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인표 "배우로서 위기라고 생각한다"(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08.06.12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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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진 기자 songhj@


사람들은 '인간' 차인표와 '배우' 차인표에 서로 다른 잣대를 가지고 있다. 입양과 컨페션 밴드 등 여러 선한 일을 하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이미지와 연기를 썩 잘하는 배우는 아니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는 배우를 '업'으로 삼고 있는 차인표에게는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 좋은 사람 이미지는 역할을 한정하고, 개인 차인표를 배역에 떠올리게 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차인표가 '크로싱'을 하지 않으려 발버둥을 친 것도 어쩌면 이런 우려 때문이다. 차인표는 탈북을 소재로 한, 그의 표현대로라면 민감한 시기에 민감한 영화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수차례 고사하고 고사하다 질긴 인연처럼, 어쩌면 운명처럼, '크로싱'을 하게 됐다. 아내의 약을 구하려 탈북했다가 가족과 생이별을 하게 된 아버지를 연기하는 것은 배우 차인표와 인간 차인표 모두에게 도전이었다.

수개월 동안 중국과 몽골을 돌아다니며 진심을 담아 연기했다는 그에게 '크로싱'은 어떤 의미일까?


-탈북을 소재로 한 영화라서 그런지 '크로싱'에 정치적인 색을 입히려는 사람이 많은데.

▶이 영화는 한쪽이 상처 받을 수 있으니 최대한 사실만 찍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래도 예고편을 본 분들 중 어떤 분들은 정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람의 마음과 마음이 맞닿는 게 참 힘들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했다.

-'크로싱' 관련한 인터뷰를 보면 영화보다는 탈북자에 대한 이야기가 더 두드러지던데.

▶솔직히 배우로서 위기라고 생각한다. 상업영화를 찍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봐달라고 홍보를 하는데 질문도 그렇고 대답도 탈북자에 관한 게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내가 영화배우인가 인권운동하는 사람도 아닌데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배우로서 오류를 지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정체성에 혼란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북자와 관련한 이야기를 안 할 수도 없을 텐데.

▶내가 알고 있는 만큼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게 그렇게만 이야기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아침마다 기도한다. 영화 한편 찍었다고 탈북자들의 인권에 대해 외쳐서도 안되고 이용해서는 더더욱 안된다고 생각한다.

넌 무엇을 보여줄 수 있냐고 한다면 진심을 담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내 진심을 관객이 단 몇 명이라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중은 인간 차인표와 배우 차인표에 각기 다른 이미지를 갖고 있다. '크로싱'은 어쩌면 그 두 이미지가 하나가 된 작품일수도 있는데.

▶김태균 감독에게 왜 나를 계속 고집하냐고 했다. 그랬더니 대답이 걸작이었다. 차인표가 해야 관객들에게 다가갈 때 진정성이 전해진다는 것이었다.

연기 잘하는 배우로서 기능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만들어진 나와 우리 부부의 이미지가 필요하다는 뜻이지 않는가. 그래서 한편으로는 불쾌하기도 했다.

-아내 신애라씨는 '크로싱'을 해야 한다고 응원하던가.

▶원래 아내는 내 작품활동에 크게 이야기를 하지 않고 내 결정을 존중해준다. 그런데 '크로싱'은 좀 달랐다. 거절하고 난 뒤였는데 어느날 시나리오를 보여달라고 하더라. 혼자 방에서 시나리오를 읽더니 들어오라고 해서 갔다. 침대가 온통 눈물바다가 됐더라. 그러면서 왜 안하냐고 했는지를 묻더라.

하기 싫은 이유는 50가지를 될 수 있었는데 아내의 질문에는 답을 잘 못하겠더라. '크로싱'은 아내가 처음으로 푸시한 작품이다.

-선한 사람 이미지가 배우로서 활동에 한계를 긋지는 않나. 예컨대 악역 제의가 쉽게 오지 않을 수도 있는데.

▶피부로 느낀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다. 난 배우면서 대중연예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15년을 살았다. 뭐든 것을 대중이 줬다. 결국 대중이 사장님이다. 대중이 준 것을 도로 달라고 하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사장님이 나에게 바른 생활 이미지를 보고 싶다고 했는데 안하는 게 과연 옳은가라는 생각이 든다. 난 끊임없이 선한 사람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위선으로 만족시키지 않고 실망시키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담은 있지만 두려움과는 다르다.

