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앤 더 시티'를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총 6시즌으로 방영된 HBO의 히트작이라고 소개하는 건 어딘지 부적절하다. 그건 단순한 드라마라기보다는 그 시절을 함께 보낸 싱글녀들의 아이콘이자 그들이 공유하는 하나의 문화였기 때문이다.
온몸에 명품을 휘감은 채 어처구니 없는 연애질을 거듭하던 캐리 언니와 함께 20대를 보낸 내게도 '섹스 앤 더 시티'는 특별한 드라마다. 그녀는 사려깊은 조언자이자 든든한 친구였고 반면교사의 언니이기도 했다. 개성 만점의 세 친구 사만다, 샬럿, 미란다는 또 얼마나 부러웠던가.
그 '섹시 앤 더 시티'가 영화로 돌아온다. 그것도 드라마가 끝난 바로 그 자리에서. 언니들의 나이는 40대를 넘어 50에 이르렀고, 내 나이도 30에 접어들었다. 아줌마들의 자글자글한 주름을 굳이 대형 스크린으로 봐야겠느냐는 비아냥 속에서도, 일단 확인해야 했다. 캐리의 패션이, 그녀의 사랑이, 그녀의 변화가 궁금하다.
같은 마음이었을까? 첫 시사회는 여기자들의 비율이 압도적. 극장의 불이 꺼지고 시작을 알리는 들려오는 익숙한 오프닝 음악이 들려온다. 가슴이 살짝 두근댄다. '언니'들이 돌아왔다.
첫 5분은 그녀들의 지난 10년이 경쾌한 편집 속에 흘러간다. 캐리는 빅과의 지긋지긋한 연애질을 끝내고 유부녀가 된다는 꿈에 들떠 있고, 사만다는 유방암 투병기를 함께한 근육질 애인과 LA 생활을 즐기는 중. 샬럿은 깜찍한 딸을 돌보느라 부산하고, 패션센스가 급상승한 미란다도 행복한 가정생활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늘 캐리가 강조했듯 '인생엔 항상 반전이 있기 마련이다.' 늘 그랬듯 빅과의 로맨스는 막판에 어긋나고, 사만다는 일탈에 목마르고, 샬럿은 꿈에 그리던 임신에 성공하며, 미란다는 남편의 실수에 괴로워한다. 그런 그녀들을 위로하고 축복할 수 있는 건 역시 늘 그랬듯 똘똘 뭉친 4총사 자체다.
영화는 4년 뒤 제작된 시즌7의 에피소드를 한 자리에서 보는 기분이다. 나이는 들었으되 아직 철은 덜 든 언니들에겐 먹고사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패션과 연애가 주된 관심사고 카메라는 그녀들의 관심사를 충실하게 따른다. 드라마의 차별성이라면 뉴요커들의 명품 패션은 더 화려해졌고, 섹스에 대한 묘사는 더욱 화끈해졌다는 점이다.
여전히 캐리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마놀로 블라닉의 523달러짜리 구두를 비롯해 이름을 열거하기 어려운 각종 명품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언니들의 패션은 따라하기 벅찬 정도를 이미 넘어섰다.
하지만 값비싼 패션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건 나이만큼이나 뻔뻔해진 언니들의 노골적인 취향과 과감해진 섹스신이다.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화끈녀 사만다의 노골적인 시선은 19금의 묘미를 한껏 살린다. 드라마를 보지 않은 이들까지 스크린 앞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욕심이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드라마의 연장선상에서 오는 아쉬움도 있다. 사라 제시카 파커와 킴 캐트럴이 비중과 대접 문제로 내내 으르렁거렸다더니, 비중 안배에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137분이 모자라 바삐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니 가슴을 쳤던 캐리 언니의 위로나 다독임도 깊이가 덜해진 느낌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아 좋은 것도 있다. 언니들은 여전히 고개를 빳빳이 쳐든 채 뉴욕을 활보한다. 깐깐한 취향과 넘치는 열정을 과시하면서. 내 사는 곳이 미국 뉴욕의 어퍼 이스트 사이드가 아니고, 내 30대가 그녀들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영화 '섹스 앤 더 시티'의 네 중년 언니들은 똑같이 나를 다그친다. 공들여 치장하고 열심히 사랑하라고. 그리고 스스로를 늘 사랑하라고. 6월 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