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의 '뜨거운 안녕'을 알고 있는가. 다소 촌스러운 뮤직비디오 속에서 열창하고 있던 보컬을 기억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혹시 그 모습이 이지형의 전부가 아닌 건 알고 있는가.
가수 이지형이 2집 '스펙트럼(Spectrum)'을 발표하고 활동에 시동을 걸었다. 토이 6집 타이틀곡 '뜨거운 안녕'의 보컬로 대중에게 알려졌고, 그 전에 이미 그룹 위퍼, 서울전자음악단, 언니네 이발관 등으로 홍대 앞 인디신에서 활동하면서 '홍대 원빈'이란 별명으로 불려왔던 그다. 앨범 제목처럼 2집 안에는 토이 객원 보컬 시절, '홍대 원빈' 시절, 그 이전 중학교 때 기타를 처음 잡았던 이지형의 모습들이 다양한 색깔로 녹아있다.
"제가 가진 정서 안의 스펙트럼을 다 담아보자고 생각 했었는데 막상 하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제 추억들을 다 담아놓은 상자를 꺼내봤죠. 그 안엔 제가 재미있게 봤던 책 찢어 놓은 것, 악보, 쪽지, 편지, 크리스마스 카드, 일기까지 다 들어있거든요. 그걸 보고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어요."
그런 이지형의 정서를 관통하는 노래가 2집 수록곡 '메탈포크 주니어의 여름'이다. 이 가사는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으로 성장하던 시절 록스타를 꿈꾸던 이지형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추억 상자를 열어보지 않았다면 쓸 수 없었을 가사라고 한다. 홍대 앞 '메탈포크 주니어'가 토이 '뜨거운 안녕'의 보컬이 되기까지 그 간극에는 가수 이승환이 있었다.
"2집 작업 중에 우연히 제가 TV에 나온 모습을 이승환 선배님이 주의깊게 보시곤 저에게 전국 투어공연 게스트를 제안하셨죠. 나중에 토이의 '뜨거운 안녕' 보컬을 찾는데 벌써 3, 40명 오디션을 본 상태였대요. 전 '뜨거운 안녕' 오디션의 마지막 참가자였죠."
"'뜨거운 안녕'으로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것도 좋은 기회지만 유희열 선배를 알게 된 게 더 좋았다"고 말하는 이지형은 토이 객원 보컬 활동 이후 높아진 기대치가 부담 혹은 짜증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뜨거운 안녕'으로 인지도가 생겨난 다음에 '이제는 떠야지'란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어요. 꼭 국가대표로 올림픽 나가서 금메달 따야하는 분위기였거든요. 고민 된다기보다는 부담이었어요. 근데 '진짜 곡을 잘 써서 대박을 내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떻게든 뜨고 봐라'는 이야길 너무 많이 들어서 화도 나고 아쉽기도 했어요. 왜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을까요."
홍대 인디신과 메이저 음악계 사이에서 줄타기 중인 이지형은 스스로 "경계선상에 있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하지만 활동 영역이 넓어져 오히려 더 좋다는 게 그의 변이다.
"제 음악을 많이 알리고 싶긴 하지만 지금 당장 뜨고싶진 않아요. 언제가 되더라도 제 음악이 인정받으면 그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오래 음악하면서 느낀 건 돌 맞을 만큼 음악적으로 변했던 사람들도 좋은 음악을 하면 사람들은 '그럴 줄 알았어' 하면서 수긍하는 분위기를 만든다는 거죠."
이지형은 최근 활동영역을 넓혀 영화 '고고70'에도 우정출연했다. 시사회로 영화를 봤다는 그는 "영화 전체에서 5초 씩 딱 3컷 나와요. 3일 정도 촬영했는데 신기하더라고요. 영화 출연이 아니라 영화 촬영장 견학 다녀온 기분? 조승우 씨와는 한 번 마주쳤어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음악은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이지형은 담백하게 '음악은 음악'이라고 대답했다. "저에게 음악이 삶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어요. 저에게는 자기표현의 수단이 되는 게 음악인 거죠. 음악을 억지로 만들게 되는 순간 제 음악은 끝나는 거에요. 전 음악 없이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지난달 31일 2집 발매 공연 도중 입술이 찢어지는 부상으로 10바늘을 꿰매는 중상을 입은 이지형은 "활동에는 지장 없을 것"이라며 팬들을 안심시켰다. 현재 KBS 쿨FM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서 월요일 코너 '모던음악 만만세'에 고정 출연 중인 그는 다음달 17일부터 3일간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그랜드민트 페스티벌 2008'로 팬들을 만날 예정이다.
"공연장에서 많이 만났으면 좋겠어요. 음반으로 듣는 노래와 공연장에서 듣는 노래는 다른 느낌이거든요. 만약 제 음악을 들어보고 괜찮다고 생각하셨던 분들은 공연장에서 직접 만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