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하려 한다. 그동안 두려워서 출연을 꺼렸던 TV 드라마 출연을 진지하게 검토 중이다. 전혀 다른 시스템에 새롭게 도전하는 것이야말로 이정헌의 장기이기도 하다.
이정헌은 "어떤 옷이 내게 맞는지 아직도 잘모르겠다. 그저 지금은 꾸준히 도전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의 도전이 어떤 결과를 낼지, 시간은 그의 편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