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 "'사랑한다'는 말 들을 때면 슬프다"(인터뷰)

김건우 기자 / 입력 : 2008.09.2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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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진 기자 songhj@


김혜수는 '모던보이'의 조난실을 너무나 사랑해 잊을 수 없다 개봉을 앞 둔 지금도 영화를 보기만 하면 가슴이 아파온다. 그만큼 김혜수와 조난실은 닮은 점이 많다.

'모던보이'의 조난실은 신여성 모던걸이다. 1937년 아메리카니즘은 생활양식의 서양화를 촉구했고 새로운 문화의 대중화를 이루게 했다. 이 유행을 주도한 것은 모던걸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던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화려한 장신구, 화장 옷차림은 사회의 도덕적 권위에 대항하는 것으로 밖에 보지 않았다.


현실의 김혜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도시의 소비문화를 선도하는 그녀만의 감각을 배우보다 패션니스타로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보다 몸매에 관심이 있었고, 그녀는 영화에서 그런 이미지를 깨기 위한 노력을 했다.

모던걸은 남편과 자식만을 위해 희생하던 당시의 풍토에서 벗어나 자기를 존중하며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여성들이었다. 김혜수도 자신을 위해 살아간다.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편적이지 않죠!'라고 가볍게 정의하면서 그것을 즐기려 노력한다.

연기생활 23년째, 배우경력으로 하자면 많은 것을 이뤘을 법하지만 그녀는 보여줄 게 너무나 많다. 한 장르에 매몰되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할 일 없이 노닥거리는 백수부터 한 아이의 엄마까지, 이제는 비밀을 간직한 팔색조 미녀 역할이다.


김혜수는 그동안 버렸던 화려한 옷과 짙은 화장을 다시 했다. 카메라는 그녀의 몸을 아찔한 하이힐부터 육감적인 목선까지 하나하나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전의 김혜수의 모습과는 뭔가 다르다. 노출로 비상한 관심을 끌지도 않는다.

'모던보이'는 다시 연기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조난실을 통해 연기관, 사랑, 그리고 인생을 되돌아본다.

-어제 기자 시사회 후에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고 들었는데 몸은 괜찮나?

▶술은 잘 마시지 않는 편이다. 다들 기분 좋게 마시느라 자리가 길어졌다(웃음).

-'모던보이'는 1937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다. 어떻게 영화를 선택하게 됐나?

▶2006년 영화 주간지에서 2007년에 기대되는 작품 목록에서 정지우 감독님이 '모던보이'를 준비한다는 기사를 봤다. 정지우 감독님의 팬으로 디테일한 비주얼이 기대됐다. 작품을 극장에서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출연 제의가 들어왔다.

-정난실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갔나?

▶일제강점기를 보낸 인물들의 다큐멘터리를 많이 봤다. 원래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특히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인상적이었다. 조마리아 여사는 안중근이 사형선고를 받자 아들에게 '상고를 거부하고 깨끗이 교수대에 오르라,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효'라고 전했다. 그리고 만주에서 독립투사들의 뒷바라지를 하며 여생을 보냈다.

그 당시에 친일은 나쁜 일이었다. 하지만 예술가로서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했다는 것도 알았다. 지금은 편하게 다른 일을 하면서 예술을 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 예술을 위해서 친일 활동을 하면서 한편으론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도 있고, 친일 활동이 싫어서 자살했던 작가도 있었다.

-공부를 많이 한 것 같다. 정지우 감독과 캐릭터나 대사를 수정한 부분도 있었나?

▶'모던보이'는 진지하면서 엄숙하고 자유로운 시도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다큐멘터리에서 느낀 감정을 담는다면 너무 진지해지지 않았을까? 시나리오의 자유로운 시도가 너무 좋았다.

-해명과의 사랑에 대해서도 고민을 했을 것 같다.

▶그 시대를 알고 나서 이해명을 사랑할 수 없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명과의 사랑에 빠진 이유는 뭘까?

▶이해명은 가벼운 사랑을 했을 것 같다. 그런 그가 어떤 여자에게 인생을 걸겠다고 나섰다. 결국 난실이 해명에게 끌린 것은 사랑에 대한 순도다.

-열정적인 사랑에도 불구하고 난실은 사랑과 현실에서 큰 고민을 한다.

▶난실은 해명을 너무나 사랑한다. 하지만 비겁하게 사랑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그때는 그렇게 인생을 살아야했던 우리나라가 너무나 슬프다.

-김혜수는 해명과 난실 중 누구에게 더 가까운 사랑을 하나?

▶해명의 사랑에 더 가깝다. 어렸을 때 연애를 몇 번 하면서 순도 깊은 사랑에 대한 생각을 했었다. 그 사랑에 취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하지만 '사랑한다'라는 말을 들을 때면 슬프다. 사랑을 해서 행복하지만 왠지 유한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말은 사랑에 대해서 남자가 확신을 주지 못해서가 아닐까? 어떻게 하면 확신을 줄 수 있을까?

▶확신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그냥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그 따뜻함을 느끼는 게 좋을 뿐이다.

-'모던보이'를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한 것 같다.

▶감독님과 아무리 힘들어도 발을 내딛자는 이야기를 했었다. 열심히 뛰었는데 잘 내딛었는지 모르겠다. 소중한 기억에 대해서 깨달았다. 연기를 하면서 너무 힘들었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배우 김혜수는 '타짜'를 제외하고는 최근작에서 망가지는 역할을 많이 했다. 관객들이 김혜수의 연기가 아닌 몸매만을 떠올리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나? 2005년 '분홍신'부터 많이 고민을 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모던보이'는 김혜수의 장점을 잘 살린 영화라고 생각한다.

▶ 스스로 생각했을 때 2000년 이후 연기에 큰 변화가 많았다. 당시에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으나 개인적인 일들이 잘 따라주지 않았다. 대중들이 생각하는 '보편적이다'의 기준에 못 미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스스로 배우로서의 기운을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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