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자 "받은 사랑, 희망으로 돌려드리고 싶다"(인터뷰)

배성민 김지연 기자 / 입력 : 2008.11.27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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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자 ⓒ송희진 기자 songhj@


늦가을 주말 저녁 강남 호젓한 한 건물(강남구민회관)에서 클라리넷 소리가 울려퍼진다. 음색이 풍부한 탓이기도 한데다 불협화음도 섞여 있어 유난히 이날의 클라리넷 소리는 크고 우렁차다. 연주가 시작되기 전 연습실 풍경이다.

또다른 곳에서는 손님맞이를 위해 분주한 이가 있다. 멀리서 봐도 단아함을 갖고 있는 우리들의 어머니다. 20 ~ 30년 동안 드라마속 맏며느리로 자상한 어머니로, 따뜻한 아내로, 현모양처의 대명사였던 탤런트 김민자씨(왼쪽 사진)지만 이날은 난청인 후원단체 ‘사랑의 달팽이’ 회장 자격이다. 김 회장은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며 찾아와준 이들의 손을 꼭 잡아준다.


☞관련기사 : 최불암-김민자 부부의 '나눔의 삶'

지난 8일 강남구 대치동 강남구민회관에서 열린 ‘소리를 이어주는 사랑의 메신저’ 행사장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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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속 현모양처에서 할 일 많은 봉사자로

사랑의 달팽이(www.soree119.com)는 청각장애우와 난청우들의 수술 후 언어 치료와 사회 적응 단계까지를 돌보는 국내 유일의 민간 기관이다. 2000년부터 비영리 단체로 운영되다가 2004년부터 후원회의 골격을 갖추고 지난해 사단법인으로 등록을 마친 사랑의 달팽이는 매해 11월 공연이나 후원 행사를 연다. 11월 행사는 4회째로 김 회장은 단체 출범 후부터 회장직을 맡고 있다.

이날 클라리넷을 연주한 이들은 청각 장애로 청신경 대신 전극으로 신호를 전달받도록 한 인공 와우 수술을 받거나 재활 치료를 거친 아이들이었다. 음색이 풍부한 클라리넷은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닮았다는 말을 듣는 관악기로 수술 후의 아이들의 귀를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클라리넷을 배운 아이들은 ‘리사운드 앙상블’의 단원으로 비정기적 연주회를 연다. 단원들의 연주회는 후원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자리인 동시에 더 많은 후원을 이끌어내는 무대가 된다. 무대 앞뒤에서 클라리넷 소리가 더 커지는 것은 잠시나마 소리에 둔감했다 귀가 열리며 음악을 접한 이들과 보통 사람들을 구분짓는 아주 사소한 경계다.

또 행사는 김민자 회장이 드문드문이긴 하지만 공식석상에 서는 자리기도 하다. 60 ~ 70년대에는 은막을 주름잡는 화려한 주연이었던 그도 80년대에는 우리 시대의 어머니로 바뀌었다. 80년대 초 그는 보통사람들이라는 드라마의 며느리역(시어머니는 황정순씨, 남편은 이순재씨, 아들은 강석우씨, 시동생은 이영하, 정한용씨 등으로 당대의 스타들이었다)을 맡았고 90년대에는 ‘젊은이의 양지’와 ‘야망의 세월’에서도 어머니 역이었다.

그와 클라리넷은 닮은 점이 많다. 청아하고 목가적 분위기의 선율이 특징인 클라리넷은 목관악기 중 음역이 가장넓어 멜로디나 화음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 또 오케스트라에서는 독특한 음색으로 목관악기군의 좌장이기도 하며 관악합주에선 바이올린을 대신해 전체 화음의 선율을 이끌어 간다.

대가족 드라마에서 정숙한 어머니역을 도맡아온 김민자 회장도 마찬가지다. 또 김 회장은 스스로도 탤런트이자 연기자이기도 하고, 한때의 외도(14대 국회의원을 지냄)를 거쳤지만 ‘수사반장’과 ‘전원일기’ 김회장 등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아버지상으로 꼽히는 탤런트 최불암씨의 부인이기도 하다. 또 최근에는 손자도 봤다.

김 회장은 이날 인사를 나누며 ‘잘 입지 않다보니 외출복이 꼭 낀다’는 우스개 소리를 건네기도 했다. 그만큼 화려한 외출이 드물었다는 얘기도 된다. 청각 장애와 인공 와우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어 드라마 출연보다는 봉사활동 현장을 찾아야 그를 만나기가 더 쉽다. 자선 공연이나 바자회 등이 대표적이다.

