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산업이 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가운데 영화정책을 이끌어야할 영화진흥위원회가 심각한 내홍에 휘말렸다. 4기 강한섭(사진) 위원장의 잇단 돌출 발언과 내부적인 문제로 국감을 하루 앞두고 영진위 노조가 위원장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앞서 영진위 게시판에 3기 영진위 사무국장이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의 문광부 국감 발언과 관련, 강한섭 위원장에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올린 터라 4기 강한섭 위원장 체제가 6개월이 채 안 돼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과연 영진위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짚어봤다.
4기 영진위는 출발부터 말이 많았다. 정권이 바뀌면서 3기 안정숙 위원장이 임기가 남아있는데도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부위원장 체제로 영진위가 운영됐다. 이 과정을 놓고 안정숙 위원장의 남편이 원혜영 민주당 의원이라는 점이 문제가 됐다는 설이 유력하게 제기됐다.
4기 영진위는 기금 운용과 예산 편성을 위해서라도 빨리 출범해야 한다는 영화계 의견이 많았지만 새 위원장 선임까지 시간은 계속 흘렀다.
영진위원장을 놓고 로비설도 영화계에 파다했다. 일부 영화단체는 전임 위원회가 좌파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수행, 10년 동안 중견 영화인들이 곤란을 겪었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 5월 강한섭 서울예대 교수가 영진위원장으로 선임되면서 표면적으로는 갈등이 봉합됐다. 강한섭 신임 위원장이 신구 영화인의 갈등 해소와 한국영화 수익률 향상을 목표로 4기 위원회를 출범하자 영화계에서는 기대 반 우려 반의 시선으로 지켜봤다.
신임 영진위원과 영진위 인사를 놓고 영화계에서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한국영화 발전이라는 대의 아래 큰 논란은 불거지지 않았다.
하지만 2009년 영화진흥기금 운영 계획이 발표되면서 논란이 가열되기 시작했다. 3기 위원회가 추진한 사업들에 강한섭 위원장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으면서 각종 영화 지원 사업이 삐그덕거리기 시작한 게 발단이 됐다.
독립영화, 예술영화, 다큐멘터리 영화 전문 상영관으로 건립을 추진해온 '다양성영화 복합상영관' 사업이 내년 예산 확보에 실패해 사업이 표류한 게 대표적인 예이다.
영진위는 당초 영화진흥기금과 서울시 예산을 들여 총 500억원 규모의 복합 상영관을 지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4기 영진위가 기존 사업 대신 1000억원이 투입되는 '아시아무빙이미지센터'를 건립하려 하면서 서울시가 예산이 커지자 사업 추진 여부를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복합상영관 추진위원회 활동은 중단된 상태이며, 이에 독립영화단체들은 영진위에 사업 진행 상황을 묻는 질의서를 발송하기도 했다.
강한섭 위원장의 잇단 돌출 발언은 영화계와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들기도 했다. 강 위원장은 전임 위원회가 스크린 독과점을 방기하고 수익률 악화에 일조했다고 공개석상에서 지적했다.
강 위원장은 지난 4일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열린 컨퍼런스에서 한국영화 현 상황을 '대공황'이라고 지칭해 논란을 자초했다. 당시 컨퍼런스에 참석한 차승재 영화제작가협회장이 "그런 표현은 지나치다"며 당장 반발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강 위원장의 대공황 발언은 버라이어티 등 외신을 통해 소개됐다. 영화정책을 진두지휘하는 수장으로서 적절하지 못한 발언이었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이런 가운데 진성호 의원이 문광부 국감 도중 지난 영진위 사업에 특정 인사들이 심사에 참여해 특정단체에 지원이 집중됐다고 지적하자 그동안 침묵을 지켜왔던 3기 위원회 관계자가 전면 반박에 나섰다.
김혜준 3기 영진위 사무국장은 진성호 의원의 주장과 강한섭 위원장의 평소 주장이 일맥상통하다며 '기묘한 팀플레이'라고 지적했다.
영화계에 영진위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자 내부 차원에서의 갈등도 외부로 드러났다.
입장 표명을 유보했던 영진위 노조는 15일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 강한섭 위원장과 면담을 가졌으나 의견 조율에 실패했다. 이에 영진위 노조는 16일 오전 강한섭 위원장이 외부 관계 악화와 영진위 위상 실추, 각종 사업 지연, 사내 불화 조성 등을 일으켰다며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내놓으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특히 영진위 노조는 성명에 강 위원장의 조직체계를 무시하는 업무지시, 사업담당자에 대한 불신, 직원에 대한 욕설 등을 사례로 꼽아 내부 갈등이 심각했음을 드러냈다.
노조의 성명 발표는 17일로 예정된 영진위 국감을 하루 앞두고 이뤄진 일이라 국회에서도 쟁점으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영화계가 위기를 딛고 일어나려 애쓰는 상황에 정책기관의 어지러운 행보는 폭풍이 휘몰아치는 바다에 선장이 키를 놓은 것과 같다. 한국영화 위기 극복을 위해서라도 현 영진위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