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민 leebean@> |
MBC 공채탤런트로 연기에 첫 발을 내딛은 김남길은 청운의 꿈을 품었다. '굳세어라 금순아'로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겨 비단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그에게 찾아온 갑작스런 뺑소니 사고는 6개월 동안 원하지 않는 휴식을 갖게 했다.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진 것도 한 순간이었다. 김남길이 '이한'으로 예명을 지은 데는 다시 시작하자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퀴어 영화 '후회하지 않아'는 그런 김남길에게는 기회이자 재발견의 순간이었다. 김남길은 이한이라는 이름으로 팬들을 얻게 됐고, 충무로에 다시 한번 주목을 받게 됐다.
'모던보이'와 '미인도' 개봉을 앞둔 지금, 그는 또 한 번 모험을 하려 한다. 대중에 이름을 알렸던 '이한'을 버리고 다시 본명 김남길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한이라는 이름에 사람들이 채 익숙해지기도 전에 본명을 내세운 것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그의 각오이다.
김남길은 "선배들이 이름 석자를 내걸고 연기한다는 의미를 이제 알겠다"고 말했다.
그의 각오는 그대로 작품으로 이어졌다. '모던보이' 출연은 드라마 '연인'에서 인연을 맺은 김정은이, '강철중'은 앞서 촬영한 '모던보이'를 제작한 강우석 감독이, '미인도'는 '강철중'에서 함께 한 설경구가 추천해 이뤄졌다. 선배와 동료가 추천하는 배우 김남길, 그의 각오를 물었다.
-이제야 이한이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본명을 내세운 이유는.
▶예전에는 강남길 선배와 이름이 같아서 예명을 썼다. 하지만 이름을 내걸고 연기를 하려면 세련된 이름보다 내 본명으로 솔직하게 하고 싶었다. '강철중' 하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모던보이' 개봉이 늦어지면서 초초하지는 않았나.
▶혜수 선배나 해일 선배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나 역시 막막했고. 하지만 영화를 믿었다. 역시 믿고 기다리길 잘했던 것 같다. 혜수 선배는 '나도 하나 하는데 너는 세 작품 한다'고 구박도 하더라.(웃음)
-'모던보이'에 출연하게 된 동기가 궁금한데.
▶'연인'을 같이 했던 김정은 선배에게 정지우 감독님이 전화를 했다더라. '사랑니'를 함께 했으니. 그래서 내가 어떤지 물었다고 하더라. 그렇게 연락이 돼 인연이 됐다.
-일본인 검사 신스케 역을 맡았다. 대중에 사랑받을 역은 아닌데.
▶오히려 일본인이라 매력적이었다. 30년대를 소재로 한 영화에 등장하는 여느 인물들과는 정 반대인 캐릭터이니깐.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그린다는 게 배우로서는 도전할 만 했다.
-데뷔 시절 누구보다 주목받았다 한 순간 잊혀졌다. '모던보이'에서도 김혜수 박해일이 훨씬 주목받는데.
▶선배들에게서는 지금 내가 가질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기에 조금도 그런 생각이 없다. 섭섭하다, 그런 것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또래에게서는 양보할 수 없다. 인지도가 아닌 연기에서는.
-선배들과 함께 하면서 깨달은 것인가.
▶'강철중' 때도 그랬지만 선배들과 있을 때는 한 공간에서 호흡하는 것만으로 배운다. 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따라가는 성향이 있어서 더욱 좋은 선배들과 하는 게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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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지 않아'에서는 게이를, '강철중'에서는 조폭을, '모던보이'에서는 일본인 검사 등 센 역만 맡는데.
▶한계와 부딪힐 때 느끼는 쾌감이 있다. 너무 힘들지만 그 순간이 기다려지기에 또 하게 된다.
-'모던보이'와 '강철중'을 연이어 했다. 강우석 사단이 된 셈인데.
▶강우석 감독님이 예뻐하시는 것은 있다. 하지만 좋은 경험을 쌓도록 열어주시는 것이지 사단이라고 할 것까지는...'강철중'을 찍을 때 "감독님, 한 번 더 하시죠"라고 하면 "야, 넌 정지우는 믿으면서 난 못믿냐"고 하시기도 했다.(웃음)
-차기작인 '미인도'가 11월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설경구 선배가 추천했다고 하더라. 천진난만하다 점점 독해지는 역이다.
-여장남자 신윤복을 소재로 해 드라마 '바람의 화원'과 비교될 수 밖에 없는데.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드라마와 영화는 느낌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문근영은 소년 느낌이지만 김민선은 성인 연기를 하니깐.
-김민선과의 호흡은 어땠나. 베드신이 농염했다고 소문이 났던데.
▶선배들에게 배웠던 노하우를 적극 활용했다. 촬영장에서는 내가 홀딱 벗고 뛰어다니니 오히려 여배우와 감독이 고마워하더라.
-베드신이 '미인도'로 세번째인데.
▶김혜수 선배가 '얼굴없는 미녀' 찍을 당시 베드신을 촬영할 때 다른 생각은 전혀 안들고 '저기가 고지다' 이런 생각만 들었다더라. 나도 마찬가지다.
다만 경험이 풍부하니 감독님이 많이 묻더라. 나중에는 정두홍의 액션스쿨처럼 김남길의 애로스쿨을 만드는 게 어떠냐고.(웃음)
-교통사고 이후 한 차례 내리막을 경험했고 이름을 바꾸면 다시 한 번 내리막을 겪는 셈인데.
▶돌이켜보면 당시 교통사고로 쉬었던 게 오히려 전화위복이었던 것 같다. 그랬기에 지금 김남길이 영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본명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지금은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