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볼의 임오경 서울시청 감독은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각 방송사들이 가장 치열하게 영입 경쟁을 벌인 해설위원 가운데 하나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핸드볼 은메달의 주역인 그는 3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선수들과 함께 울고 웃다 이번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MBC 해설위원이 돼 중계석에 앉은 임오경 감독을 지난 20일 베이징 IBC(국제방송센터)에서 만났다. 21일 여자핸드볼 준결승을 앞둔 임 감독의 첫 마디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올림픽 해설을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
임 감독은 선수들의 고통을 모두 알고 공감하기 때문에 차분하게 해설을 이어가기가 더욱 힘들다고 가슴을 쳤다. 자신의 해설에 대한 불만이라면 모두 받아들이겠지만 고생 끝에 올림픽 무대에 다시 선 선수들에 대한 비난은 결코 참지 않겠다는 임오경 감독. 그의 표정과 말에서는 핸드볼과 올림픽에 대한 열정, 회한 그리고 애정이 묻어났다.
-핸드볼 경기 하나하나가 드라마다. 중계석에 앉아 있기가 결코 쉽지 않겠다.
▶감정을 억제해 가면서 경기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선수들의 어려움, 경기 당시의 긴장감은 선수였던 내 자신이 가장 잘 안다. 가슴이 뭉클해져 오고 눈물이 나는데 참고 중계를 하다 보니 오히려 순간순간을 놓칠 때가 있다. 숨은 고생을 다 아니까 마음이 더욱 아프다. 한번 실수를 할 때마다 뭘 알고 그렇게 쉽게들 말씀을 하시는지, 찢어지는 마음을 아시는지 모르겠다.
운동을 그만두고 올림픽에 나오지 않는 게 처음이다. 현장에서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응원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사람들은 꾹 참고 침착하게 중계를 진행하는 것이 좋은 모습 이라는데,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달려나가 응원을 하고 싶다.
-영화가 나온 이후 핸드볼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느낌이다.
▶'우생순'이라는 영화가 나오고, 또 국민들의 기대 속에 경기를 펼치게 됐다. 그만큼 책임감이 강해진다. 나도 저런 관심 속에 경기를 해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지금의 높은 관심이 뿌듯하다. 선수들에게 나는 오뚝이란 별명을 지어줬다. 우리 선수들이 '오뚝이'란 말에 너무 잘 어울리는 경기를 보여주고 있다.
-아쉬움이 있다면?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졌다지만 아직도 핸드볼 상황은 열악하다. 연습할 만한 경기장은 둘째 치고 경기를 할 만한 제대로 된 체육관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국민의 관심이 높아져도 경기를 진행할 체육관 하나가 수도권에 없고, 저녁도 아닌 대낮에 멀리 지방에서 경기가 이뤄지기 일쑤다. 그러다보니 직장인이나 학생들의 관람이 어려울 뿐더러 방송도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시간에 나온다.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MBC '무한도전'의 정형돈 노홍철과 함께 중계도 했는데.
▶'무한도전'은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프로그램이 아닌가. 그래서 여자핸드볼이라는 종목에 더 어울리는 것 같다. 핸드볼 역시 계속 도전이 이뤄지는 종목이기도 하고. 어제도 '무한도전' 멤버들을 IBC에서 만났는데 프로그램을 홍보하려고 왔다기보다는 정말 좋아서 경기를 즐기는 것 같았다. 얼마나 좋아하던지 '연예인들도 똑같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TV에서 보면 원래 하고 싶은 말씀을 다 하시는 분들이 아닌가. 그런데 중계석에선 어찌나 겸손해 하시는지 내가 오히려 나서서 먼저 질문을 하고 분위기를 띄웠다. 상대를 배려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꽤 긴장하셨나보다. 정형돈씨는 얼굴이 빨개져서 보조 해설을 하셨다. 노홍철씨는 후반전 해설을 앞두고 전반전을 보면서 내내 혼자서 연습을 하더라.
-준결승전을 앞두고 있다. 바람이 있다면.
▶선수들이 진통제 주사를 맞아가며 뛰는 모습을 볼 때마다 미칠 것 같다. 나는 선수들이 꼭 금메달을 땄으면 하는 마음이다. 내가 딸 수 있었던 금메달을 놓친 것이 나는 늘 마음이 아프다. 후배들이 나처럼 평생 후회를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참고 강하게 이야기한다. 넘어진 선수들에게도 '일어나야 한다', '참고 뛰어라'라고.
올림픽이라 이렇게 관심이 반짝하지만 또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스르르 관심에서 사라지고 마는 게 핸드볼이다. 선수들의 고통을 내가 왜 모르겠나. 올림픽마다 핸드볼은 처음부터 끝까지 경기가 있다. 올림픽에 몇 번을 와도 쇼핑 한 번 관광 한 번 나가질 못한다. 마지막까지 고생하고서도 즐거워하지도 못하고, 은메달을 땄다고 방에서 틀어박혀 울던 기억들이 난다.
코트를 떠나고 보니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코트에 섰을 때였다는 걸 알겠다. 땀 흘리는 후배들의 모습이 너무나 예쁘다. 지금 가장 빛나는 순간에 후회 없는 경기를 펼쳐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