-탈북이라는 소재 때문에 특정 세력에 이용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차인표가 정치하려 하는 게 아니냐는 소리도 있고.

▶일개 배우 입장에서 출연해서 연기한 것으로 내 역할은 다한 것 같다. 그 이상은 능력도 자격도 없다. 다만 진심은 통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말이 얼마나 무섭냐. 민감한 시기에 민감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 출연한 사람으로서 모르면서 이랬습니다 저랬습니다라고 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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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진 기자 songhj@


-함경남도 사투리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익히 알고 있는 평양 사투리와는 많이 다르던데.

▶함경남도 사투리는 경상남도 사투리와 비슷하다고 한다.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하고 평양 사투리를 쓰자고 한 적이 있다. 그런 나를 다잡은 게 사투리 선생님이다. 탈북해서 오신 분인데 이분이 엄청난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소재의 영화를 다루고 거기에 함경남도 사투리가 나오는데 내가 잘못할까봐 밤에 잠을 못이룬다고 하더라.

가르치는 사람은 잠을 못 자는데 배우는 사람이 쿨쿨 자면 안되지 않나.

-연기적인 측면에서 그동안 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게 느껴지던데.

▶지금까지 7편의 작품을 했다. 그동안은 내가 어떻게 보여질까를 생각했다면 이번에는 '크로싱'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를 늘 고민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울어야할 때 저절로 눈물이 나더라.

-차인표 하면 종교가 빠질 수 없다.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기독교인으로 40년을 살았다. 하지만 진심으로 받아들인 것은 2년 전 아내를 통해 컨페션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여권을 정리해봤더니 2년 전까지는 미국이나 유럽, 휴양지 등에 주로 갔더라. 그때는 그냥 돈 벌어서 쓰면서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2년부터는 에디오피아, 필리핀, 인도 등에 주로 다녀왔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 중에서 지난 2년이 가장 행복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거친 연예계에서 살아가면서 혹시 선한 사마리아인을 추구하지는 않나라는 생각이 드는데.

▶예수님의 가르침은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인 것 같다. 배우로서 내가 '크로싱'을 선택한 것도 내가 그들을 위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선한 사람 이미지와 연기적인 측면까지 대선배인 안성기가 겹쳐지기도 하는데.

▶안성기 선배는 진심으로 존경하는 선배다. 한국영화계에서 아무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내가 안성기 선배처럼 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난 종교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아이들을 더 입양할 계획은 있나.

▶글쎄, 예은이와 예진이는 아내가 가슴으로 낳은 자식들이다. 내 큰 아이가 11살이고 예진이는 8개월이다. 지금은 그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우는데 주력할 때인 것 같다. 그래서 입양은 더 힘들지 않나 생각한다. 다른 무엇인가로 쓰일지는 모르지만.

-사실 차인표는 농담도 잘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현재의 이미지 때문에 혹여 그런 자신이 제약된다는 생각은 없나.

▶이런 이야기를 하면 웃긴데 내가 변해가는 것 같다. 2년 전부터 그런 것을 잘 안하게 됐다. 남을 도우면 자신이 도움을 받는다고 흔히들 말하는데 정말 그렇다. 생각이 바뀌게 되고 그러면 상상하지 못했던 것을 얻게 된다. 부부가 그럴 경우 같은 방향을 가게 되니 더 화목하게 된다. 그리고 그 길이 결코 외롭지 않다. 가다보면 요즘 촛불시위처럼 점점 더 곁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느끼게 된다.

-배우와 선행,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음, 그 때 가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배우와 돕는 길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차기작은 결정했나.

▶드라마는 제의가 몇 개 왔는데 영화는 영 제의가 온 게 없다. 영화계에서는 계속 푸대접을 받지만 솔직히 영화를 하고 싶다.(웃음) 당장은 동화 써놓은 것을 출판할 계획이다. 토크쇼를 하자는 제의도 들어오는데 연예 토크는 많으니 뭔가를 이룰 수 있는 토크쇼라면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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