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레저·이은주·장국영..혼신의 연기가 죽음으로

조철희 기자 / 입력 : 2008.08.27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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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사진 왼쪽)와 '캔디'에서 열연한 히스 레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질 때가 있다. 스크린 속의 허구적 운명이 현실로 넘어와 한 배우의 실제 삶을 붙드는 순간이다. 진짜 모습인지 연기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배역에 빠져든 배우들 중에는 영화 속 운명을 떨쳐내지 못하고 생을 달리하는 이들마저 있다.

최근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다크 나이트'에서는 배트맨 역의 크리스찬 베일보다 완벽하게 악역을 연기한 히스 레저(28)가 더욱 눈길을 끈다. 그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잔인무도한 조커 역을 통해 악마적 인간을 묘사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이제 그의 모습은 스크린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레저는 올해 1월 약물 과용으로 숨졌다. '브로크백 마운틴'(2005) 등을 통해 탁월한 연기를 선보이며 촉망받는 배우로 떠올랐지만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일각에서는 그가 조커 역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그 후유증 때문에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게 됐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만큼 그는 배역과 자신의 경계를 두지 않는 혼신의 연기자였다.

레저의 안타까운 죽음은 그가 2006년에 출연했던 영화 '캔디'를 떠오르게 한다. 이 영화에서 그는 '캔디'(마약)에 중독돼 피폐한 삶을 살아가다 파멸을 맞는 역할을 맡았다. 그는 마약중독자 역할을 실감나게 표현해냈지만 영화 속 그의 모습은 2년 뒤 자신에게 닥쳐올 운명을 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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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씨' 이은주



배역에 대한 극도의 몰입으로 일상적 감정을 잃어버린 배우들은 영화 속 운명을 현실에서도 이어가다 비극을 맞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남다른 연기력을 지녔던 배우 이은주는 유작 '주홍글씨' 출연 이후인 지난 2005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나 유족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의 죽음은 '주홍글씨'와도 관련이 있었다. 이 영화에서 이은주는 자동차 트렁크에 갇혀 피범벅이 된 상태로 죽음을 맞는다. 자살로 마감한 그녀의 실제 삶과 비참하게 죽어간 영화 속 이미지가 교차할 수밖에 없다. 그녀는 생전에 "이 장면을 연기한 뒤 우울한 느낌을 벗기 힘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사망 당시 영화 속 캐릭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해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추측도 무성했다. 또 그녀가 출연작에서 유독 죽는 역할을 자주 맡았다는 점도 회자됐다. 그녀는 '오! 수정'(2000), '번지점프를 하다'(2000), '하늘정원'(2003), '연애소설'(2004), '태극기 휘날리며'(2004) 등에서 매번 죽음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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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공간' 장국영


'이도공간'(2002)에서 귀신과 소통할 수 있는 정신과 의사 역할을 맡았던 장국영은 지난 2003년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을 두고 여러 추측이 난무했지만 그 중에서도 캐릭터에 대한 몰입과 '이도공간' 촬영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자살의 원인으로 꼽는 이들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장국영은 이 영화에서 옥상 위에 올라가 투신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을 연기하기도 했다.

또 '이유없는 반항'에서 카레이서를 연기했던 제임스 딘은 1955년 갑작스러운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고, '아이다호'의 리버 피닉스는 1993년 조니 뎁이 운영하는 클럽에서 약물중독에 의한 심장발작으로 숨을 거뒀다. 스물세살의 나이로 요절한 피닉스는 '아이다호'에서도 마약을 하는 인물로 나왔다. 피닉스의 팬들은 이 영화가 그의 실제 삶과 맞닿아 있다고 여겼다.

MBC '하얀거탑'(2007)의 1979년 일본 원작에서 주인공 자이젠 고로 역을 맡았던 타미야 지로는 그해 12월 방송 종영을 앞두고 돌연 엽총자살해 일본열도를 충격에 빠뜨렸다. 당시 톱스타였던 그의 자살을 두고 많은 논란이 일었고, 드라마와 역할에 몰입한 영향이 컸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허구 속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던 이들 비운의 배우들은 혼신의 연기를 통해 관객들이 결코 잊지 못할 기억을 남기고 사라졌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너무나도 일찍 세상을 떠난 이들이지만 아직도 여전히 그들은 스크린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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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왼쪽부터 '이유없는 반항' 제임스 딘, '아이다호' 리버 피닉스, '하얀거탑' 타미야 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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