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균 감독 "차인표, 재평가받을날 멀지않았다"

김관명 기자 / 입력 : 2008.05.13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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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균 기자 tjdrbs23@


요즘 영화계의 관심사 중 하나는 오는 6월26일 개봉하는 '크로싱'(감독 김태균)의 성공여부다. 그 안된다는 북한 소재 영화에 탈북자라는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 게다가 주연으로 나서 영화흥행에선 도무지 재미를 못본 차인표가 나오니, 이래저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태균 감독은 확신했다. "이번 영화를 통해 차인표는 진정으로 재평가받을 겁니다. 연기 안되는 배우로 알고 있는데, 연기 됩-니-다. 준이(극중 차인표의 아들로 나오는 아역배우 신명철), 아마 놀-랄-겁-니-다."


지난 9일 인터뷰를 위해 찾은 서울 압구정동 사무실. 김 감독은 말보다 영상이라며, 10분짜리 '크로싱' 데모필름부터 보여줬다. '화산고'(권상우) '늑대의 유혹'(강동원 조한선) '백만장자의 첫사랑'(현빈) 등 지금껏 꽃미남만 상대해온 그가, 생각만 해도 '마음 무거워지는' 북한 꽃제비(기아로 중국으로 건너간 북한아이들) 얘기라니.

"99년인가, 꽃제비들이 길바닥에서 국수를 집어 시궁창 물에 씻어 먹는 다큐 장면을 보고 충격 먹었어요. 내가 살아있다는 게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다 2005년 미국에서 영화 프로듀서를 하는 패트릭 최라는 후배로부터 탈북자 이야기 '태양의 부재'를 영화화하자는 제안을 받았죠. 그때만 해도 이런 영화는 피하고 싶었던 게 제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영화는 북한 축구국가대표 출신의 탄광노동자 김용수(차인표)가 아내의 폐결핵 약을 구하기 위해 탈북을 하는 이야기가 한 축. 여기에 2개월 후 이런 아버지를 만나러 탈북하는 아들 준이(신명철) 이야기가 또다른 한 축으로 물고 물린다. 상황상 반드시 북한으로 돌아가야 하는 용수지만, 탈북자들의 주중 대사관 난입사건에 휘말리면서 영화는 걷잡을 수 없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영화가 너무 칙칙하고 아프고 어두운 것 아닌가.

▶아니다. 눈부신 아름다움이 있다. 예상치 않은 따뜻함, 가족의 그리움 이런 게 있다.

-탈북자를 다룬 차승원의 '국경의 남쪽'도 안됐다.

▶사실 관객 입장에선 보기 피곤해하는 소재가 맞다.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니까. (정색을 하고) 하지만 왜 '그들'인가. 우리 동포이고 가족 아닌가. 언제까지 북한 동포를 외면할 것인가. 불과 2시간도 안되는 거리에 사람이 살고 있는데, 고통 속에 살고 있는데..

-투자받기 힘들었겠다.

▶맞다. 김 기자도 알겠지만, 난 대중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나도 이런 얘기에 가슴이 아파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다 기적적으로 투자(밴티지홀딩스)가 됐다. 가족이야기이니까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쪽에서 투자를 안했으면 조그만 인디영화로 만들려고 했었다.

-극중 주인공이 왜 하필 축구선수인가.

▶아버지와 아들 사이를 맺어주는 뭔가가 필요했다. 아들에게는 한없이 자랑스러운 축구선수 아버지, 축구로 훈장까지 받은 아버지가 바로 차인표다.

-어떻게 해서 차인표를 캐스팅하게 됐나.

▶처음부터 인표씨가 하길 바랐다. 누가 이 영화를 진정성 있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연기자가 한마디 하더라도 진정성 있게 다가올 수 있는 배우. 컴패션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에 대해 눈물을 갖고 있는 배우. 정답은 차인표였다. 물론 반대도 많았다. 이미지가 너무 댄디하고 체격도 좋고, 무엇보다 능력남으로 보인다는 것. 왜? 영화에선 탄광 노동자에 아내의 죽음 앞에 한없이 무기력한 아버지여야 했으니까. 그런데 차인표는 그렇게 변신했다.

-몽골에서 고생고생해서 찍었다고 들었다.

▶울란바토르에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반을 가서 거기서 다시 비포장 도로를 150키로 달려 촬영하고, 다시 '퇴근'하고. 이런 걸 열흘 동안 했다. 그 허허벌판에 북한 장터도 꾸미고, 몽골 마을도 짓고 그랬다. (극중 함경도 마을은 강원도 영월에 마련했다) 배우들과 스태프, 진짜 고생많았다. 아역배우는 우울증까지 걸렸을 정도다.

-아역배우 신명철, 어떻게 골랐나.

▶이 역시 기적이다. 오디션에 세번이나 떨어진 그 녀석이 자꾸 눈에 밟혔다. 무엇보다 연기가 안됐다. 과연 이런 애를 데리고 영화를 끌고 갈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마지막 오디션에서, 꼭 필요한 눈물 장면이 있었는데, 마침내 눈물과 연기가 터졌다. 영화를 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그 흔한 아역들의 더 흔한 눈물, 그런 수준이 아니다.

사실 김태균 감독은 '눈물의 제왕'이다. '늑대의 유혹'을 본 관객은 알겠지만, 영화 막판 강동원 그 큰 눈에서 각설탕처럼 떨어진 눈물은 장난이 아니었다. 당시 영화제작자였던 차승재 싸이더스FNH 대표가 이 장면을 보고, 자신의 오른팔로 왼팔을 털어내면서 '닭살' 제스처를 했을 정도.

기자가 10분 그 잠깐 본 '크로싱' 데모필름은, 다름아닌 또다른 눈물의 예고편이었다. 물론 강동원의 그 눈물과는 화학성분이 전혀 다른. 흑백톤의 단란한 밥상, 진창에서의 해맑은 축구, 폐결핵의 엄습, 아비와 아들의 울부짓음, 이후 격랑처럼 휘말려가는 부자의 인생.. 진짜 산골소년 신명철의 이국적인 마스크와 뒤범벅된 눈물콧물, 애어른 할 것 없이 짓밟는 북한-중국 군인들의 사정없는 군화발.

아팠다. 우리가 배부른 소리할 때, 그들은 배고파 죽는다는 게. 그리고 비겁했다. 그 온갖 논리와 편견으로 그들의 삶과 이런 영화를 처음부터 외면하려 했던 게. 그리고 바랐다. 오는 6월, 어쩌면 영화계의 화제는 바로 이 영화가 될 거라고. 벌써 몇년 째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단을 소리소문없이 돕고 있는 김 감독에게 기자는 훌쩍거리며 악수를 청했다. "고맙습니다, 이런 영화 만들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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