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왕가위 감독, 서극 감독 |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가 규모의 강박에서 벗어나 스타 대신 거장에게 손길을 내밀었다.
부산국제영화제(이하 PIFF)는 그동안 뚜렷한 색깔과 내실로 매년 발전을 거듭해왔다. 1996년 9월 29개국 173편의 영화로 시작한 영화제는 2008년 60개국 315편으로 성장 했다. PIFF에 대한 기대치는 해마다 높아져 좀 더 화려해지지 않으면 후퇴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화려함의 수단으로 제시된 것은 스타들의 출현이었다. 국내외 월드급 스타들의 초청은 PIFF 초미의 관심사였다.
97년 제2회 영화제에 기타노 다케시, 장만옥 등의 방문을 시작으로 2004년 제9회에는 양조위가 이영애와 함께 오픈토크 무대를 가졌고 이외에 안성기-유덕화, 이병헌-츠마부키 사토시 등이 월드스타로서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이번 제13회 PIFF에서는 이 같은 스타를 발견하기 힘들다. '디스터비아'의 아론 유, '히어로즈'의 제임스 카이슨 리,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 우에노 쥬리가 가장 눈에 띄는 스타다.
PIFF 김정윤 기획홍보팀장은 "제임스 카이슨 리와 아론유는 아시아 각국 유명 배우와 감독 및 제작자를 초청해 아시아 최대의 친선 네트워크를 도모하는 아시아연기자네트워크(APAN)때문에 초청됐다"고 밝혔다.
이어 "PIFF가 배우를 초청할 때 특별한 기준을 두는 것은 아니다. 올해는 한국영화에 대한 응원, 발견과 발굴의 영역 확장, 비평과 담론의 장 활성화를 목표로 세웠다. 이와 관련돼 배우가 초청된 것이다 "고 설명했다.
이 같은 변화는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우선 PIFF는 해를 거듭할수록 레드카펫에 대한 문제가 대두됐다.
톱스타들이 자발적으로 참석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었지만 점차 영화배우가 아닌 연예인들의 무대 인사장으로 변질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해에는 영화음악계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가 개막식에서 노출이 심한 연예인이나 대선 주자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돼 서운한 감정을 느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또 해외 게스트들이 감독보다 배우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점은 우려로 제기됐다. PIFF의 시각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은 어떤 작품들을 초청하고, 어떤 영화 관계자들과 함께 하는가다.
이미 부산국제영화제는 전 세계 어떤 영화제에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는 규모를 자랑한다. PIFF의 모습을 상영작의 수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작품으로 나타내야할 때가 온 것이다. 이슈가 될 수 있는 배우보다 감독에게 집중해야한다는 점은 PIFF가 고민했던 바다.
올해 PIFF는 이 같은 고민을 한 흔적이 보인다.
'중경삼림' 아비정전' 등의 왕가위 감독과 중국 액션활극의 거장 서극 감독, 1999년 제56회 베니스영화제에서 '17년후'로 은사자상을 받은 장위엔 감독, 이탈리아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 타비아니 형제 감독 중 동생인 파올로 타비아니, 스웨덴 영화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얀 트로엘 등의 거장들이 한국을 찾는다.
또 누벨바그의 여신이라 일컬어지는 프랑스 배우인 안나 카리나도 뉴커런츠의 심사위원장을 맡아 내한한다. 무엇보다도 카자흐스탄 등 아시아 중에서도 변방으로 여겨진 나라들의 영화들을 대거 만날 수 있으며 필리핀 등의 독립영화 감독 등이 다수 초청됐다.
PIFF 김정윤 기획홍보팀장은 "PIFF가 상업적이라는 지적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올해는 아시아 변방 국가 영화들을 다수 초청했다. 개막작이 카자흐스탄 '스탈린의 선물'로 선정된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최근 전 세계적 양상인 아시아의 옴니버스 영화들도 모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