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바이러스'의 이지아.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
"아직까지 제가 연예인이라는 느낌이 안 들어요."
MBC '베토벤 바이러스'의 두루미가 브라운관 바깥으로 걸어나온 듯 했다. 다른 점이라고는 살짝 올린 머리스타일 뿐. 헐렁한 원피스 차림으로 사뿐히 나타난 이지아가 수줍게 말했다.
레드카펫 드레스를 손수 디자인할 만큼 손재주가 뛰어나기로 이름난 그녀는 직접 화장을 하고 머리까지 직접 손질했단다. 스케줄이 있을 때마다 미용실에 들러 단장하는 여느 여배우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렇게 미용실에서 화장을 하고 머리를 하는 건 너무 연예인 같잖아요"라며 살포시 웃는 이지아. 데뷔 2년째에 접어들었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 오는 게 아직도 익숙지 않다.
그녀는 최근 데뷔작 '태왕사신기'에 이은 '베토벤 바이러스'로 연타석 홈런을 쳤다. 그러나 그녀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인 '태왕사신기' 전까지 그녀는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은 무명이었다.
그녀 역시 그 전엔 배우가 자신의 길이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지아는 10년 넘게 미국에서 살아온 영주권자. 디자인과 그래픽이 그녀의 전공이었다. 연기라는 걸 접하기 전까지는.
"'태왕사신기'에 출연하기 전까지 제가 연기를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더더욱 연기는 운명인 것 같아요."
소개로 만난 매니지먼트 관계자를 만나면서 갑작스레 기회가 주어졌지만, 저절로 화제의 드라마 여주인공을 따낸 것은 아니었다. 당초 그녀는 대본 개발 단계의 다른 조연급 캐릭터를 예상하고 오디션을 치렀다.
그도 그럴 것이 '태왕사신기'의 여주인공 수지니는 당초 톱 여배우들이 물망에 올랐던 배역. 그러나 그녀의 신선하고도 독특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 김종학 PD가 그녀를 최종 수지니 역에 결국 낙점했다.
덕분에 배용준과의 열애설 등 뜻하지 않은 소문에도 시달렸던 터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이지아는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스타같다'는 이야기에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제 이미지가 그렇나요? 하지만 저절로 수지니 역을 맡은 건 아니었어요. 오디션을 서른 번은 봤을걸요. 시간도 한참이 걸렸고요. 캐스팅 소식을 듣고 저도 믿기질 않았어요."
'베토벤 바이러스'의 이지아.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
당시 이지아는 대선배들 속에서도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그 덕분일까? '베토벤 바이러스'에선 입장이 바뀌었다. 일찌감치 엉뚱한 매력의 공무원 바이올리니스트 두루미 역에 낙점 받고 동료들의 합류를 기다리게 됐으니.
"촬영이 매일매일 즐거워요. 연주며 까다로운 부분이 많다보니 밤샘 촬영이 많다는 점만 빼면 늘 즐거운 촬영이에요. 저도 김명민 선배의 '강마에'를 보면서 감동을 받아요. 저도 우와 하고 박수도 치고. 제가 출연하는 작품이지만 팬이 된 입장에서 보게 돼요."
물론 촬영이 쉽지만은 않았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해 온 바이올린 연습은 매회 대본이 나올 때마다 거듭된다. 세 대의 카메라가 한꺼번에 돌아가는 '태왕사신기'와 달리, 같은 감정신도 정도를 달리해 몇 번을 반복해야 하는 '베토벤 바이러스'는 초반 적응 자체가 어려웠다고 이지아는 털어놨다.
그러나 고생한 만큼 애착도 크다. 음대를 졸업한 뒤 전공을 살릴 길이 없어 공무원으로 살다, 어렵게 잡은 기회 앞에서 4개월 뒤면 청력을 잃을 것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선고를 받은 여주인공 두루미에 대한 애정도 마찬가지다
이지아는 사랑스런 두루미를 위해 이지아는 드라마 여주인공의 화려한 패션쇼도 포기했다. 눈썰미 있는 시청자라면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몇 가지 아이템을 반복해 입는 경우도 허다하다. 가난한 두루미인지라 가방은 쭉 한 가지만 든다. 무엇보다 리얼리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이지아.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
씩씩한 여주인공이 '태사기' 수지니와 연장선상에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두 캐릭터가 비슷한 점이 있어서 저도 우려를 했어요. 하지만 이재규 감독님이 그런 걸 의식하게 되면 더 부자연스러울 수 있다고, '비슷하면 어떻냐'고 하시더라구요. 그게 맞다고 봤어요.
저에게는 수지니보다 두루미가 더 강인한 캐릭터로 다가왔어요. 수지니는 거대한 운명의 힘에 끌려간다면 두루미는 갖은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개척해 나가잖아요. 더 진취적이고 당찬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두 사람 가운데 이지아는 어떤 쪽에 가까울까. 이지아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스스로에 대한 설명도 조심스러워했다. 아직 뭐 하나의 이미지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기보다는 앞으로 해 나갈 작품을 통해 천천히 자신을 알리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바람이다.
"신비주의라는 건 오해에요. 굳이 저를 숨기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뭔가 신비로운 이미지를 만들겠다는 생각도 없어요. 홈페이지 일부는 직접 관리하면서 사진도 올리고 글을 쓰기도 해요. 그렇게 뭔가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려고 하거든요.
사실이 아닌 오해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의 모든 걸 한꺼번에 보여드릴 수는 없잖아요. 시간이 흐르고 작품이 거듭되다보면 저도 시청자들도 더 많은 걸 알아 가시겠지요. 조급해하지 않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