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영화의 새로운 트랜드를 보여주는 '신기전' |
카메라가 시대를 향하고 있다. 소재에 목말라 있는 충무로에 역사는 광맥에서 캐낸 노다지였다.
사극 장르는 '흥미로운 소재'와 배우들의 신선한 연기, 여기에 섬세하고 화려한 고전미로 충무로의 트랜드로 발전했다. 풍부한 역사적 텍스트를 취하면서 자유로운 상상력을 덧붙여 사실(fact)과 허구(fiction)를 합친 팩션(faction)영화 열풍을 가져왔다.
오는 9월 4일 개봉을 기다리는 '신기전'은 조선 세종 때 만들어진 세계 최초 다연발 로켓화포 '신기전'을 소재로 삼은 팩션 영화다. '신기전'은 신무기 개발로 명나라에 맞서 조선시대의 '자주국방' 노력을 펼치는 세종과 이를 저지하려는 명의 10만 대군과의 치열한 대결을 그린다. 실제 남아 있는 소재와 실존 인물이 등장하지만 캐릭터 성격과 줄거리는 모두 감독과 작가의 상상력이다.
이 외에도 조선 후기 3대 풍속화가 중 한 명인 혜원 신윤복을 소재로 한 '미인도'와 고려 시대에 실제 있었던 동성애를 소재로 한 '쌍화점' 등 색 다른 매력을 가진 팩션 사극이 관객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사극 열풍을 보여준 '혈의 누','궁녀' |
역사의 매력에 눈 뜬 충무로
팩션 사극의 열풍 이유는 '왕의 남자'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혈의 누' '음란서생' 등이 주목 받으며 성공하면서 사극에 대한 부담이 줄었다는데 있다. 또 소재 고갈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한 영화 관계자는 "'미국 드라마' 열풍으로 관객의 눈이 너무 높아졌다. 3년 전까지만 해도 흥행 성공을 점쳐봤을 시나리오들이 넘쳐난다. 결국 흥미를 끄는 역사에 충무로가 눈 뜨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충무로를 사로잡은 것은 사극 속에 현실을 담을 수 있다는 점이다. '혈의 누', '음란서생' 등은 관객들이 심도 있게 묘사된 당대의 일상생활을 재미있게 파헤치다보면 현실을 마주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ㅣ
이는 '신기전'의 이승렬 프로듀서도 동의하는 바다. "'신기전'은 560년 시대 상황과 현재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출발했다. 우리 역사를 통해 신나고 즐거우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조선과 명(明)의 대립 설정은 한국이 미국, 일본 등의 강대국과 대립하는 현실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장르화가 되가는 사극
'왕의 남자'가 사극에 대한 기존 이미지를 깼다면, 드라마 '주몽'과 '태왕사신기'는 사극의 가능성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드라마 사극은 '태조 왕건', '불멸의 이순신' 등 기존 역사 재현에서 판타지로 재미를 더한 '태왕사신기'로 발전했다.
텔레비전이 사극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지만, 그 관심을 스크린으로 가져오는 데는 텔레비전과 다른 무엇인가가 있어야 했다. 충무로는 단순히 역사와 픽션을 결합하는데 그치기보다는 캐릭터에 집중했다.
'신기전'은 화약제조사 홍리(한은정)과 부보상단 설주(정재영)가 '신기전'을 함께 완성해 가는데 포커스를 맞춘다. 설주는 장사치지만 아버지가 화약을 제조했던 인물로 화약에 대한 지식이 홍리에 못지않다.
'혈의 누'는 제지업을 배경으로 하고, '궁녀'는 궁 안에 생활화는 궁녀의 이야기를 디테일하게 그린다. 텔레비전이 거시적인 역사를 그린다면 스크린은 미시적인 역사를 택했다고 볼 수 있다.
드라마의 이 같은 흐름은 충무로에 또 다른 경향을 가져왔다. 단순히 역사와 픽션을 결합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르화를 통해 뚜렷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CJ엔터테인먼트 콘텐츠개발팀 임상진 팀장은 "드라마 '주몽'과 '태왕사신기'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대규모 전투신이 등장한다. 이 같은 물량공세가 시청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임 팀장은 "충무로가 브라운관과의 차별화를 위래 사극의 장르화를 꾀하고 있다. 가령 '신기전'은 사극에 블록버스터를 삽입한 것이다"이라고 설명했다.
사극 영화가 중장년층을 흡수해 넓은 관객층에게 호응을 받을 수 있지만, 반면 젊은층이 외면할 수 있는 평범하게 완성 될 수도 있다. 명나라 10만 군사와의 대규모 전투신을 그린 블록버스터물 '신기전', 자살한 궁녀의 숨은 비밀을 파헤친 공포물 '궁녀' 등 흥미 있는 소재에 장르적 쾌감은 흥행에 있어 안전핀 역할을 한다.
'신기전'에서 현대적인 캐릭터를 보여주는 정재영과 한은정 |
캐릭터의 현대화로 진화하다
'신기전'의 주요 웃음 코드는 현대적 어투를 그대로 사용해 위트를 살렸다는 데 있다. 명나라 사신들이 유창한 한국어로 좌충우돌하는 대사들, 설주와 홍리가 티격태격하는 대사들은 누가 봐도 웃음을 터뜨릴 수 있다.
이 프로듀서는 "요즘 유행하는 대사가 560년 전에는 재미가 없었을까. 이 같은 생각에서 출발했더니 대사가 극적요소로 발전했다"라고 설명한다.
임 팀장도 "캐릭터의 현대적 재구성은 단순히 '신기전'에 국한되지 않는다. 요즘 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은 구체적 고증보다는 현대적 캐릭터로 역사에 대한 이질감을 없애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고 말했다.
'신기전'은 단순한 사극 영화에 머물지 않고 팩션으로 한 단계 진보된 사례를 보여준다. 충무로에는 현재 10여 편의 사극 팩션 영화가 제작 또는 준비 중이다. 명성황후와 그녀를 사랑했던 '불꽃처럼 나비처럼', 김탁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부여현감 귀신체포기', 악사 우륵의 삶을 그린 '현의 노래' 등 소재 또한 다양하다. 팩션은 충무로에 다시 분 꽃바람이다. 그 바람이 충무로에 다시 화사한 봄을 가져오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