“옛날에 둘째아이를 낳고 나서 몸이 극도로 쇠약해졌던 적이 있어요. 한 1년 동안 귀가 울리는 이명증에 시달렸어요. 가뜩이나 목청이 큰 그이(최불암씨) 목소리가 어찌나 귀를 아프게 하던지. 한참이나 귀의 소중함을 느꼈지만 치료받은 후에는 한 동안 잊고 지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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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자(왼쪽)-최불암 부부 ⓒ송희진 기자 songhj@


최불암씨와 함께한 한국복지재단과 인연을 맺고 일한 경험도 현재 단체에서 활동하는 계기가 됐다. "나이가 들수록 좋은 일을 해야겠다는 뜻이 점점 더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인가보다 싶었다"는 게 김 회장의 설명이다.

어린 시절에 수술을 받으면 90% 이상 비장애인과 비슷한 언어생활을 할 수 있는 많은 이들이 수술비가 없고 정보가 부족해서 심각한 상태에 처해 있는 현실도 봤다. 귀하게 태어난 아이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회장은 아이들이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받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수술을 받은 뒤 사람 말소리와 주변 환경에서 나는 소리를 구분하려면 반드시 2~3년 동안 언어치료를 받아야 해요. 그래서 최소한 학교 들어가기 전에, 자기만의 소통 능력을 습득하기 전에 수술을 해줘야 하는 거죠.”

김 회장은 클라리넷 연주가 아이들의 치료뿐 아니라 사회 적응력을 키우는 데도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청각장애는 겉으로 표가 안 나니까 사람들이 오해하는 일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뒤로 숨고 피하게 되죠. 아이들도 마찬가지죠. 수술도 한살이라도 어릴 때 빨리 받아야 어릴 때 기억이 상처가 아닌 추억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아이들이 소리를 찾는 데는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이 들어간다.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는 방법을 알면서도 손을 놓을 수밖에 없다. 인공와우 수술에 드는 비용은 한 쪽에 2500만원 정도. 2005년 건강보험이 적용되기 시작했지만, 한쪽 귀만 지원된다. 꾸준히 받아야하는 언어 치료도 상당한 부담이다.

사랑의 달팽이에서는 청각 장애아들의 생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장학 사업도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20명의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혼자 사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청력 검사와 무료 보청기 지급 사업도 하고 있다. 더불어 눈에 보이는 사업만큼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인식 전환 사업도 중요하다. 보청기나 인공 와우를 착용한 사람들을 안경이나 렌즈를 낀 것과 마찬가지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받았던 사랑만큼 희망의 증거를

후원을 호소하는 크고 작은 행사에서 김민자 회장은 몹시 바쁘다. 힘내어 뛰고는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값진 후원자들도 많다. 방송인 신동엽씨와 개그맨이자 연출가인 백재현씨는 홍보대사로 뛰고 있다. 박기현 아주대 의료원장은 단체의 이사를 맡고 있고 아주대 의료원이 수술 집도와 언어치료비 지원을 맡는데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또 김문수 경기도 지사는 수술 환자의 언어 치료비 지원을 약속하며 8일 행사에서 협약식을 갖기도 했다.

여러 기업체의 후원을 이끌어내는 데서도 그의 몫은 크다. 기부의 필요성은 강조하고 후원인을 찾기 위해 뛰지만 그는 스스로의 공헌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플랜티넷, NHN(네이버 해피빈), KCC정보통신, 광우메딕스, GN리사운드코리아, 조은시스템, UBS증권, 인송문화재단 등을 앞세우지만 그의 몫을 내세우는데는 조심스럽다.

“사랑받는 인기인으로서 그 사랑을 사회에 돌려주어야겠지요. 경제만 앞서간다고 선진국은 아닐 거예요. 오히려 경제보다 기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외국에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를 비롯한 유명인들의 기부와 봉사가 수십년전부터 활발하지만 국내에서는 몇 년 전에야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는게 그로서는 불만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 소중한 일이 뭔지를 자꾸 생각하게 돼요. 쓸데없는 일에까지 에너지를 쏟을 시간이 없으니까요.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가치와 보람이 있는 질적으로 좋은 일을 하고 싶습니다.”

사랑의 달팽이 회장이라는 임무는 그녀에게 가치 있는 일이다. 전혀 소리를 듣지 못하던 어린아이가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인공 와우 수술을 받은 아이가 특수 교육을 전공하거나 또다른 아이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어서다.

"현재까지 수술이나 재활치료를 받은 이들이 26명인데 올해 1분기에만 수술과 지원 대상자로 선정된 아이들이 7명이에요."

김 회장이 여전히 바쁜 이유다. 그는 너무 봉사에 대한 얘기만 했다고 생각했는지 연기에 대한 열정으로 말을 맺었다. "연기자는 숨이 끊어질 때까지 연기자에요.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어느 순간부터 엄마의 역할, 아내의 역할에 더 빠져들게 됐어요. 하지만 나에게 꼭맞는 역할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무대로 돌아갈 거에요. 무대를 떠난 적도 없지만…. 물론 나를 필요로 하는 아이에게 맑은 소리를 들려주고 그들이 소리를 찾도록 도와주는 일은 계속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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