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베토벤 바이러스'(왼쪽)과 SBS '바람의 화원' |
"TV=바보상자"라는 공식은 깨졌다. 이제 "TV=문화상자"로 거듭나고 있다. 드라마 때문이다.
최근 미술 음악 다양한 장르의 오감문화가 드라마 속에 그대로 녹아나오면서 TV는 문화와 예술에 푹 빠졌다.
지난 9월 종영한 SBS 드라마 '식객'은 음식문화를 집중조명했고 12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 MBC 수목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는 클래식 음악, 내달초 종방 예정인 SBS '바람의 화원'은 동양미술을 소재로 문화와 예술을 풍부하게 담아냈다.
이처럼 예술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문화계의 풍향계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드라마를 중심축으로 문화의 새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드라마가 주도하는 문화계의 모습을 살펴봤다.
◇ '바람의 화원'이 꽃피운 동양화 바람
↑ SBS '바람의 화원' |
지난달 12일부터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2주간 열린 '신윤복 특별전'에는 수십만명의 인파가 몰리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전시회 기간 동안 20만명이 다녀갔다.
간송미술관은 '보화각 설립 70주년 기념 서화대전'을 열고 김홍도 김정희 김득신 등의 명품 조선서화 108점을 전시했다. 하지만 이름이 잘 알려진 이들보다 사람들의 관심은 신윤복에게 쏠렸다.
SBS 드라마 '바람의 화원'의 여파 때문이다. 드라마 속에 소개됐던 신윤복의 작품인 '월하정인''야금모행''단오풍정' 등의 작품 앞에는 으레 많은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그림을 자세히 응시했다.
신윤복이 여자라는 상상을 바탕으로 한 이정명 작가의 소설 '바람의 화원'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평균 15%의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다. 드라마에 힘입어 지금까지 40만부 이상 팔려나간 원작소설도 최근들어 꾸준히 팔리고 있다.
간송미술관 측은 드라마 때문에 "혜원이 남자냐, 여자냐?"는 질문이 쇄도해 곤욕을 치렀다고 밝혔다.
신윤복에 대한 관심에 이어 영화 '미인도'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EBS도 지난 7월 방송했던 조선 후기 풍속화가 3인에 대한 다큐멘터리 3부작 '조선의 프로페셔널-화인'을 다시 방송했다.
◇ 클래식 음악계로 침투한 '베토벤 바이러스'
↑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음반 |
발매 10일 만에 1만장. 25일 만에 2만 5천장 돌파.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공식 클래식 컴필레이션 앨범 '베토벤 바이러스-더 클래식스 Vol.1'이 세운 기록이다. 1만 장도 팔기 힘든 음반시장의 불황 속에서 놀라운 성과다.
이 앨범은 10월 2일 발매된 이후 한달간 3만 5천여장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여세를 몰아 11월 둘째 주 2집도 발매될 예정이다. 유니버설뮤직에 따르면 "하루에 1500~2000장 가까이 주문이 들어오고 있는데, 발매된 지 한달 동안 이렇게 반응이 좋은 클래식 음반은 매우 드물다"라고 말했다.
드라마의 인기가 고스란히 클래식 열풍으로 이어진 것이다. 대중이 클래식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도 한층 누그러졌다. 드라마 속 평범한 일반인들이 오케스트라를 구성해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클래식은 누구나 쉽게 즐기는 것으로 인식됐다.
클래식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시민 오케스트라도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달 27일 세종문화회관은 아마추어 실내악단 '시민 체임버 앙상블'을 창단하기로 하고 단원을 모집했다. 그 결과 20명 모집에 270명이 지원, 10대1이 넘는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당초 서류심사로만 단원을 선발할 예정이었으나 지원 인원이 예상을 뛰어넘어 할 수 없이 오디션을 실시할 수밖에 없었다는 후문이다. 지원자 층은 1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지원 분야도 악기연주에서 지휘분야까지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문화회관 관계자는 "방영 중인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를 보고 가정형편이나 부모님의 반대 등 주변 사정으로 접었던 음악에 대한 꿈을 다시 키워가고 싶다는 지원자 가 많았다"고 전했다.
↑ SBS '바람의 화원' 속의 그림 |
한편 드라마를 통해 예술에 대해 관심이 많아지는 현상에 대해 '베토벤 바이러스'의 음악감독을 맡았던 서희태 지휘자는 "전통 클래식 하는 분들께는 클래식 드라마가 이단아로 비춰질 우려가 있어서 걱정했지만,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며 "연주자와 지휘자분들을 만나면 격려전화가 많이 온다"고 긍정적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드라마를 통해 음악들이 어떻게 선곡됐는지 왜 선곡됐는지 등을 설명하면서 대중은 예술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고, 드라마를 촬영하면서 일어났던 에피소드, 배우들은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쏟아 부은 노력 등이 더해져 예술문화의 부흥에 앞장서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